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일어났을 법한 에피소드를 담은 ‘쉬는 시간’.
'쉬는 시간'은 어느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새로 전학 온
한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는 단조로운 학교생활과 교실의 일상을 그려 낸다.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주인공들의 특별한 것 없는 쉬는 시간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연극 ‘쉬는 시간'은 그들은 공부하고,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고,
춤추고, 수다 떠는 7번의 쉬는 시간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소소한 공감과
웃음을 선사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흐르는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감정 선이었다.
이를테면 전학생 ‘교감’이 전학 오자마자 앉게 된 맨 끝자리 책상에 붙어 있던
노란 포스트잇에 계속 신경 썼던 것이라든가-결국 그 메모 내용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진지한 그들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데
뭔가 심각한 것이리라 짐작할 수 있었던 교감과 현우의 중국어 대화라든가,
중간에 다 같이 합창하는 의미심장한 노래 등이 그러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극을 보는 내내 그 알쏭달쏭한 상황들이 무언가 복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뜻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연극은 다소 뜬금없이 종료돼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책상 자리에 앉았었던 학생이 어떤 학생이었는지를 계속 캐묻는 교감에게
그게 이제 와 무슨 상관이냐는 듯 잊힌 사람 취급하며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았던 기존 학생. 하지만 그에 반해 연극은 내내 간접적으로
그 마지막 자리 학생을 계속 상기시키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 예로는 현우가 ‘어차피 교감 네가 없더라도 누군가는 나를 지켜볼 텐데 뭐’라고
했던 대사를 들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그 마지막 자리 학생에 대한 언급은
일체 나온 적 없으나 이들이 그 학생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마지막 학교 수업이 끝나고 갑자기 내리는 비에 교실로 다시 돌아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린 마지막 에피소드는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 담긴 친구의 얼굴이 앞에 뻔히 보이는데 마치 친구가
모스부호로 속마음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
이 연극이 내포한 의미 비슷한 걸 좀 알고 싶은데 잘 와 닿지가 않아서 답답했다.
그런데 연극이 갑자기 끝이 나서 조금 허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감이 잘 안 온다.
지금 이 연극을 다시 보러 가야 하나 벼르고 있다. 기억나는 연출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진행되는 수업 시간은 조명이 꺼진 채 소리만으로 진행되었다는 점.
그 컴컴한 무대를 바라보며 수업 풍경을 관객들의 상상에 맡겼던 점이 꽤 괜찮았다.
수업 시간을 각자 연상해보는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쉬는 시간에 충실하였다.
작가의 글
희곡 「쉬는 시간」은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3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4교시 끝나고 점심시간, 5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6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7교시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으로 장면을 구성했다.
이 희곡으로 공연을 올린다면 연극반 사정에 따라 바꿔서 강연하면 좋을 것 같다. 0교시가 시작되기 전을 한 장면 만들어도 좋고, 7교시가 끝난 뒤 방과 후 특별활동이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이나, 엠f 지율학습 전 저녁 시간을 설정해도 무방하다. 마지막 장면이 좀 어둑한 배경에 빛이 섞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비가 오다 개는 설정을 했는데,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밤이라면 벌이 뜬 맑은 하늘이어도 좋을 것 같다. 과목을 바꿔도 재미있을 것이다. 내 경우 1교시에는 수학을 설정했는데 ‘기울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곁에 있던 사람이 영영 떠나거나 한 사람이 새로 생기면 삶은 기우뚱, 기울어진다. 2교시 중국어 수업에선 ‘외국’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국적을 기준으로 사람은 국민, 외국인, 무국적자 이런 식으로 나뉜다. 국적 말고도 우리를 나누는 기준은 많다. 이념, 민족, 성별, 계급.... 이런 것들은 만들어진 기준이기 때문에 노력하기에 따라서 경계가 흐려질 수도 있다. 3교시는 사회문화로 설정했는데 사회를 함께 이루며 살아가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과외 숙제로 받은 영어 문제를 채점하는 장면을 잡았다. 극중 시현은 동그라미와 빗금을 먼저 긋고 답안지를 보고 정답과 오답을 적당히 써낸다. 한국 사회가 굴러가는 원리가 보이는 것 같다. 5교시는 중 고등학교 시절 매를 맞아가면서 음악을 배운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6교시는 문학 시간을 잡았는데, 어떤 고등학생이 그냥 다 자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해줬다. 실제 공연에서 공연이 흘러가다가 다 자니까 정말 좋았다. 관객들과 함께 몇 분 동안 암전 상태에서 쉬거나 자는 것도 재미난 체험이 아닐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뭘 써야 할지 몰라서 많이 고민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고잔동을 혼자 걷다가 동네 사람들이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느꼈다. 나 역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다린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쉬는 시간〉은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는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별무리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고잔이란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니 ‘꽂안’, 그러니까 꽂의 안쪽이란 뜻이라고 했다. 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바닷물이 고잔동까지 들어왔다고 들었다. 바닷가 별무리극장 바깥에 앉아서 쉬다가 공연을 보고 나오는 학생들을 보았다. 별무리 같은 학생들이 극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편 같은 무대에서 지평선고등학교 학생들이 공연하였다.
이양구
연출노트 - 초연 연출가 이연주
연극 〈쉬는 시간〉은 어느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의 쉬는 시간 풍경을 그리고 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누군가는 자습을 하고, 누군가는 수업 시간에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푸느라 친구에게 특별 과외를 받고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10분의 시간을 보내던 교실에 전학생이 찾아온다. 누군가가 떠나고 비어 있던 자리에 또다시 누군가가 찾아오면서 아이들은 잠깐이나마 떠난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일곱 번의 수업을 하면서 그만큼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 지나간다. 학생들은 교실에 머무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옆 반의 누군가가 찾아왔다가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또다시 사라지기도 한다. 학교는 교실은 그렇게 늘 채워지기도, 비워지기도 하는 시간이자 공간이 된다. 시간과 공간은 모든 공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특히나 〈쉬는 시간〉에서는 주요한 요소로 드러난다. 그래서 연출 목표에 있어서 다른 공연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시간
희곡에서 수업 시간은 다뤄지지 않는다. 각 장의 쉬는 시간은 수업 시간이 끝나고, 또 다른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매번 다른 일이 생기거나 같은 일이 반복되는 시간이 쌓여가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다. 암전 중 이뤄지는(이뤄진다고 여겨지는) 수업 시간은 음향으로 채웠다. 예를 들어, 1장의 쉬는 시간이 끝난 후에 학생들이 중국어 수업을 준비하면서 조명이 꺼진다. 그리고 암전 중 중국어 회화 녹음 방송을 들려준다. 그리고 2장이 끝난 뒤 암전 중에는 수업 시간에 갑자기 민방위 방송이 나오는 등 학교에서 방송으로 나올 수 있는 소리를 삽입했다. 그리고 수업 시간의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전달하고, 쉬는 시간 학생들의 소리나 음악은 스피커를 통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수업 시간의 딱딱하고 정적인 느낌과 쉬는 시간의 생기발랄함이 구분되도록 했다.
공간
지문에는 “책상은 모두 서른 개지만, 무대에는 복도 쪽 창가에 놓여 있는 여섯 개만” 보인다고 쓰여 있다. 실제 교실에서 공연하거나 극장이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크지 않은 곳이라면, 서른 개의 책상을 모두 배치해도 좋을 것 같다. 학생의 수를 늘리거나 일부는 객석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희곡에서 빈자리, 빈 교실에 대한 명시가 꽤 있다. 공연 당시에 2학년 5반 학생으로 출연한 배우는 네 명이었고, 전학생 앞의 두 자리는 늘 빈자려로 두었다. 쉬는 시간에는 잠시 앉는 자리로 쓰기도 했지만, 수업 시간이 임박하면 그 자리는 비워두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부재를 표현하는 것과 함께 전학생과 다른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보여주고자 했다.
쉬는 시간과 구분되는 장면은 점심시간과 하교 시간이었다. 점심시간 교실엔 학생들이 없지만, 그들의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잠시 비어 있지만, 학생들이 존재하는(존재하던) 공간임을 표현하고자 점심시간 방송을 사용했다· 1분 이상 음악이 흐르는 빈 교실을 보면서 잠시나마 관객들도 교실에 함께 존재하는 시간이 되었다.
〈쉬는 시간〉은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함께 묻어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공연이다. 지평선고등학교 학생들의 공연을 보면서 학생들이 무대와 한데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새롭고 낯설게 들여다보는 것이 행복했다. 앞으로 〈쉬눈 시간〉을 공연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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