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근삼 '향교의 손님' (부제: 소주 그리고 오징어)

clint 2016. 10. 15. 21:53

 

 

 

늦은 가을 오후에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데 비를 흠뻑 맞은 등산객이 폐허가 된 향교를 찾아들면서 극이 시작한다.향교를 터를 삼아 살고 있는 거지는 왜소해 보이나 검은 안경 탓으로 학자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불청객을 맞아 거지는 그를 상대로 자유인이라는 괴변을 편다.그러는 가운데 학자의 직업을 묻고는 본인과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얘기하면서 거지와 학자의 직업을 동격으로 만들어 학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그러나 학자는 거지의 달변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자유분방한 그의 삶이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거지가 내온 소주를 마시면서 술과 함께 취기가 오른 학자는 불안정한 직장과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명예퇴직,조기퇴직 등 삶에 대한 얘기를 하며 자신의 생각과 후회를 거침없이 말하고 있을 때 면서기가 들어와 동네의 정신적인 지주인 향교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고 새삼스럽게 호통을 치는데 이 장면에서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결국 거지는 갈 곳이 없어지고 술취한 학자는 거지와 자신의 삶을 바꿔 살자고 절규하면서 막이 내린다. 분명 입안에 웃음기를 담게 하고 엉뚱한 행동과 과장된 표현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주지만 마음이 시원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이 극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밀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안타까워하고 있는 사회 현실이기 때문이다.사람은 결고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동물임에는 틀림없는데 현대인은 오늘은 있고 내일은 없는 듯 개인주의만이 득세를 하고 있다.이에 대해 극단 대표 이태훈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인간성은 상실되고 불신풍조가 팽배해지고 이기주의,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우리 모두는 방관자가 될 것인가? 내 탓이 아니고 남의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할 것인가? 근본적인 원인이야 사회의 불안정으로 인해 기강이 해이해진 탓이리라.이제 우리는 변화의 길목에 다다랐다.다같이 마음을 열고 사회 환경개선을 위해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상실된 윤리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인간성 회복을 위해 다같이 공생의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폐허된 향교 건물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는 걸인(프리 맨)이 살고 있다.
어느 날 한 퇴직 학자(선생)가 앞산에 등산하다가, 소나기를 만나 길을 잃어서 프리맨(자유인)이 살고 있는 향교서 잠시 신세를 진다. 두 사람은 현세상사를 나누면서 현실 풍자와 자신들의 살아온 삶의 철학을 웃음과 비관으로 서로서로 신세타령을 역설한다. 이후 흥에 겨운 걸인과 학자는 도라지 타령과 태평가, 각설이타령, 술타령 등 민요를 타령조로, 관객과 같이 혼연일치가 되어 함께 부른다. 두 사람의 신세타령은 곧 자신들의 인생살이의 멋을 자유인이 되는 것이라며 현실비판주의로 엮어간다. 시종일관 웃음과 폭소로 관객들에게 처세술을 역설하기도 한다.
마침내 퇴직학자는 노숙자 생활을 하는 프리맨(자유인)과 살아가는 처지를 바꾸어서 살기를 원한다. 이 극의 결말에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퇴거하라는 통지서를 받는다. 이에 술에 취한 두 사람은 인생 역전을 외치면서 각설이타령으로 막이 내려진다. 가장 비전형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언어의 유희. 이는 거지와 학자가 빚어내는<향교의 손님>의 역설적 상황에서도 또한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다.
거지 형씨는 학자 닮았어요.
학자 학자를 닮았다니? 그럼 내가 뭐란 말이야?
거지 이런! 실수요. 형씨가 그건 옷을 입고 거지인 나하고 술을 마시니 난 형씨를 우리처럼 생각해서 .
( 중략 )
학자 흥!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거야. 하하! 내 말에 책임을 지지 않으니 유쾌하군. 그랬었는지도 몰라 이거야. 말은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그리고 상상적으로 하면 뒷탈이 없다 이거야.
거지 거 참 거지 같은 소리를 하네.
학자 여보, 세상에 거지는 당신만 하라는 법이 있어? 술 좀 줘.
<향교의 손님>이러한 대사에 이르면 거지와 학자의 차이점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옷차림이 뒤바뀜으로 해서 신분마저 역전된다. 그것은 이후에 등장하는 서기가 학자를 거지로 알고 향교를 비우라고 호통치는 장면에서 극적 진실로 다시 한번 확인된다. 이근삼에 의하면 신분의 차이는 단지 옷차림의 구별에 지나지 않는 일종의 구속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역전의 상황은 직업뿐만 아니라 심지어 세대간의 비전형성 속에서도 드러난다.
 
 
 
 
 
말이 사물을 부재케 하고, 스스로 사라짐으로써 사라진 것을 나타나게 하듯이, 희곡작가 故 이근삼 선생은 지난 달 자신의 언어 속으로 사라졌다. 살아있는 우리들은 돌아가신 선생이 남긴 자리에 있는 희곡언어 속에서 우리들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선생이 남긴 희곡들은 말없는 명상, 즉 거대한 속삭임과 같다. 이 거대한 속삭임 위에서 이미지는 열리고, 상상은 깊어진다. 그런 뜻에서 우리들은 선생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기억과 흔적들을 다시 꺼내 공부해야 한다. 우리들의 삶은 고인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삶보다 훨씬 무한하며, 죽은 이들의 정신 또한 무한하다.
故 이근삼 선생은 1960년대 벽두에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연극계에 등장했다. 선생은 평양 출생으로 동국대 영문과를 나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1960년 ‘원고지’를 ‘사상계’에 발표함으로써 “형식의 분방성과 풍자 비판의 대담성,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많은 이들은 극작가 이근삼의 작품이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로 첫째, 당시 진부할 정도로 정통 리얼리즘을 고수하던 기존 작가들의 경향에 반기를 들고 서사기법과 같은 희곡의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사용한 작품이라는 점과, 둘째로는 과거의 희극정신을 계승하면서 전통적 희극 양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희곡양식이었다는 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故 이근삼 선생의 거의 모든 작품이 말하는 것은 진리, 보편적인 진리의 중요성이다. 가족에서 공화국으로, 집단에서 시민으로, 개인적 존재로 새로워지는 보편적 진리를 작가는 에돌아 말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복종을 강요하는 봉건적 윤리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폴리스의 윤리학이 그의 작품들이 지닌 큰 주제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가족 윤리학을 여전히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선생의 요구는 아직도 유효하다.
근거에 대한 이유를 따지는 게 서양의 근대연극의 정신이라고 한다면 故 이근삼 선생의 희곡작품들은 객관성, 정확성, 명료성, 과학성이 우리 사회에 없다는 걸 말하고 있다. 오이코스에 가장이 있다면, 폴리스에는 모든 공적인 문제들을 토론하는 아고라 혹은 포럼이라는 광장이 있다. 그는 연극을 토론과 대화의 장으로 여겼던 작가였다.
 
 
 

 


대화와 토론은 논리적 사고와 언술의 기교를 바탕으로 가능하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 말들은 터무니없게 된다. 그래서 선생의 희곡은 풍자와 웃음을 낳는데, 풍자는 우리 현실을 가슴 저미게 깨닫게 하고, 웃음은 웃음이되 쓴웃음과 같다. 이처럼 이근삼의 희극은 모든 사회제도의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해방과 그것에 대한 비판 및 집단 저항정신이라 볼 수 있다.
선생의 후기 작품들이 지닌 미덕은 낙망과 소외의 그늘을 다루는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소주 그리고 오징어’, ‘낚시터 전쟁’ 등을 꼽을 수 있다. 인물들이 지닌 原質, 그렇게 바라보는 삶의 전통이 모두 부서졌거나 뒤집혀졌다는 건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질문이 된다. 이근삼의 후기 희곡들은 이렇게 삶을 질문하되 뒤집어서 한다. 이근삼의 희곡에서 웃음은 이때 촉발된다. 그리고 웃음은 쓴웃음이 된다. 세상은 ‘제 18공화국’ 이래 조금도 변함이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안치운 /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