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장례식장에서 딸은 어머니의 유언장에 기재된
3명의 친부 후보인 노신부, 노목사, 노스님을 장례식에 부른다.
이들 모두가 성직자로 각자 자신이 친부가 아님을 주장하며
종교적인 논쟁이 벌어진다.
여인의 유언증서가 공개되며 친부 테스트가 시작된다.
과연 신부님, 목사님, 스님 중 친부는 누구일까?
장례외전은 한국식 맘마미아이자 연극판 맘마미아라고 할 수 있다.
돌아가신 엄마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생부를 찾는 딸은
세 명의 성직자를 초대한다.
세 명의 성직자는 저마다 자신이 생부가 될 수 없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이게 아주 코미디이다.
엄청난 대사량과 빠른 말투로 자신일 리가 없다고 말하던 성직자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유산을 듣고는 서로 자신이 친부라고 주장한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 모두 확고한 종교관과 연륜에 유튜버활동까지
말빨이 쎄서 그들의 시종일관 재미있게 흐른다.
작가의 말 - 송민아
2024년 <묘전: 무덤전쟁>으로 <강원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 세종대학교 일반대학원 영화예술학과 수료.
'엄마의 장례식', 장례식에서 펼쳐지는 '어느 사생아의 친부(親父) 찾기'. 이야기는 거기서 출발했다. 죽은 엄마는 말이 없다. 하지만 딸은 아빠에 대해 상상해본다. 기대도 해본다. 생김새, 직업, 그의 가족, 엄마와의 첫만남... 어쩌면 친부 후보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일 수도 있겠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성직자일 수도 있겠고, 심지어 각기 다른 종교의 성직자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이유로 과거의 엄마를, 그리고 현재의 딸을 부정할 수도 있겠다. 상상이 더해질 때마 다 걱정도 더해진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그렇게 점점 이야기가 산으로 가듯 외전(外傳)이 만들어졌다. 종교적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성직자들조차 다르지 않다는 것. 누구나 완벽해지려 할수록 자꾸 허점이, 빈틈이, 감춰야 할 것들이 생긴다 는 것. 완전한 무욕(無欲)은 없다는 것. 성직자 캐릭터는 그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외전: 본전(本傳)에 빠진 부분을 따로 적은 전기.' 우리는 살면서 본전이 아닌 외전으로 빠지곤 한다. 본질이 아닌,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치열하 게 싸우다 어느 순간 본질은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자문한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장례식에서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애도, 슬픔, 추모, 위로가 본전이라면, 장례 절차, 유산, 빚, 치정, 종교 등 살아있는 자들의 갈등은 외전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故人은 더 이상 장례식의 주인공이 아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본전보다 외전이 더 재미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이니까. 그 세상에서 저마다 위선과 모순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정작 중요한 건 잊어버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를...... <장례외전>이 아닌 <장례>은 어떤 이야기여야 할까? 여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순서가 바뀐 듯하지만 온전히 여인의 이야기만을 담아 본전을 써 보라고 스스로에게 제안해 본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복기 '행복한 가족' (1) | 2025.04.03 |
---|---|
차근호 '천년제국 1623년' (2) | 2025.04.02 |
김용락 '심판(연약한 침입자)' (1) | 2025.04.01 |
윤대성 '파벽' (3) | 2025.03.31 |
안희철 '아비, 규환’ (1) | 2025.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