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정숙 '들풀'

clint 2016. 11. 12. 20:30

 

 

 

 

 

임진왜란 당시 풀뿌리 민초들만이 남아 임진왜란 7년동안 끈질긴 저항을 계속했던 수영성 사람들의 사랑과 조국애를 다룬 2002 부산아시안 게임 창작 뮤지컬 이다. 김정숙씨(44)는 극작가로서도 유명하지만 여성연출가 가운데 최초의 뮤지컬 전문 연출가라 할 수 있다. 남녀를 통틀어 거의 독보적인 창작뮤지컬 작가, 연출자, 제작자이기도 하다. 1989년 그가 주축이 돼 창단한 '모시는 사람들'은 한해 평균 한편 정도씩 창작뮤지컬을 만들었다. 그가 써서 1996년 초연한 뮤지컬 '블루 사이공' 은 비운의 명품이었다. 전쟁의 비인간성과 비극을 우리말의 결을 살린 뛰어난 음악과 배우들의 혼신 연기, 그리고 연극성 짙은 문법으로 핍진하게 표현했다. 매년 수정을 거듭, 완성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봄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면서 고별공연을 하고 말았다. 그간 서정적인 울림으로 반전 (反戰) 메시지를 들풀처럼 전했던 그 순도높은 휴머니즘이 국가의 이라크 파병 결정 앞에서 그만 억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대 그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렷다.

 

 

 

 

 

구한말 신분적 압제와 안팎에서 죄어 오는 경제적 칠곡을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사회로의 질서와 이념을 뿌리 내리고자 

끝까지 싸우다 죽은 시대를 뛰어 넘는 민중의 건강한 모습들- 그 삶을 되새기는  '들풀' 당시 조선민중이 얼마나 사회혁명에 대해 강렬한 의지와 열정을 갖고 있었으며  또한 조선의 민중이 그들의 자손에게 자랑스럽게 물려 줄,  그래서 자손들의 가슴이 활활 불타오르게 할 혁명적 행위와 이념을 역사의 전면에 꽃피웠던가를 밝히는 드라마를 통해  동학혁명이 지난날에 머무르고 마는 과거의 한 사실이 아니라  오늘날 당면한 우리의 과제와 만나게 하는 생생한 역사의 숨소리를 느끼게 하는  드라마인 것이다. 이 '들풀'은 동학 형명 최후의 항전지인 '우금치전투'에서 죽어간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를 극화한 뮤지컬 드라마이다. 무대는 1894년의 11월 우금치 고개로서 혁명 당시 공주성을 치기 위한 농민군의 주공격로로서 농민군 수만명이 죽었다고 하는최대의 격전지이다.

동학농민혁명과 언제나 함께 거론되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사형장면에서 시작하는 뮤지컬 는 '우금치전투'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을 되살리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부상출신의 접주 박래규와 그의 어린 아들 귀득이, 노비출신 순익이와 가난한 농사꾼 최판석, 김평노와 광대출신 홍치서, 무당집 말 못하는 딸 버벙이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하나의 뜻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모이면서 드라마는 더욱 풍부해진다. 모두에게 어머니 같은 밥대장 시원네와 농민군 밥아주머니들도 같은 맘으로 함께하고 있다.

 

 

 

 

 

김씨는 82년 극단 에저또의 제8회 대한민국연극제 출품작 '농녀 (農女)' (작 윤조병, 연출 방태수) 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프로무대에 나섰다. 85년 '마지막 키스를 당신께' (작 윌리엄 인지) 를 연출했다. 본래 희곡을 쓰려고 했으나 "연극을 알아야 희곡을 쓸 수 있다" 는 말에 스태프를 거쳐 연출에 입문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극작, 연출을 겸하며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극단을 창단하면서부터. 한창 외국뮤지컬이 미군의 씨레이션 박스처럼 투하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뮤지컬을 "연극이라는 장르의 확장 개념" 으로 파악했다. 뮤지컬의 음악과 춤을 '우리 시대 우리 연극 만들기' 라는 그의 연극 화두에 녹여낸 셈이다. 통일 문제를 다룬 '꿈꾸는 기차' (92년) 나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들풀' 등 사회성 짙은 묵직한 뮤지컬을 공연했다. 그는 "무엇보다 지난 20년간 늘 함께 꿈꾸는 유일한 동료이자 작업 파트너로서 작, 편곡을 하는 권호성씨 (41) 가 곁에 있어서 안심하고 매진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그의 연극, 연출론(論) 은 각각 "우리 인간됨의 확인" 과 "연극이 인생의 거울이듯 연출은 배우의 거울" 이라고 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산다는 점을 전제로 하되 인간이 역사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무엇' 을 찾고 보여주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됨' 의 적(敵)은 '망각' 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는 순간  나는 세상에 휩쓸리고 싸움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연극은 객석에 관객을 앉혀놓고 모든 불을 끈 다음 시작되는데 그때부터 연극은 '인생 반사경이자 나침반' 이 된다. 그는 어린이연극에도 관심이 많다.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무대화한 '강아지똥'(2001) '몽실언니'(2004) 로 권씨로부터 "어린이가 있는 세상에서 평생 하라" 는 말을 들었다. 이들 작품으로 낙도 어린이를 위한 공연에도 나선다. 김씨와 극단멤버 50여명은 '왜 연극을 하는가' 라는 초심(初心)과 문제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연극에 임하는 태도 가 워낙 성자적, 순교적이어서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늘 실패 요인을 떠안고 가는 형국이다.
그는 오디션을 보러온 이들에게 묻는다. "우리 작품 보셨습니까." 그리고 다짐을 받는다. "연극은 함께 하되 생활은 책임지지 못합니다." 대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물 쓰듯' 돈을 쓴다. 속세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극단이랄까.
그는 "극장은 관객이 사람을 그리워할 때 사람의 향기를 느끼러 찾아오는 곳" 이라면서 "관객이 배우의 테크닉 뿐 아니라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때 연극이 살아남고 중흥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술 더떠 '배우 = 예수 = 부처' 라고 단언했다. 배우는 관객들이 돌아올 곳을 미리 마련해놓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가치' 를 추구하기 위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 를 선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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