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페르난도 트라이스 데 베스 '시간을 파는 남자'

clint 2024. 10. 5. 15:43

 

 

은행의 주택 융자금으로 아파트 한 채 겨우 구입한 보통 남자 김씨. 
그는 평범함 회사원이지만, 그의 꿈은 붉은 머리 개미의 생식체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융자의 상환금과 늘어가는 생계비 지출에  
그 꿈을 이루는 일은 멀기만 하다. 
어느 날, 자기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짜본 김씨는 주택 융자금을 다 갚기 
위해서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씨는 곧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김씨는 5분의 시간을 통에 담아 팔기 시작하고, 
5분의 시간을 담은 상품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대박을 터뜨리고,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5분을 소비하며 사회는 크게 변하는데....
김씨의 좌충우돌 ‘시간’ 판매 황당한 그 이야기의 끝은 

‘새로운 경제체제의 수립’이라는 어마어마한 반전이 숨어있는데...

 



<시간을 파는 남자>는 72개국에서 32개 언어로 번역 출판된 「행운」의 저자 페르난도 트라이스 데 베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시간을 통 안에 담아 판다는 엉뚱한 상상, 시간을 소비하는 사회가 변하는 모습에 대한 유쾌한 풍자, 그리고 마지막 절묘한 반전까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기존의 '사랑'과 '연애' 위주의 식상한 소재에서 탈피 이 시대의 화두인 '경제'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면서 자기 삶의 '시간'에 대한 성찰을 말한다. 세상이 좋아지긴 했는데, 왜 바쁜 것은 늘 그대로일까요? 돈을 많이 벌어도 쓸 시간이 없다는 해괴한(?) 푸념도 종종 들려오고.... 현대인들이 새로이 느끼는 빈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잘도 갔을 것이다. 흰색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바쁘게 굴러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힘들게 출근하더니 저마다 벽 앞에 서서 타자를 친다. 굽혔다 폈다 하는 무릎, 모니터와 타자기를 번갈아 쳐다보는 머리의 움직임은 흡사 닭장에 갇힌 닭이 모이를 쪼는 모습과도 같다. 김씨는 이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데, 주택융자를 갚기 위해서는 35년의 세월을 꼬박 일하는 데 바쳐야 한다는 끔찍한 현실과 마주한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가 싶더니, 김씨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꿈꾸던 ‘붉은 머리 개미’ 연구를 시작하는 대신, 우선 사업으로 돈을 벌겠다고 결심한다. 여기서 그가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과정을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재미가 있다. ‘시간’을 통에 담아 팔기로 하고 ‘5분의 자유’, ‘2시간의 자유’, ‘일주일의 자유’, ‘35년의 자유’를 잇따라 상품으로 내어놓는 김씨의 자유주식회사. 대박이 나면 날수록 더 많은 시간통들을 만드느라 자유주식회사는 시간이 없다. 시간과 여유도 돈으로 사야하는 시대, 시간을 파는 회사도 시간이 없기는 매 한가지인 시대, 이 시대 역시 어느 시대를 닮아 있나. 그러나 아쉽게도 김씨가 처음으로 붉은 머리 개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발견하는 장면이라든지, 인생결산으로 넘어가는 대목, 혼돈에 빠진 사회를 다시 구하게 된다는 공연의 결말은 갑작스러운 데가 있다. 각기 <시간을 파는 남자>에서 ‘전환’으로 기능하는 중요한 지점들인데, 응축된 이야기를 담은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연결 고리에 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국악과 판소리의 오리지낼러티(Originality)란 어떤 것일까. 씩씩하게 발음해본다. “오리지낼러티”. 국악과 판소리의 이른바 ‘전통미’가 아스라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운데 오리지날 커피믹스 같은 발음이 슬렁슬렁 섞여오는 이유는 뭘까. 여러 요소가 섞인 공연을 보아서인가?  ‘2시간의 자유’와도 같은 공연시간을 체험하며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가능성을 ‘원점’에서 헤아려본다. 
(공연 리뷰 : 김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