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열리면 최두삼의 집, 최철과 미나 부녀의 계산된 대화가 복잡한 갈등과 암투를
암시하면서 변절한 친일파 최두삼을 소개하게 된다.
이념과 이론이 정연하고 담백한 독립운동가였던 이한섭, 현실을 추종한 친일세력 최두삼,
그 사이에 이념과 현실을 적당히 섞어버린 절망한 테러리스트 임태화. 이 셋을 둘러싼
역사의 끈이 이한섭의 손자 이바름과 최두삼의 손녀 최미나를 얽어맨다.
지금은 가난한 노인이 된 이한섭과 대재벌이 된 최두삼의 환경이 뚜렷한 대비되면서,
어느 날 바름과 미나는 집안의 내력을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의 결혼을 통보한다.
그러나 이한섭 노인의 급작스런 죽음과 빈소에 찾아온 임태화에게 집안의 내력을 알게된
바름은 고민에 차면서 역사의 아웃사이더에서 차츰 인사이더가 되어가는 의식을 갖게 된다.
이한섭 노인의 집을 헐어 파낸 파벽으로 거대한 새 집을 짓는 작업을 계속한 끝에
새 집이 완성된 날 화려한 파티를 연 최두삼은 우연한 죽음을 맞게 된다.
하나의 세대는 끝난 것이다. 그러나 파벽으로 단장된 새 집의 화려한 분수가에서
바름은 지난 아픈 세월과 옛날 이야기들, 즉 과거는 역사의 교훈만으로 충분하다고
자기를 합리화시키며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그를 지켜본 임태화가 우리 역사의 어느 정부나 어느 국민이나 역사를 통해서도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 자체가 입증하고 있음을 통탄한다.
전 2막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역사는 현대사'라는 위대한 명언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직도 해결되지않은 친일의 잔재에 대해 고발과 역사적 아이러니를 표현한 작품으로
가능한 화해를 제시한다. 1984년 대한민국 연극제 출품한 작품이다
문호근 연출 문예회관 대극장 1984년 8월 31일 ~ 9월 5일 극단 실험극장 공연.
우리들의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인 해방 전후의 친일 세력과 독립 투사와의 갈등, 정리되지 못한 역사의 엇갈림이 그 2세, 3세를 통해 어떻게 상처를 남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실주의 작품이다. <파벽>은 건축 용어이며 50년 이상 된 옛 붉은 벽돌집을 허물어서 나온 벽돌을 말한다. 흔히 파벽돌이라고도 하며, 이 작품에서 <파벽>의 의미는 바른 정신을 파괴하고 그 위에 허위의 벽을 쌓는 현실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요즘 유럽에서 일고 있는 소리없이 부르짖는 연극에 자극을 받아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는 무대 상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려는 새로운 시도. 극중 인물들의 상황이 운명과 직결되는 매력적인 대사, 테마 자체가 클라이맥스가 되는 구성 등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거대한 역사의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고 있다.
작가의 말// 윤대성 - 한 시대(時代)를 정리한다는 것.
1984년에 들어서며 한일간의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바로 이 시점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방문하며 천황과 대면한다고 한다.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해방되던 1945년까지 만 40년간 우리는 일본의 통치 하에 들어 있었고 해방되던 해부터 금년까지 약 4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 된다. 문제는 독립되고 4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 40년의 잔재가 아직 청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 곳곳에, 정계나 학계, 재계를 막론하고 문제가 제기되는 곳에는 반드시 일제 식민지의 찌꺼기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우연으로 알고 지나칠 수는 없는게 아닐까? 지금까지 어떤 연유에서든 항상 전 시대의 유물(?)을 그냥 답습하면서 갖가지 화려한 이름으로 침체된 국민정신을 일깨우려 노력해 왔다. 주체의식, 유신, 새마을, 새마음, 새시대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창의적인 용어를 동원해서 새로운 정신을 일깨우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쾌하게 새로운 정기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물론 국민경제라던가 농촌 새마을운동,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등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정신사에 관한 한 분명하고 명확한 어떤 주류를 형성하지 못한 채 방황과 혼돈의 와중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나라가 분단된 책임까지도 일제 침략에 돌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잔재를 한번도 청산하지 못했다는 우리의 역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재작년<신화1900>을 공연하면서 우연히 파벽돌에 관한 얘기를 어느 건축가로부터 전해 들었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김동훈씨(실험극장 대표, 현 연극협회 이사장)와 파벽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이 작품의 첫 구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작년에 구라파를 여행하면서 재독(在獨) 유학생과의 독일연극계에 관한 의견 교환에서 독일 극작가들의 관심사였던 나치 시대(時代)를 정리해 보는 기록극(記錄劇)에 관해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구체적인 작품 내용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초고를 쓰면서 한 시대를 정리하고 오는 이 시대를 조명한다는 작업이 내겐 너무 벅차고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느껴 중단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2, 3번 고쳐 쓰면서 역사와 운명이라는 함수 관계를 생각케 되었다. 우리는 도대체! 더운 한여름 연습하느라 고생한 실험극장 스탱 및 연기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파벽(破壁)'은 제목이 시사하듯,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한자락이며 정리되지 않은 역사의 엇갈림이었던 일제와 해방 전후의 시간들이 현재에 어떤 영향과 잔재를 남기고 있는가를 재조명해주는 작품이다.
청산되지 못한 그 과거 역사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지 작가는 벽을 허물었고, 문제를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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