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수년 전 강제수용소를 방문했던 적십자대표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연극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적십자를 속이기 위한 차출된 포로들은 연극에서 각자 맡은 역을 연습한다.
소녀는 인형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소년은 다른 소년에게 팽이 치는 법을
가르쳐주려 하고, 여자는 매번 약속에 늦는 연인에게 화를 낸다.
그들은 계속 연습하고 이 연극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사령관과 마주하게 된다.
사령관은 유대인 수감자 중에서 고트프리트라는 인물을
이 사업의 이해와 수행을 하게 하는 일종의 통역관으로 임명한다.
사령관과 고트프리트는 함께 ‘각본’을 구상하고, 각 장면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이런저런 변화를 주기도 한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시에 사령관은 말한다.
기차를 타고 있지 않은 자신들의 상황을 상기하라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트프리트가 사람들을 연습시키고 있다.
어차피 그들이 하는 말은 연극의 말이다. 현실의 말과는 다르다.
하지만 누구나 연기는 한다. 현실에서 그러는 것처럼,
이 거대한 연극에서도 그렇게 연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고트프리트는 두려움에 떠는 어린 소녀에게 이야기한다.
잘해내면 곧 다시 엄마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기차를 타고 이곳으로 올 거라고....
'히멜베크(Himmelweg)'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뜻하는 독일어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이동한 길을 말한다. 그 길은 곧 죽음으로 가는 길이요, 극단적인 두려움이나 공포를 경험해야 하는 길이었다. 왜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유대인들이 그 길을 걸어가 죽어야만 했을까? 어떻게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그것도 가장 문명화 한 지역의 심장부에서. 규모에 있어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에 대해 우리는 흔히 인간의 광기나 비이성적 행위로 이해하려고 한다. 살인자들이 사악했기 때문에 또는 미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희생자들이 강력하게 무장한 적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머지 세계는 당황과 번민 속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를 몸소 체험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처럼 이는 역사의 정상적인 흐름을 방해한 단절이나 문명사회의 암과 같은 종양이 아니라 유럽 근대 문명과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이성과 기술 합리성이 낳은 사건이었다. 이성의 지배가 증대하는데 따른 예기치 못한 결과들을 진지하게 고찰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비극이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합리성은 대량 학살 집행들을 수치나 죄책감으로부터 면죄해 주었고, 이 끔찍한 사건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연합국들도 전략적 이유라는 이성적 판단에 따라 방관하며 침묵을 지키게 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러니까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지고 있던 중에 몇몇 적십자 대표들은 유대인 수용소를 직접 방문하고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물론 체코의 테레친(Terezin) 수용소처럼 외부인이 방문하는 것을 허용한 수용소는 나치의 대외 선전용이라 시설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고 인간 절멸이라는 재앙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보고서에는 아무런 문제점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단서를 바탕으로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특유의 심도 깊은 연극적 상상력을 풀어낸다. 수용소 방문을 신청한 적십자 대표, 방문을 허용하고 맞이하는 독일 사령관, 수용소를 안내하는 유대인 시장, 광장에서 팽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인형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는 소녀, 신문을 읽는 노인, 풍선 장수…. 뭔가 이상한 것도 같지만 연기도 재도 화장터도 보이지 않는,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이 수용소에 대해 적십자 대표는 보이는 대로 보고서를 써낸다. 그러나 그가 본 광경은 모두 연극이었다. 독일 사령관의 지휘 아래 수용소 유대인들은 배우처럼 적십자 대표에게 보여 주기 위한 연극 장면들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는 독일 사령관, 수용소 유대인들, 적십자 대표, 즉 가해자와 희생자와 관찰자 중 그 누구도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물론 그들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가 정의한 '회색지대' 사람들로,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이며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그 엄청난 고통을 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역사적인 현장에서, 각자가 놓인 상황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하게, 아주 성실하게 감당했을 뿐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그들을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무고하면서도 무고하지 않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진실을 직시하는데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두려움 때문에, 아니. 인간의 본능인 생존을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인간 절멸이라는 지옥 같은 현실에 맞서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모 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의 글 -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
<천국으로 가는 길>은 모두 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4장의 소제목은 "유럽의 심장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태어나 교육받고 지금 살고 있는 지리·문화적 공간에서 벌어진 가장 큰 참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의 역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참사는 바로 유럽에 거주한 유대인들의 절멸을 말합니다. 독자나 관객이 유럽 사람이든 아니든, <천국으로 가는 길>을 통해 누구든 자신과 관련있는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는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저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 결국 인간의 작고 나약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포.
- 희생자들의 조작. 종종 그 조작은 희생자들이 고소당하거나 망가지는 수준까지 강요되기도 합니다.
- 다른사람이 겪는 폭력 앞에서 누구나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감
- 문명과 야만 사이의 동맹
- 연극의 부정확한 힘. 그 힘은 진실이 밝혀진 곳에서도 숨겨진 곳에서도 발휘될 수 있습니다. 연극과 인생이 서로 얽혀 있는 긴장관계 살아가기 위해서 만약 인간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등장인물을 세울 필요가 있다면 그 공연은 결국 인생 자체를 질식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제가 2002년 이 작품을 썼을 때부터 독자나 관객, 연출, 배우들이 발견했으면하는 최소한의 주제들입니다. 지금까지 써온 여러 작품들 중 스스로 그나마 덜 부끄럽게 여기는 이 작품이 지금 머나먼 한국에 도착했다는 것은 제게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제 희곡을 한국무대에 다시 선보이는 김동현 연출과 코끼리만보 극단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 작품에서 유럽의 심장에 대해 뭔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내면의 심장에 대해 뭔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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