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제1막
한 대학에서 추가 졸업식이 열린다. 졸업자는 봉구 한 명뿐이다. 그는 7년만에 졸업을 하게 된다. 그것도 아버지 영팔이 학교에 땅 500평을 기증한 덕분이다. 형식적인 졸업식이 그나마 학장의 바쁜 스케줄로 어영부영 끝나 버린다. 영팔은 아들 봉구의 졸업식에 감격해 하며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한다. 영팔은 봉구에게 피서를 할 겸 송추의 별장 가자고 한다. 만복장이라는 이름의 별장은 봉구의 탄생 기념으로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준 것이다. 둘은 송추로 향한다. 만복장에서 방여사가 화투장을 외우고 있다. 그녀는 화투로 돈을 번다. 기껏해야 천원이 조금 넘는 돈이지만 그것도 그녀에게는 아쉬울 뿐이다. 몇천 원의 돈을 위해 그녀는 화투에 손톱자국을 내 사기 화투를 치기도 한다. 방여사는 종업원 고순에게 짧은치마를 입혀 손님을 모셔 오라고 내보낸다. 고순이 영팔을 봉구와 들어온다. 방여사는 그들에게 자신을 만복장의 주인이라며 소개한다. 영팔과 봉구는 그녀의 거짓말에 놀란다. 그녀는 맥주를 내오며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의 숙박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봉구는 방여사의 상술과 거짓말에 화가나 경찰을 부르자며 영팔을 부추기나 영팔은 그를 말린다. 영팔은 자신들은 회사 상사, 부하 사이며 여행을 왔다고 똑같이 거짓말을 한다. 방여사는 투숙객들을 모두 불러 인사를 시킨다. 모두 간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눈다. 방여사는 무료함을 달래 자며 화투판을 벌인다. 아내의 유언 때문에 도박, 여자, 술을 멀리해 온 영팔은 화투를 할 줄 모른다. 방여사는 영팔에게 '섯다'를 그르쳐 준다. 이를 보고 있던 봉구는 화가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들이킨다. 삼국이 밖에서 권투 연습을 하다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곰을 보았다며 호들갑을 떤다. 그 말에 봉구가 비틀대며 곰을 잡겠다고 문 쪽으로 걸어간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이도길이 들어온다. 봉구는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러 대다 술에 취해 쓰러진다. 도길은 산에 오르다 비가 올 것 같아 만복장으로 왔다며 묵을 방을 빌린다. 작은 소란이 끝나고 다시 화투가 시작된다. 여기에 도길도 끼여든다. 영팔이 계속 돈을 따자 방여사의 표정이 좋지가 않다. 이때 위층에서 방을 치우고 있던 고순이 라디오를 들고 뛰어 내려온다. 살인 강도가 송추에 잠입해서 경찰들이 송추를 겹겹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강물이 불어나고 이들은 산에 갇히게 된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이때 한 사내가 들어온다. 모두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비를 피해 왔다며 방을 빌리려 한다. 방여사는 겁에 질려 쭈삣거리며 방이 없다고 한다. 그는 아무 대서나 자겠다고 버틴다. 겁이 난 방여사는 승낙하고 만다. 사내가 고순을 따라 방으로 올라가고 투숙객들은 방여사를 나무란다. 사람들은 밤에 불침번을 세워야겠다는 둥 걱정을 한다.
제2막
이틀이 지나고 이른 아침 봉구가 밖에서 들어오며 땀을 닦는다. 그는 곰을 잡기 위해 산에 오르는 길가에 함정을 파고 오는 길이다. 거실에서는 윤숙이 앉아 있다. 그녀는 손에 들린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짓고 있다. 봉구를 보자 그녀는 들고 있던 편지를 그에게 건네며 서울에 가면 잡지사에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는 위로 올라가며 여덟 시에 자신의 방에 와 달라고 한다. 봉구는 그녀의 이상스런 모습에 의아해 한다. 영팔이 내려오자 봉구는 윤숙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그녀가 자살을 할 것 같다고 한다. 영팔은 놀라며 봉구에게 그녀를 말리라고 한다. 이때 윤숙이 화를 내며 내려온다. 그녀의 손에는 흰 알약과 십원짜리가 수북히 들려 있다. 약방에서 약을 샀는데 거스름돈을 모자라게 줬다며 그녀는 약국으로 따지러 가려 한다. 봉구는 그녀를 진정시켜 올려 보낸다. 투숙객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 내려온다. 사내만이 아직도 잠들어 있다. 이제 비는 그쳤으나 강물이 불어 아직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방으로 올라갔던 윤숙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 내려온다. 그 사내가 죽었다. 사람들이 위로 뛰어 올라간다. 봉수가 강 건너편의 사람들을 부르러 뛰어나간다. 살인자로 의심받던 사내가 죽음으로써 여관 안에 또 다른 살인자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긴장감이 흐른다. 갑자기 도길이 나서 마치 형사처럼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댄다. 도길은 봉구가 들어오자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에 그를 의심한다. 도길이 그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자 봉구는 불쾌해 하며 이를 거절한다. 그가 굳이 신분증 제시를 피하자 사람들이 봉구를 의심스럽게 쳐다본다. 결국 봉구는 신분증을 내보인다. 신분증으로 인해 영팔과 봉구가 부자 지간임이 밝혀진다.
사람들은 이들을 의심하자 봉구는 영팔에게 사실을 밝히 자며 화를 낸다. 그러나 영팔을 굳이 사실을 숨기려 한다. 봉구가 범인으로 몰리자 윤숙이 봉구의 편을 든다. 도길은 시체를 발견한 윤숙에게 왜 그 사내의 방에 들어간 이유를 추궁한다. 도길의 의심은 투숙객들 모두에게로 돌아간다. 사내는 상호가 자랑하던 그의 잭나이프로 심장을 찔려 죽었다. 칼주인 상호가 의심을 받고 가슴 깊숙이 칼을 찌를 힘을 가진 삼국이 의심을 받는다. 또 살인 사건의 전모가 경진의 시나리오 스토리와 유사하다는 사실에 경진도 의심을 받는다. 투숙객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혼란스러워 한다. 잠시 후 경찰의 헬기가 도착한다. 갑자기 도길이 동료들을 불러오겠다며 재빠르게 뛰어 나간다. 형사들이 들어오고 시체가 치워진다. 그 과정에서 투숙객들은 그 사내가 강도가 아닌 형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 한다. 봉구가 밖에서 뛰어들어와 범인이 잡혔다고 전한다. 범인은 바로 도길 이었다. 사람들은 놀란다. 도길은 봉구가 쳐 놓은 함정에 빠져 잡히게 되었다. 이때 별장지기 박씨가 들어온다. 그는 방여사에게 별장을 빌려주고 달마다 돈을 받아 왔다. 영팔을 보고 박씨는 기겁을 한다. 그는 살림이 궁해 어쩔 수 없었다며 용서를 구한다. 영팔이 집주인이었음을 알게 된 방 여사는 민망해 한다..
하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고아원을 운영하던 남편이 죽자 대신 그들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자금이 여자 혼자 고아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부족한 운영 자금을 모으기 위해 그녀는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녀는 영팔에게 용서나 애원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의 처분만을 기다린다. 영팔이 어쩔 줄 몰라 주저하고 있자 그녀는 은근히 영팔에게 관심을 내비친다. 그녀의 갑작스런 표현에 그는 당황해 한다. 밖에서 헬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더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영팔은 그냥 별장을 나와 버린다. 헬기가 떠나는 소리가 들리고 방여사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남아 있다. 이때 문이 열리고 영팔이 들어온다. 방여사는 그를 처음 만날 때와 같이 반갑게 그에게 맥주를 권한다.
<희극계의 대들보 이근삼 선생>
"내 작품이 제일 인기야. 전국 어딜 가나 내 작품 안 하는 데가 없어"라고 뻐기는(?) 본인의 말처럼 노 극작가 이근삼의 희곡은 작품이 쓰여진 지 30년이 넘은 것들도 여전히 우리 무대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1960년대 전후에 쓰여진<원고지><국물 있사옵니다><거룩한 직업><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등은 지금도 '이근삼 연극제'와 같은 개인 극단의 기획공연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 극단들이 기량을 겨루는 '전국연극제', 심지어 청소년들의 연극 축제인 '청소년 연극제' 등의 단골 레퍼토리들이다.
이근삼 선생의 존재는 국내 연극계에서는 거의 유일한 희극 작가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유치진ㆍ차범석 등 원로 극작가들이 대부분 어두운 비극에 주력했고, 뒤를 이은 윤조병ㆍ노경식ㆍ최인훈 등의 중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작품에는 기득권층을 향한 거침없는 풍자와 함께 소시민들의 애환이 짙게 배어 있어 한참을 웃은 뒤에는 언제나 가슴 저릿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의 이런 특징 탓에 연극학자들은 "빈정거림의 미학,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갈망" 이라는 문구로 그의 작품세계를 압축한다. 그가 창출해 내는 이중적 웃음구조는 지금까지도 연구 대상이 되어 왔고 이 때문에 생존작가임에도 그의 작품세계를 논한 석ㆍ박사 논문이 수십 편에 이른다.
초기 작품이 60년대적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암시적이지만 통렬하게 비판했다면, 최근 작품들은 늙고 소멸하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그에 대한 관조가 숨겨져 있다. 작품 안에 내재된 쓸쓸한 풍경은 이제 '원로작가의 반열'에 든 그의 내면풍경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막차 탄 동기동창><이성계의 부동산>처럼 덧없이 사위어 가는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중심적인 등장인물 역시 황혼녘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덧없음을 관조하는 그의 작품은 감상적이지 않다. 객관적이고 치밀하게 계산된 희극적 장치를 통해, 작가는 나약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인간의 양면성을 제시하고, 죽음과 소멸에 대한 공포를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이근삼 선생의 한국 희극사적 업적은 서사극적 양식을 처음으로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녹여낸 작가라는 점이다. 서사극은 50년대말과 60년대초 당시 리얼리즘 희곡이 대부분을 이루던 극계에 획기적이며 신선한 실험의 시도였고 동시대의 여러 현상을 문제시하는데 매우 적절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원고지>는 이런 관점에서 한국 희곡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고 여기에 나타난 서사극적 기법은 한국 희곡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단초였다. 다시 말해, 희곡에 대한 기존관념을 바꾸는 개척의 작품이자 선구적 작품이었다.
최근작<엄마 집에 도둑 들었네>와<오코치의 화려한 가출>을 통해 압축되는 이근삼 희곡의 성과에 대해 연극평론가 심정순은 "대중 코미디가 흔히 지니는 피상성을 극복하고 대중성에 바탕을 둔 실존적 희비극으로 작품의 의미를 승화시켜" "한국형 대중 고급 코미디 형식 창출"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또, 연출가이자 이 선생의 대학원 제자였던 정진수는 "노년의 삶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해학과 재치 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연민과 우수마저 깃들여 있어 미국이 낳은 천재적 희극 작가 닐 사이먼의 근년의 면모를 연상케 한다. 감히 비교의 차원을 높이자면 셰익스피어가 말년에<템페스트>등의 로맨스 계열의 작품들에 경도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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