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찬규 'XXL레오타드 안나수이손거울'

clint 2017. 5. 26. 18:13

 

 

 

연극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서로 다른 환경과 불공정한 경쟁에서도 불평하지 말고 이겨내야 하는 청소년들의 일상과 함께 현실적 고민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준호'는 여성용 레오타드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는 독특한 취향으로 입시경쟁의 불안과 초조함에 대한 심적 안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레오타드를 입은 준호의 사진이 얼굴이 모자이크 된 채로 올라오고, 준호는 그것을 올린 사람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희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체육 수행평가에서 짝을 구하지 못했던 희주가 준호의 사진을 빌미로 체육 수행평가 과제를 함께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준호는 어쩔 수 없이 평소 어울리지 않았던 희주와 춤을 추게 되고, 평소 어울리지 않았던 '준호''희주'가 가까워지면서 주변 친구들로부터 의심과 의혹을 받게 되는데....

 

 

 

 

 

희주의 절친이었지만 안나수이 도난사건으로 멀어진 민지는 준호의 여자 친구로, 임대아파트에 사는 희관과 설교가 특기인 태우는 준호의 내적 갈등을 드러내는 인물들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탈되지 않는 이들의 관계로 인해 작품이 던지는 질문도 균형감을 갖는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가?

레오타드를 입은 변태로 자신을 몰아가는 희관에게 폭력을 퍼부은 준호는 선생님 앞에서 오히려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냥 막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면 어떡하냐고, 왕따시키면 어떡하냐고 울부짖는 준호에게서 도저히 이기지 못할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엉덩이를 조여 오는 레오타드를 입고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선을 그리던 준호, 몸에 입혀진 레오타드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었기에 두려움은 더욱 깊이 사무친다.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극 중 모든 인물이 행동하는 이유이자 동력이다.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은 채 친구들 앞에 서고, 희주는 안나수이를 돌려주기 위해 민지 앞에 선다. 둘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겨운 파 드 되 이후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미덕이다. 철 기둥은 견고하다. 준호는 전학을 가고 희주는 또다시 철봉을 본다. 오래 매달리기 60초를 기어이 채워낼 것만 같은 희주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체대 입시 준비 따위는 그만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하기에도, 파이팅을 외쳐주기에도 씁쓸함이 남는다.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통념에 종속된 노예적 취향을 본다. 사회적 편견이 나의 생각과 감정을 동여매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니, 내가 그 안에서 나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을 깨고 나오는 것만이 정말 해답일까? 나는 분노하고 용기 냄과 동시에 타협한다. 준호의 취향은 언제까지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희주는 안나수이를 깨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철 기둥을 의식하며 사는 것도 결국은 나를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작가의 글

몇 년 전, 아파트 단지에 있는 독서실에서 총무를 한 적이 있다. 8개월 정도 일하면서 고1 남자아이와 친해졌다. 맨유의 웨인 루니와 떡볶이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나도 떡볶이를 좋아한 터라 그 친구에게 근방에 맛있는 떡볶이집이 있다고 알려주었고, 같이 간 적도 있었다. 그 떡볶이 집은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 15분 정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동네에 있었다. 그 친구는 다가구 주택들이 몰려있는 동네 분위기를 낯설어했다. 바로 옆 동네라 종종 놀러 왔을 거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그곳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상가부터 학원까지 모든 게 있어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이 동네에 친구가 없느냐고 물어보니 자기 친구들은 모두 같은 단지에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이 동네 아이들과는 되도록 어울리지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웨인 루니와 위닝 일레븐 이야기를 하면서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그 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쯤, 그 친구는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입대를 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보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바부터 연애까지 여러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친구가 아파트 단지 밖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얼핏 삶의 범위가 넓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 대부분이 안착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이런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다름을 경험할 수 없는 환경들. 자기와 다르면 쉽게 배제하고 외면할 수 있는 공간들의 연속. 결국에는 그 친구도 단지 안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이십대를 보내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초연 연출가 노트 - 전인철

연극 (XXL레오타드안나수이손거울의 초연 연출가로서 공연을 만들며 고민했던 것들을 인물과 관계 중심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부디 무대화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초연에서는 주로 부모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이라는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인물들이 어떤 환경에 살고 있었으며, 그래서 어떤 결핍과 대립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했다. 준호는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다. 수학 수업이 있는 날 레오타드를 입는데, 학교 수업의 중압감을 레오타드 입는 것으로 해소한다. 레오타드는 부모의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비밀의 공간이다. 레오타드가 공개되는 사건은 민지와 희주가 다시 만나게 되는 매개가 된다. 희주는 준호가 비밀을 잃어버리게 하는 인물이다. 준호의 비밀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희주의 외로움과 억압도 함께 드러난다. 가난한 부모를 둔 희주는 학업에 집중하기보다 알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철봉에 안간힘으로 매달리듯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버티는 존재다. 민지는 부모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보호가 필요한 존재이며, 항상 거울을 들고 다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남자 친구보다는 선생님이나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고 그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려 한다. 아침엔 늘 어머니가 머리를 빗겨준다. 안나수이 손거울은 그런 부모의 상징물이다. 희주는 민지를 동경한다. 민지와 희주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여자 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민지도 힘들고 외로운 존재다. 선생님은 체육을 못하는 체육 선생님이다. 학생들을 보살펴주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그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일한 어른으로, 특이한 점은 억압자로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조력자로도 그려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존재다. 체육 수행평가는 중요하다. 춤을 추고 파트너에 대한 관찰일지를 쓰며 상대에 대해 몰랐던 결핍을 알게 한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준호와 희주가 춤을 추며 손을 잡는 순간이 무척 중요하다. 남자 배우가 여자 레오타드를 입으면 관객들은 아주 흥미로워한다. 준호는 붉은 레오타드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더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서 이 연극을 만드는 사람은 반대편에 있는 희주와 맥도날드 유니폼’, ‘민지와 안니수이 손거울의 의미를 잘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준호는 꼭 레오타드만 입어야지, 그 위에 반바지 같은 걸 입어서는 안 된다.

희주가 전력을 다해 무대 위를 뛴다라는 지문이 있다. 되도록 많이, 배우가 정말 힘들 정도로 뛰는 게 좋다. 뛰고 나서 철봉에 매달리는 순간, 관객이 희주와 준호 두 사람 내면의 답답함과 만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초연에서는 열 바퀴 뛰었다.

공간 이동이 많다.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무대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도구도 번거롭다. 배우만으로, 배우의 연기만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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