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창작/김동현, 배삼식, 한현주
1971년 서울의 어느 동물원에서 홍학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보다도 짧은 시간에 눈 앞에서 사라진다. 홍학이 정말 날아갔을 리도 없고, 동물원 담장을 뛰어넘을 수도 없기에 홍학 실종 사건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홍학을 발견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는 가운데, 이 홍학처럼 자신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리고 조양규라는 사람이 죽었다고 기사에 실린다. 40년 동안 이 사람의 존재는 아무 곳에도 흔적이 없다. 7인의 배우들은 이 조양규의 과거를 쫓기 시작하는데…
한참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그때, 시끄러운 나라 사정과는 관계없이 어느 대표적 보수신문의 1면엔 미군의 6.25 실종자의 유해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실렸다. 국민들이 아우성치는 난리 상황에서도 그 보수언론은 왜 그런 기사를 1면에 실었을까? 50년도 더된 자국민의 유해를 찾기위해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도 감동 받으라고?(사실 놀랍긴했다...) 전쟁터에서 시신을 찾지 못한 사람은 실종자라고 한다. 살아있다는 증거도 없지만 죽었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6.25 이후로 우리나라가 참전한 가장 큰 전쟁은 베트남전쟁이었다. 몇년의 전쟁기간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타국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정작 실종자는 몇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정말 그 많은 사람들의 시신을 찾고, 확인했다는 것인가? 실종자로 처리하는 것보다 사망자로 처리하는게 정부입장에서는 더 이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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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종되어야했을 사람이 사망자가 된 어느 베트남 참전용사의 이야기이다.(난 이 이야기를 이런 관점에서 접근했다.) 부산의 어느 바닷가마을에서 죽은지 몇달이 지난 사람이 자신의 방에서 수화기를 손에 쥔 채로 발견이 되었다. 그 마을 사람 누구도 그동안 그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의 정확한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그가 보이지 않았을때 마을 사람들은 그냥 떠나버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떠돌이 인생을 살아왔다. 베트남 승선증을 고이 간직하고 수화기를 손에 든 채 죽는 조양규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마을사람들이 간간히 알고 있는 그의 과거 이야기로 조양규라는 사람을 역으로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가 왜 그렇게 이름을 감추고 살아왔는지, 땅에 발을 디딛고 살지 못했는지를 알게 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을때, 그는 다른 부대원들이 모두 전사한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다시 부대로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사망자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그의 운명은 바뀐다. 사실 그는 실종자가 되었어야했다. 하지만 그는 사망자가 되었고, 밀입국을 통해 돌아온 조국 그 어디에서도 그가 발딛고 살 곳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치는 과거를 피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실종자'가 되어간다. 어느날 갑자기 그는 사라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와 겹쳐진다. 한 동물원에서 날지 못하게 날개가 잘린 홍학 한 마리가 '도주'를 한다. '홍학'이 과연 '도주'라는 생각을 갖고 날아가버린 것일까? 많은 언론이 홍학이 자유를 찾아 도망간 것으로 묘사한다. 그 홍학이 힘 찬 날개짓을 한 그 순간, 조양규는 그 홍학을 보고 있었다. 홍학이야 그렇다치고, '조양규'는 그 실체로 한번도 극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7인의 다른 배우들의 대화 속에, 혹은 마네킹 같은 모습으로, 선그라스 같은 소품으로 그를 표현한다. 비록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그 형상은 그 어느 배역보다 뚜렷하다. 조양규가 착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끊임없이 떠돌았던 조양규와 어느날 갑자기 날아가버린 홍학... 이들은 대체 무얼 꿈꾸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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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착한 사람, 조양규>는 신문기사와 단편소설을 기본 텍스트로 사용하여 구성한 작품이다. 한창훈의<홍합>, 아베코보의<모래의 여자>에서 약간의 인용이 있었고, 1970년에서 2004년까지의 신문의 실종 기사들을 인용하였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주변인들을 ‘실종자’라는 모티브로 무대로 끌어내며, 형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을 형상화하여 연극의 ‘극장성’을 극대화하여 연극 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주인공 조양규는 왼손에 수화기를 든 채로 죽은 지 8개월 만에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그보다 놀라운 사실은 주민등록 상에는 그가 40년 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신분과 이름을 증명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의 존재와 부재의 공존은 한국 현대사에서 변방의 삶을 살았던 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연극 <착한 사람, 조양규>에서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주인공 조양규의 주위를 머물렀던 사람들을 연기하면서 계속 그의 부재를 확인할 뿐이다. 40년의 긴 시간 동안 의 어느 한 인물과 홍학의 실종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주인공이 부재하는 현재의 시간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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