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혼자 사는 외로운 해병대 출신의 할배가 있다.
할배는 할머니의 70살이 되는 제삿날에 가족들과 시끌벅적한 제사를 지내고 싶다.
그러나 할배는 자식들과의 교류가 끊긴지 오래다.
할배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가족 대여가게로부터 가짜가족을 대여 받는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더 예절바른 가짜 자식들과 제사지내며 벌어지는 헤프닝이다.
<우리가 남인가>라는 가족대여업체로부터 그의 가족을 대여받는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려 모인 가족은 다 가짜다. 할아버지만 빼고.
가짜가족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이라는 모토로 진짜 가족행세를 하지만
역시 가짜다.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힘은 돈이다.
돈이면 그들과 더 오래 행복하게 즐길 수도 있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니 무척 즐겁다.
할아버지는 가짜가족을 진짜가족으로 혼동하고, 그들을 더 붙잡고 싶은 마음에
결국 있는 돈을 그들에게 다 써버린다.
할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남은 돈이 없다.
가짜가족에게는 에누리가 없다.
돈이 떨어졌으니 그들은 그냥 가 버린다.
할아버지는 또 다시 혼자가 된다.

사회가 급변해 가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은 점차 소실되어 가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모를 모시고 사는 부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으며, 편모나 편부 슬하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더욱 늘어가고 있는 것 등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가다가 정말 가족이란 개념도 변화하고 가족이라는 제도가 해체된다면? 하루가 다르게 각종 서비스업이 생겨나는 요즘에 '가족마저 대여해주는 업체가 생긴다면?' 이라는 발상에서 이 작품은 출발한다. 간혹, 누군가 특정 연극 제목을 대면서 "이 연극 재미있어?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다는 말이 지극히 주관적인 거라서 대답하기가 난감할 때가 있다. 코메디처럼 시종일관 가벼운 웃음만을 전달해주는 연극을 재미있는 연극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본 뼈대를 잘 세운 채 극이 진행되, 내용을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의미있는 웃음을 짓게 만드는 연극을 재미있는 연극으로 간주하는 사람 역시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후자의 특징을 지닌 연극을 선호한다. 극을 보면서는 시종일관 희희낙락 거리게 만들지만 극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별 의미없이 지나쳤던 장면 하나 하나가 생각나 마음이 알싸해지기 때문이다. 연극<행복한 가족>역시 기분 좋은 웃음과 더불어 알싸한 기분을 덤으로 선사해준다. 이 알싸한 기분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으니 주의하고 극장에 들어서기 바란다.

연극<행복한 가족>은 부인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바쁜 허노인, 큰아들, 며느리의 모습과 늦게 도착한 딸과 사위, 막내의 모습을 부산스럽게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웃게 만든다. 그리고 제사가 끝나면 관객들이 웃음을 딱 멈추게 만든다. 그것도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라는 놀이를 하듯이, 웃음을 뚝 그치고 그대로 멈춰라라고 연극이 말을 하는 듯 하다. 제사를 지낸 후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모여 제수를 나눠 먹는 음복도 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얼굴색이 바뀌는 그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무대만을 주시한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간혹 잊어버리는 관객이라면 무대로 덥썩 뛰어나가 할아버지 허노인과 같이 음복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돈이다. 이렇게 말하면 '설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당신은 세상을 움직이는 돈의 힘을 무시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엔 선뜻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행복한 가족>역시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못지 않게 '돈의 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연극의 시놉시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연극을 보면서 아마도 이런 추론을 할 것이다. 허노인이 대단한 부자임에 틀림 없을 것이라고. 제사를 준비하는 내내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모두 허노인의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기에 더더욱. 그러나 허노인은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허노인의 비위를 맞추기에 식은 땀을 흘리는 걸까? 절대 답답해 하지 말고, 계속 의구심을 키워보기 바란다. 극을 보는 내내, 허노인을 제외한 인물들의 과장된 행동과 과장된 웃음 속에 감춰둔 속마음을 모르는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힌트를 하나 말하자면, 이번 연극은 연극 속에 또 하나의 '연극스런 연극'이 숨겨져 있다. 극의 결말을 아는 관객이라면 치밀하게 짜여진 플롯에 감탄하면서 장면 하나 하나를 보게 될 것이다. 노인의 휑한 뒷모습과 외로움이 절절히 베어있는 얼굴에서 시선 역시 떼기 어려울 것이다. 인생이 서글프다는 생각 역시 들 것이다. 사위역의 김두용. 막내 역외 일인 다역을 한 최덕문의 순간 순간 바뀌는 표정 연기 역시 인생 자체가 연극이다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극의 완성도를 높혀준다. 또한, 12시가 어서 되기만을 바라면서 흥겨운 리듬에 맞추어 제사상을 차리는 모습은 제사를 하나의 행사로만 여기고 있음을 자연스레 느끼게 해준다.
극 속에선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정말 자식들은 지 혼자 큰 줄 안다니까' 극을 보면서, 이 말이 그렇게 가슴에 탁 박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잘난 자식들이 많이 있으면 무엇할건가?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 구성원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준 외로움의 그늘을 보지 못한다면 아무 필요 없는 것이다. 12시까지만 행복한 가족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그들이라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 온다. 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단조로운 무대에서 홀로 남은 허노인은 관객들의 땀구멍이 모두 입이라도 할 말이 없을만큼 만들어버린다(원래 이 멘트는 극중 사위의 대사로, 이 멘트로 관객석은 웃음보가 터진게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멘트는 극의 마지막에 가서 관객들에게 들어맞게 된다. 진짜 행복한 가족이라면 특정 행사 즉, 명절이나 제사등, 특정 시간에만 행복한 가족으로 보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진짜 행복한 가족일까?라는 질문조차 입밖으로 내놓기를 주저하게 하는 연극<행복한 가족>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극 속에서 제사가 끝난 12시까지만이 아니라 관객들이 공연을 본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니 공연을 본지 여러 날이 지나도. 이런 게 아마 연극보는 재미일지도 모른다. 되씹어보는 재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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