한국희곡

오경택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clint 2025. 4. 4. 07:48

 

 

무대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고, 거기엔 사과가 하나 매달려 있다. 
잠시 후 한 명이 나타난다. 그림을 유심히 본 후 말한다.
'이것은 사과다'. 
갑자기 또 다른 한 명이 나타난다. 그림을 유심히 본 후 말한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이후 둘은 그림 속의 사과가 사과인지 아닌지를 다투다가 
서로의 정체성에 대한 충돌을 확장시켜 나간다.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반문의 끊임없는 반복이 시작된다. 
이어 끊임없이 나타나는 또 다른 '나'들과 
끊임없이 떨어지는 사과들 사이에서 
나에게로의 여행이 시작되는데...
아담의 사과, 파리스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 뉴턴의 사과
애플의 사과, 르네 마그리트의 사과....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작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은 다른 어떤 것을 은폐한다. 우리는 가시적인 것이 우리에게 감추고 있는 것을 상상하기를 무척 좋아한다....” - 르네 마그리트

이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회화들과 그의 작품에 자주 모티브로 사용되는 사과라는 오브제를 중심으로 구성한 오브제+이미지극이다. 마그리트의 그림 속의 사과 밑에 있는 한 줄의 명제,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그림 속의 사과는 사과인가 아닌가? 이것은 실상/허상, 진실/오류, 현실/꿈 간의 사이와 차이에 관한 질문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사과는 인류의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도상적 오브제인데, 인간의 삶의 시스템을 크게 변화시킨 여러 사건들에 연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담과 이브의 사과 (선악과)는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 문화의 핵심적 아이콘이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모태가 되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시초에는 파리스의 사과가 연관되어 있으며, 천동설을 물리치고 지동설을 제자리에 잡게 한, 다시 말해 근대 과학의 시초가 되는 만유인력의 법칙의 배후에는 뉴턴의 사과가 있으며, 기존의 사회시스템인 봉건 군주제에 대한 저항과 민중혁명, 민주주의제의 시초에는 윌리엄 텔의 사과가 연관되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과란 오브제를 이용하고,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화가 마그리트가 그의 회화에서 자주 이용한 기법들, 다시 말해 잡종화, 이종교배, 변경, 공간의 이동, 모순 등의 기법을 무대 표현법으로 전이하여 인간의 끊임없는 진리에의 추구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경쾌하고, 신비롭게, 그리고 낯설게 풀어내보인다.


'사람의 아들'.  르네 마그리트 작. 3장면이 연속촬영된 컷으로 보면 1) 누군가 사과를 던졌다 2)신사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3) 눈에 맞아 피가 튀며 사과는 날아간다.

 


르네 마그리트 (1898-1967)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광고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집을 보고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키리코 풍의 괴상한 물체나 인간끼리의 만남 같은 풍경을 그리다가 1936년부터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한 힘을 끄집어 내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조밀하게 그리기 시작했고 말과 이미지를 애매한 관계로 둠으로 양자의 괴리를 드러내 보이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의 작품의 양상은 이미지와 언어, 사물 사이의 관계를 다룬 작품과 현실의 미묘한 부분을 뒤틀어 표현한 작품으로 나뉘는데 전자의 경우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볼수록 새롭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후자의 경우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 같은 시대 활동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데 몇몇 미술사 논문들에서는 이를 두고 마그리트식 초현실주의로 칭하기도 한다. 특유의 현실의 것을 절묘하게 변형시키고 왜곡하는 표현기법은 후에 애니메이션이나 팝아트 등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어 지금도 여러 회화작품이나 디자인에서 그가 남긴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거장이다. 사과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애플의 로고도 마그리트의 사과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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