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페터 한트케 '보덴호를 건너는 기사'

clint 2024. 11. 10. 14:12

 

 

 

 

전설 속의 젊은 기사는 겨울밤에 말을 타고 살얼음에 덮인 보덴호를 건넌다. 

반대쪽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정말 놀라운 일이야! 

어떻게 그런 일을 해냈지! 얼음두께가 1인치 밖에 안 되었었는데!" 라며

진심으로 그를 축하해준다. 

그 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에서 떨어진다. 그는 곧 죽고 만다. 

자신이 얼마나 큰 모험을 했는지 깨닫는 순간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다. 

 

 

 

 

'보덴호를 건너는 기사'는 페터 한트케의 작품(Der Ritt uber den Bodensee)이다. 

작중인물들의 언어가 무의식과 기대와 태도를 강화하는 얇은 얼음과 같음을 보여준다. 

장난으로 시작한 언어유희가 나중에는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강제성을 갖는다. 

언어만이 줄 수 있는 전형인 언어횡포를 통한 언어유희를 이끌어낸다. 언어란 그 전달자에 의해 과정과 의미의 변형으로 유희에서 횡포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한트케의 작품 중 가장 흥미있고, 여러 면을 동시에 실험하고 있는 작품은 「보덴 호를 건너는 기사) (한국 공연명: 나방떼)일 것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다각적으로, 한트케의 연극적 의도를 아주 일상적인 언어와 동작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일관된 구성이나 논리적인 스토리 전개를 회피하고, 여러가지 다양한 상황, 상황에서 반응하는 각 인물들의 동작, 표정, 말로 글을 구성하면서, 이 작품은 우리 현실에서 무수히 발견될 수 있는 의식과 행위와 말의 자동화와 조작성, 즉 깨어있지 못하고 꿈속에서 말하고 움직이는 규칙에 얽매인 모습자체를 극의 근본주제로 삼고있다. 이 작품은 "꿈을 꾸고 있나요? 말하고 있나요?"라는 표제로 시작되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각성된 상태에 있지 못하고, 늘 일종의 꿈과 같은 상태에서 몽롱하게 반응하는 자동인형에 불과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이 작품의 타이틀을 이루고 있는 독일의 전설도 우리가 무시무시한 언어의 공포를 깨닫지 못하고, 꿈 꾸고 있는 듯 지내다가 일순간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잔혹성을 깨닫곤 놀란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 위의 전설에서 얇고 위험한 얼음판은 언어를 상징한다. 몽롱한 상태에서 위험스런 언어의 횡포를 깨닫지 못하다가 그 사실을 인식하자마자 일상의 안전은 완전히 파괴된다. 

 

 


극의 줄거리 대신 언어와 태도의 자동적 연관을 관찰하여 관객에게 현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충격을 준 이 작품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무척 충격적이다. <이 극을 공연할 때 등장인물은 그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그대로 써야 한다. 즉 실제배우가 극중인물이 되는 동시에 연기를 해야한다>는 한트케 자신의 노트는, 브레히트(Breckt)의 소외효과를 넘어서는 진정한 관객과 배우의 일치, 현실과 극장의 일치를 드러내주며, 연극이 곧 유희임을 실증한다. 이런 의미에서 또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연극적이다. 고도의 예술적인 동작의 표현을 요하는 이 작품은 의사교류의 본질인 관객과 배우 사이의 최소한의 간격과 극장의 핵심인 감각적인 육체의 움직임을 모두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된 페터 한트케(77)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면서 독일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온 작가로 그동안 여러번 노벨 문학상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1942년 오스트리아 남부의 그리펜에서 독일 군인 아버지와 세르비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트케는 어린 시절 동독에서 자라다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그라츠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1966년 첫 소설 <말벌들>과 희곡 <관객모독>이 성공을 거두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네 배우가 무대 위에 올라 별다른 플롯 없이 관객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형식의 <관객모독>은 인습에 대한 ‘모독’으로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실험극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