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선웅 '들소의 달'

clint 2016. 4. 23. 15:54

 

 

 

1968년, 8살 되던 해 엄마는 아끼는 개 대신이라며 개 장수와 함께 사라진다. 아버지가 월남전으로 파병 나간 사이였다. 10세에는 탁구를 가르쳐 주던 동네 형이 몸을 더듬었다. 20세가 되던 해에는 광주 민주화 항쟁이 터졌다. 감옥에 갔고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오락실에 가던 길이었을 뿐이다. 연극[들소의 달](작가 고선웅) 속 주인공 '양수'의 삶이다. 고통이 할퀴고 지난 자리에 상처투성이다. 결코 '양수' 개인의 잘못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에게 모질기만 하다.

 

 

 

 


간략한 줄거리로는 언뜻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엄숙해 오지만 의외로 극 분위기는 묘하게 밝다. 웃음까지 터져 나온다. 이미 전작 연극[마리화나]와 [강철왕]을 통해 특유의 연출력을 보인 고선웅 연출가의 신작답다.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대사와 독특한 억양, 쉼 없이 내뿜는 속 촌철살인의 언어는 여전하다. 유머와 풍자는 더욱 강해졌다. 감히 받아 적거나 따라 할 수 없는 빠르기의 대사이나 듣는 동안 가슴에 박힌다. 극은 ‘양수’의 삶을 일대기적으로 따라간다. 거추장스러울 것 하나 없는 무대 장치, 하얀 벽이 연도와 나이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 위에 디지털로 쏘아지는 글씨가 양수 인생의 흐름을 알린다. 그에게 가장 큰 고난은 광주 민주화 항쟁 때의 고문이다. 발로 차이고 전기가 몸을 관통한다. 가혹 행위 속에서 폭력에 피해자가 될 이유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저 ‘인베이더’ 오락을 하러 가는 길에 잡힌 것일 뿐.
주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낸 것은 극 중 막간극이다. 평화로이 풀을 뜯어 먹는 사슴을 해치는 사자와 사냥꾼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사슴을 죽인 사자와 사냥꾼에게는 비난을 쏟으면서도 사슴이 밟은 ‘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역사는 ‘풀’처럼 아예 약한 자의 짓밟힘에는 관심 없다. 사건의 주도권을 지닌 자에게 유리할 뿐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피해자 중 ‘양수’는 단지 한 명의 피해자 일 뿐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시민의 고통은 덮인다. 시간이 흐르면 약자는 자극과 폭력에 익숙해지고, 가해자에게도 익숙해 진다. 그래야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양수’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폭력의 피해로 그 자리에 멈춰선다. 상처 속에서 기억을 멈추고 성장하기를 거부한다. 고문관을 인베이더 게임 내 괴혹성에서 파견된 거인 2명이라 여긴다. 게임의 일부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말도 안되고 기 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일 리 없다는 강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을 아닐까. 폭력으로 점철된 양수의 삶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어릴 적 곁에 있었던 ‘선녀’는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고 허공에 떠 있는 듯 현실감을 잃어간다.

 

 

 

 

 

 

 

작품의 제목인 '들소의 달'은 아프리카의 오카방고 델타에 사는 들소 떼를 동경하던 양수의 이상을 의미한다.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들소 떼를 동경했으나, 폭력으로 인해 떨어져 나와 버린 그가 바라는 세상이다.
고선웅의 연극은 이런 깊은 주제 속에서도 웃음을 끌어냈다. 남을 웃기려 노력해 본 이라면 알 것이다. 누군가를 웃긴다는 일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이끈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과장된 몸짓이 아니라 대사, 순수한 ‘언어’의 힘으로 극은 빛을 발한다.

 

 

 

 

 

작가노트      

1. 모티브는 무엇인가?
80년 광주항쟁. 초등학교 육학년이었고 나는 경기도에 있었다. 기억은 군용 육공트럭과 무장한 군인 한둘이 띄엄띄엄 있었던 십칠인지 흑백 화면. 그것이 다다. 그 후 18년 후 우연히 기사를 검색한다. 행인을 이유없이 벽돌로 내리친 폭력전과범. S씨는 계엄군에게 당시 두달간 고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계속된다. 그는 현재를 살지만 과거에 존재한다. 이 연극은 그 사람 얘기다.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라도 그처럼 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2. 들소의 달은 무엇인가?
들소는 열등한 족속을 상징한다. 달은 그들이 그리워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이상향이다.
3. 주제는 무엇인가?
폭력은 널려있다. 그리고 인간은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게다가 미약하기까지 하다. 불길한 시간, 불길한 장소에서 인간의 영혼은 상처받는다. 항상은 아니지만 그 상처는 깊게 패이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조금만 더 타인을 위해 배려한다면 충분히 피해갈 수도 있는 재앙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언제나 무기력하고 가해자는 스스로의 만행을 망각한다. 그것이 폭력의 본질이다. 그것을 고발하고 싶었다.
4. 왕기가 칼을 드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폭력은 필연적으로 가해와 피해라고 하는 대립된 구조를 지닌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를 당한 자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폭력은 순환된다. 결국 이 연극에서도 피해자는 가해자가 될 소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그가 정당하고 당당한 것으로 느낀다는 것이며 그 첫 희생양이 아내라는데 있다. 폭력의 후유증은 대부분 뒤틀린 비극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5. 랩퍼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랩퍼들은 연극 일련의 흐름속에 있다기 보다는 왕기 의식의 흐름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인간은 불확실한 존재다. 랩퍼들은 불확실성과 우연성 등을 상징한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들은 불확실하다. 만일 그들이 운명과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들이 그렇듯 공허해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왕기는 갑자기 부닥쳐 온 폭력적 운명에 희생양이 된다. 매일 지나가는 버스. 그러나 버스는 어디에서 올지 모르고 인간들은 언제나 그 불안하고 불확실한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 그러나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작위적인 모티브보다는 단지 그들이 보여주는 공허나 혹은 낯설음 등이 적절하게 표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9장에서 다시 반복될 때는 1장보다 더 거칠고 사납게 표현되어야 한다.)
6. 아내를 왜 죽여야만 했을까?
아내는 상처받은 영혼에 상처받는 영혼이다. 그녀는 순전한 피해자다. 연극의 형식적인 면에서 살펴본다면 그녀가 죽는 이유는 이 연극의 시작이 폭력에 상처받은 영혼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연극이 계속 극적인 긴장을 견지하고 처음보다 더 심화되어가는 주제를 다룰려면 연극은 전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상처받은 영혼이 다시 또 다른 대상에게 상처를 주어야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연극의 내용적인 면에서 살펴본다면 왕기는 이제 피해망상을 끝내고 세상의 가해자들을 상대로한 전면전을 준비한다. 그 이유는 자신과 자신의 아내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심각한 스트레스 속에서 남편을 떠나려 한다. 그러나 왕기는 아내를 지켜야만 한다고 믿는다. 남은 방법은 그녀를 자신의 의식속에서 영원히 남아있도록 하는 것이다. 왕기는 아내를 죽이지만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녀가 다시 살아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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