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황매희 '천선배'

clint 2022. 10. 19. 10:14

 

 

이 작품의 제목 <천선배(天仙配)>는 워낙 유명해서 마치 고유명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한자 풀이를 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님의 배필'이라는 뜻이다. 한국인에게도 선녀이야기 라면 낯설지 않은 느낌이지만, 이 작품의 근원 설화인 '동영전설' 관련 레퍼토리는 중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르에서 오랜 세월 다루어진 익숙한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선배>가 황매희의 대표작으로 인식되는 까닭은 루훙페이가 각색한 <천선배>의 전국적 흥행에 힘입어 황매희까지도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이 걸작인 이유는 사회주의 건국초기라는 시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문학성과 예술성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1949년 중화인민 공화국이 성립된 뒤로 안휘성 안경 지역 작가와 학자들이 후위팅의 구술본과 곤기서국의 목각본을 바탕으로 <천선배>를 각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1952년 반유수가 각색한 <길에서 만나다>가 상해(上海)에서 공연되었고, 이어서 1953년 루훙페이가 각색한 <천선배>가 탄생했다.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 임금님이신 옥황상제에게 일곱의 딸이 있었다. 그 중의 천방지축 깜찍한 막내딸 '칠선녀'는 따분하기만 한 하늘나라 선녀 노릇에 속세의 삶이 궁금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하루는 선녀 언니들과 몰래 은하수에 놀러가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그곳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모습이다. 뱃머리에 서서 물고기를 낚는 늙은 어부, 깊은 산에서 일하는 용맹한 나무꾼 소년, 시골 마을의 분주한 농사꾼들과 밤낮으로 열심히 책을 읽는 선비 그리고 시끌벅적 풍악소리 울리며 신부를 맞이하는 혼인날 풍경이 그렇다. 이윽고 굵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생김새는 듬직한데도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 그의 이름은 효자 '동영', 곡절인즉 이러하다. 본래 아비와 둘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아들은 아비가 죽은 뒤 장사 지낼 돈이 없었다. 결국 부원외 댁에 빚을 내었고, 삼년 간 머슴을 살아 갚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가련한 처지의 동영에게 푹 빠져버린 칠선녀는 속세로 내려가서 그와 혼인하기로 결심한다. 선녀 옷을 벗어놓고 아리따운 아가씨로 둔갑한 칠선녀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침 길을 가던 동영과 처음 마주친다. 자신을 보자 얼굴을 붉히며 피하는 순박하고 진중한 동영의 모습에 반하고, 마을의 수호신 '토지신' 영감을 불러다가 혼인 성사를 위한 모의를 한다. 동영이 가려던 길을 칠선녀가 자꾸 가로막고 떼를 쓰듯 애교를 떨어 옥신각신하던 중, 어느 노인의 모습을 한 토지신이 나타나 싸움을 중재하는 척하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도록 부추긴다. 결국 노인이 주례를 서고 느티나무가 중매를 서는 걸로 해서, 그 둘은 혼인하여 평생을 언제나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코믹한 토지신의 중재, 그리고 동영이 말 못하는 느티나무를 세 번 불러 결국 입을 열게 하는 장면은 유쾌하다. 그런데, 동영은 가난뱅이에 자유로운 몸도 아니다. 머슴 문서에 식솔 하나 없는 홀몸이라 적었으니, 아내를 부씨네로 데려가 겪게 할 고생이 태산 같은 걱정거리다. 그러나 토지신의 말대로, 그녀 자신이 원해서 주체적으로 선택한 일이다. 한편, 부원외는 아녀자를 감언이설로 꾀어왔다며 내쫓으려다가, 혹 하룻밤 안에 비단 열 필을 짜내면 머슴살이를 백일로 줄여줄 테고, 그걸 못 해낸다면 삼년 머슴살이에 또 삼년이 추가될 거라며 공갈한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로 동영은 또 올가미에 걸려든 듯 절망한다. 하지만 아내는 보통 사람이 아닌 하늘나라 선녀님이 아니던가. 게다가 속세에서 위급한 일이 생기면 피우라며 큰언니가 전해준 향도 가지고 있다. 남편이 부공자에 의해 맷돌질을 하러 불려나간 사이, 하늘에서 향 연기를 보고 내려온 선녀 언니들은 날이 밝기 전까지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비단 열필을 다 짜주고 돌아간다. 그 노랫가락이란 '오경조' 즉 일경 의 소쩍새, 이경의 까치, 삼경의 산비둘기, 사경의 기러기, 오경의 수탉이 우짖는 소리에 맞춰 반복되는데 그야말로 새처럼 나는 듯이 자유로운 운율의 미가 넘친다. 한편, 밤샘 노동을 하고 새벽에야 피곤에 찌들어 돌아온 동영은 아내가 짰다는 비단 열 필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순진하게도 이것은 직녀의 솜씨가 아닌가 싶다며 아내를 추켜세우고 기뻐한다.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불의한 노동의 삶 속에서 혹 어느 낭만적인 선녀님의 강림을 꿈꾸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 부씨네에 머슴 살러 온 지 석 달 남짓이 지났다. 드디어 백일 간의 고된 머슴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부부가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바로 그날이 온 것이다. 그러나 부원외의 생각은 다르다. 예전의 삼년 머슴살이 문서를 들먹이는 것이었다. 이에 칠선녀는 하룻밤 사이 비단 열 필을 짜면 동영의 머슴살이를 백일로 줄여준다고 했던 새 문서를 내밀고, 아직은 98일이더라도 오는데 하루 가는 데 하루까지 포함하면 꼬박 백일이 된다고 주장한다. "달력에 있는 날짜가 전부 백성들의 시간인데 왜 안 따져요?"라며, 상하 지위로 인한 권위에 결코 눌리지 않는 여인의 모습이 당차다. 또 관아에 고발하겠다는 협박에도 논리 적으로 쏘아붙이고, 다 기댈 곳 없는 너희들 생각해 붙잡는 것이라는 자본가로의 달콤한 허위의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동영 역시 더 이상 노예가 아닌 "내 자신의 주인 되어" 살고 싶어 "움막집이 허름해도 제 맘대로 살고, 배고픔에 시달려도 마음은 편하죠."라 말한다. 집으로 가는 길, 부부는 알콩달콩 살아갈 나날에 한껏 들떠 있었다. 곧 태어날 응석둥이에게 입힐 옷도 지어놓았던 터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늘 그렇듯 잠깐동안의 아련한 기억일 뿐이던가. 옥황상제께서 대노하시어 몰래 속세로 내려간 막내딸에게 속히 하늘나라로 되돌아오라 명하신 것이다. 도움을 주었던 선녀 언니들도 옥에 갇히고, 아버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동영이 다친다. 떠나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철 지난 장난이나 하는 해맑은 서방님을 두고, 칠선녀는 자신이 선녀라는 사실을 밝히고 떠나야 한다. 잔혹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지 않도록, 의자 대신 걸터앉은 돌덩이를 선녀가 하늘로 올라갈 때 쓰는 사다리와 닮았다고 비유해도, 흰 부채에 적힌 글귀로 속세의 인간과 이별해야 하는 달나라의 항아님과 견주어도 소용이 없다. 사랑에 눈이 멀어 바보가 된, 이 남자 못 알아듣는다. 결국 금비녀를 원앙새 한 쌍으로 변신시켜 친절히 설명해준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이라는 현실에 무너지듯, 동영은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에 혼절하고 만다. 그 사이 칠선녀는 손가락을 깨물어 치맛자락에 편지를 쓴다. 하늘나라든, 인간세상이든, 그 어디에 있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 같다며, "지금 제가 아이를 가졌는데,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는 없어요. 아들을 낳으면 동수라 부르고, 딸을 낳으면 벽도라 부를게요. 내년 따스한 봄에 꽃이 피는 날, 느티나무 아래서 아이를 보내줄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귀천한다.

 

 

이러한 동영과 선녀 이야기 외에도, 중국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전한다. 소위 4대 민간전설이라 손꼽히는 <견우와 직녀>, <맹강녀>, <백사전>, <양산백과 축영대>가 그렇다. 황매희 <천선배>의 근원 설화인 '동영 전설'은 유가적 덕목인 ''를 권면하는 요소와 선녀가 인간의 배필이 된다는 도교적 판타지가 결합한 이야기로, 오늘날까지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장르로 재창작되어 왔다. 이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동한(東漢)의 환제 원년(AD,151) 이후에 세워진 산동성 가상현 무량사의 석각화상이라 하겠다. 이 그림에는 동영이 아비를 수레에 싣고 공양하는 모습과 날개옷을 입은 여인이 허공을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문헌 기록으로는 동한 말 조식의 시() <영지편> 중에 가난한 동영이 빚을 얻어 아비를 봉양하니 선녀가 베를 짜서 동영을 도왔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몸을 팔아 아비를 장사지냈다'는 이야기는 동진 때에 이르러 간보의 수신기 권1 '동영' 조에 처음 보인다. 이 기록에서 선녀가 동영과 혼인하고 베를 짜서 빚을 갚아준 것은 동영의 효심에 하늘이 감복한 까닭이었다.

 

이처럼 루훙페이가 각색한 <천선배>는 그간의 동영 이야기를 충실히 수용한 완결판이면서도, 건국 초기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사랑을 추구하는 여성의 주체성을 돋보이게 했다. 속세로 내려오게 된 것도 옥황상제의 의중에 따라 피동적으로 보내진 것이 아닌 스스로의 결심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동영의 효심을 칭송하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선녀와의 사랑과 이별에 방점을 두었다. 아울러 곳곳에 노동의 숭고함과 즐거움이 표현되어 있고, 동영의 신분도 선비가 아닌 가난뱅이로 설정하여 부 원외와의 갈등을 빈민의 시간을 갈취하는 지배적 자본가 계급과의 갈등으로 치환했다. 절묘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상적인 분위기로 유쾌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전통 황매희로의 느낌을 잘 살렸다고 판단된다.

 

20세기 중국의 대표적 지방희로 손꼽히는 황매희는 본래 안휘성 안경 부근의 농촌과 주변 소도시에 유행하던 것으로 본래는 '황매조'라 불렀다. 1926년 안경에 유입된 뒤로 음란하다고 여겨져 금기시되기도 했으나, 1953년에 와서는 호북성 황강지구 황매현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식 명칭을 '황매희'라 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