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부일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심사평 - 극작가 이근삼. 연출가 정진수
응모자들의 면면을 보면 부산일보의 명성 때문인지 전국에서 고르게 응모했다. 하지만 심사 과정에서 건져낼 작품이 안 나타나 주는 것이었다. 먼저 내용면을 보자면 삶을 바라보는 눈에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지 소재적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하여 극단적 현실의 단면을 그리거나 비정상적 인간관계 등을 다루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최소한 공감할 만한 여지는 남겨주어야 하는데 말장난, 비속어와 심지어 욕설만 난무하여 위악적 반항의 몸짓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형식면에서는 희곡이 무대화를 위한 '행동'의 예술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사건의 진전, 인물의 심리. 성격의 구축 등이 없이 서술적 언어로만 채워져 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을 구출해 준 한 작품이 막판에 손에 잡혔다. 두 심사위원이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뽑은 '벽과 창'은 응모작들의 전반적 수준을 뛰어넘는 수작이었다. 이 작품 또한 흠을 잡자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심지어 이것이 과연 희곡인가 싶을 정도의 부정적 견해를 내놓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주저 없이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작가의 언어 구사에서 배어나오는 문학적 향기라고 할 수 있다. 적당히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주인공의 자의식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문체는 이상의 단편 '날개'를 연상케 하며 주인공의 자폐적 의식 세계를 상징하는 벽과 창을 통한 이미지 형성과 주인집 개 '해피'를 비롯한 타인들과의 심리적 긴장 관계를 설득력 있게 구조화하고 있는 데서 일단 연극적 틀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극의 마무리 부분 등 아직 아마추어의 티를 벗지 못한 면이 있으나 정진하면 대기(大器)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당선소감 - 안희철
'연극적인 삶은 아름답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모른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집착한다. 언제나 그랬다. 나에게 연극은 오르기에는 높은 벽이지만 거부하기에는 너무 강렬한 존재이다. 이제 겨우 창을 발견했지만 창을 열거나 밖을 내다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리고 창이 아닌 제대로 된 문을 찾기까지는 또 얼마나 더 세상과 부대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작은 창이나마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이제 연극적인 삶이 내 가슴 깊이 파고 들어와 영원히 녹아들 때까지 세상과 부대끼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벽에 갇혀 지내던 저를 창 앞으로 이끌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광주대 문예창작과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울러 저의 가족과 친구들, 언제나 옆에서 힘이 되어 준 현정과 저를 아껴주신 모두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바쁘다는 이유로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조카 정민에게는 늦게나마 백일 선물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창이지만 그 창을 통해 더 많은 세상과 만나겠습니다. 세상을 향한 제대로 된 문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73년 대구출생, 대구과학대 방송연예과. 광주대 문예창작과 졸업, 현재 광주대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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