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광섭 '까마귀와 부엉이'

clint 2016. 6. 13. 21:54

 

 

 

1960년대 서양으로부터 각종 문물이 쇄도하면서 부쩍 대가족 제도가 무너진 한 가정의 이질화되어 몰락된 경우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극이다. 대가족 제도까지만 해도 우리의 전통예절이라든가 효에 대한 것은 우리들 몸에 배어 있었다.,그런데 핵가족 제도로 바뀌면서 전통으로 내려오던 효 사상과 전통 예절은 사라지고 황금만능에 개인주의가 팽배해 지기 시작했다. 건일그룹 총수 왕건일 회장의 집안이 그 표본이 되었다. 급작스런 왕회장의 졸도는 가족과 그룹 전체의 큰 충격, 다행히 회장은 차도가 있어 퇴원하지만 절대 안정을 요하게 된다. 재산 상속의 속셈이 있는 가족들은 은퇴를 권장한다. 미국에서 큰아들이 돌아왔지만 결단을 못 내리고 고문 변호사에게만 자기의 구상을 밝힌다.

왕회장은 부인 김여사와의 대화에서 부자지간의 길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한다.(21)

김여사 :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 뭘 해요. 내 수중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왕 회장 : 당신 말대로 하면 내 재산의 절반은 당신 것이니까 당신 재산 당신 마음대로 나누어주고 싶겠지. 하지만 그건 안돼. 깨진 독에 물 퍼붓기는 끝도 시작도 없는 악순환일 뿐이야. 이제 말이지만 그 동안 나도 자식들에게는 다른 집 아버지 이상으로 했다고 자부해. 우선 대학공부 다 시켰어. 큰애는 미국유학까지 시켰어. 그리고 모든 자식들에게 중간치 아파트 한 채씩은 마련해 주었어. 그러면 살 길은 스스로 열어 나가야지 언제까지 부모에게 기대겠다는 거야. 그런데 당신은 뭘 또 나누어주자는 건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김 여사 :보기 딱하니 그렇죠. 잘 났든 못 났든 당신과 내가 낳은 새끼들이라고요.

우리 부부는 마치 까마귀의 부모처럼 먹이 물어다 어린 새끼들을 큰 새로 길러 놨어요.

왕 회장 : 그래 당신 말 잘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저희들이 늙은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여주어야 이게 바로 까마귀의 가족 사람이 아닌가. 왜 옛 부터 까마귀를 효자 새로 했게? 어미 아비가 늙으면 저희들이 먹이를 물어다 늙은 부모 봉양을 했대서 그런 말이 전해 내려왔어. 그런데 나이가 사십, 오십이 되도록 계속 먹이를 먹여 내라니 이런 억지가 어딨나....

결국 왕회장은 6.25 전우인 한인석과 강원도 농장에서 만년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농장마저도 한인석에게 넘기기로 한다.

왕 회장 : 생전에 알았던 전우에 대한 내 마지막 정표예요, 하하하.

김변호사 : 정표로 수천만 원짜리 농장을 공짜로 주신다구요?

왕 회장=그 친구 부엉이 아범을 닮아서 온 몸을 자식들에게 뜯어 먹히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살아요.

김변호사 : 부엉이 아범을 닮았다니요?

왕 회장 : 부엉이란 놈은 밤눈이 어두워서 제구실도 못하다가 마침내는 제가 낳아서 기른 새끼 부엉이들에게 온몸을 몽땅 뜯어 먹히고 말아요.... (23)

결국 왕 회장은 언론에 은퇴를 공개하고 강원도로 낙향을 결정한다. 이때 사위가 다니는 기업체에서 부도가 난다. 그리고 아들 동수마저 다단계 판매망 사기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왕 회장은

왕 회장 : (근처에서 작대기를 주워 들고 동수의 등에 내려친다) 야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아. 네놈이 인간이냐? 이 까마귀만도 못한 놈. 부엉이만도 못한 놈. 죽어라 이놈아! 에잇, 에잇} (32)

왕 회장은 피신해 온 아들 동수를 자수시키고 만다.

 

작가는 이 <까마귀와 부엉이>를 통하여 핵가족 제도가 되면서 오는 병폐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면서도 결국 다음 세대(손자)에게 호적에 붉은 줄 오르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 일을 해결해주고 마는 입장에 서고 있다.

김광섭 희곡의 특징은, 첫째,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희곡에 몰두하는 경향이 짙다. 둘째, 종교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작가에서 어딘지 모르게 불교, 유교 쪽에 편향되어 가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리얼리즘 추구에 계속 몰두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넷째, 그가 부쩍 다루려는 것은 불효’, ‘선과 악같은 것이다. 다섯째, 연극의 기능면에서 볼 때 극적 재미(오락성)와 연극의 교육성이 배어 있고 치료적 효과도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여섯째, 김광섭 희곡은 거의 주변 상황에서 소재를 가져 왔는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신화나 설화 또는 전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 등 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작가가 차츰 한국적인 것’, ‘우리 적인 것을 탐색하다 보니 한국인의 원형 구현과 한국인의 정신의 표상화에 새로운 좌표를 설정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작가의 글

어느덧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시대로 접어든 작금의 우리네 가정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효도 등 전통예절이 묵살되는 핵가족제도는 황금만능사조까지 가세하여 현대가정의 풍속도를 이질화시켜 놓았다. 효가 가족의 으뜸가는 덕목이었던 우리네 아름다웠던 가족 간의 사랑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극도의 개인주의로 숭조경로의 미풍이 사라진 가정은 인간성이 황폐화된 폐허나 다름없다. 인간성의 황폐화, 그것은 우리가 온몸으로 막아내야 할 최대의 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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