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8살 되던 해 엄마는 아끼는 개 대신이라며 개 장수와 함께 사라진다. 아버지가 월남전으로 파병 나간 사이였다. 10세에는 탁구를 가르쳐 주던 동네 형이 몸을 더듬었다. 20세가 되던 해에는 광주 민주화 항쟁이 터졌다. 감옥에 갔고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오락실에 가던 길이었을 뿐이다. 연극[들소의 달](작가 고선웅) 속 주인공 '양수'의 삶이다. 고통이 할퀴고 지난 자리에 상처투성이다. 결코 '양수' 개인의 잘못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에게 모질기만 하다.
간략한 줄거리로는 언뜻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엄숙해 오지만 의외로 극 분위기는 묘하게 밝다. 웃음까지 터져 나온다. 이미 전작 연극[마리화나]와 [강철왕]을 통해 특유의 연출력을 보인 고선웅 연출가의 신작답다.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대사와 독특한 억양, 쉼 없이 내뿜는 속 촌철살인의 언어는 여전하다. 유머와 풍자는 더욱 강해졌다. 감히 받아 적거나 따라 할 수 없는 빠르기의 대사이나 듣는 동안 가슴에 박힌다. 극은 ‘양수’의 삶을 일대기적으로 따라간다. 거추장스러울 것 하나 없는 무대 장치, 하얀 벽이 연도와 나이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 위에 디지털로 쏘아지는 글씨가 양수 인생의 흐름을 알린다. 그에게 가장 큰 고난은 광주 민주화 항쟁 때의 고문이다. 발로 차이고 전기가 몸을 관통한다. 가혹 행위 속에서 폭력에 피해자가 될 이유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저 ‘인베이더’ 오락을 하러 가는 길에 잡힌 것일 뿐.
주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낸 것은 극 중 막간극이다. 평화로이 풀을 뜯어 먹는 사슴을 해치는 사자와 사냥꾼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사슴을 죽인 사자와 사냥꾼에게는 비난을 쏟으면서도 사슴이 밟은 ‘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역사는 ‘풀’처럼 아예 약한 자의 짓밟힘에는 관심 없다. 사건의 주도권을 지닌 자에게 유리할 뿐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피해자 중 ‘양수’는 단지 한 명의 피해자 일 뿐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시민의 고통은 덮인다. 시간이 흐르면 약자는 자극과 폭력에 익숙해지고, 가해자에게도 익숙해 진다. 그래야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양수’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폭력의 피해로 그 자리에 멈춰선다. 상처 속에서 기억을 멈추고 성장하기를 거부한다. 고문관을 인베이더 게임 내 괴혹성에서 파견된 거인 2명이라 여긴다. 게임의 일부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말도 안되고 기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일 리 없다는 강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을 아닐까. 폭력으로 점철된 양수의 삶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어릴 적 곁에 있었던 ‘선녀’는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고 허공에 떠 있는 듯 현실감을 잃어간다.
작품의 제목인 '들소의 달'은 아프리카의 오카방고 델타에 사는 들소 떼를 동경하던 양수의 이상을 의미한다.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들소 떼를 동경했으나, 폭력으로 인해 떨어져 나와 버린 그가 바라는 세상이다.
고선웅의 연극은 이런 깊은 주제 속에서도 웃음을 끌어냈다. 남을 웃기려 노력해 본 이라면 알 것이다. 누군가를 웃긴다는 일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이끈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과장된 몸짓이 아니라 대사, 순수한 ‘언어’의 힘으로 극은 빛을 발한다.
작가노트
![](https://blog.kakaocdn.net/dn/cAO4LT/btrL9qk5qlz/C9iBjNzAEJQMAnTpyNMWgK/img.jpg)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희철 '벽과 창' (1) | 2016.04.24 |
---|---|
김수미 '레몬' (1) | 2016.04.24 |
고선웅 '락희맨 쇼' (1) | 2016.04.23 |
김재엽 '알리바이 연대기' (1) | 2016.04.23 |
고선웅 '황금박쥐' (1) | 201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