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에 입원한 '김기창'의 사이코 드라마를 극중극으로 하는 이 작품은 현대사회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한 인간이 살인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입원된 후부터 극이 시작되고 극을 그를 통해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자는 정신병자 즉 범인으로 몰린 김 기창을 통하여 역으로 독자들에게 이 사회의 진짜 범인의 구체적 모습을 만들어 간다. 작자가 범인으로 지목한 것들을 살펴보자.
작자는 극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수사기관으로 대표되는 권력구조의 비민주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증거보다는 한 사람의 자백으로 물증보다는 심증으로 범인을 잡고 이것으로 불안할 경우 확실한 범인을 '창조'(?)해나가는 고문 도 서슴치 않는 우리사회의 폭압적인 권력은 우리의 소시민 김기창을 확실하게 범인으로 만들어 나간다.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배우의 대사에서도 드러나듯이 "나를 정말 고문하고 괴롭힌 것은 신문"으 로 대표되는 매스미디어의 횡포라고 진술하게 한다. (대중들에게 진실보다는 그날의 가쉽거리나 제공하고 사실의 정확한 보도보 다는 왜곡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신문을 사보게 만들 상업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 오늘날의 신문-매스미디어-인 것이다.) 신 문은 김기창을 범인으로 기정사실화하여 사회의 병폐에 한 몫 거든다.)그 다음으로 그를 범인으로 만든 것은 옆에서 도와주고 같이 살아가야할 우리의 정다운 이웃 '소시민' (계급적 이해가 아닌 의 식으로서의 소시민)들이다. 그의 알리바이를 가장 잘 알고 있던 혜숙은 그의 가정생활의 파괴가 두려워 증언을 회피하였고 주인 공 기창은 혜숙을 사랑하였고 증언을 요청해도 믿어주지 않를 것 같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이 사회의 하층민이며 작품속에서 그를 공범이라고 주장하는 전과자 김한돌은 단순히 자신을 억압하는 구조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억지로 그를 끌어들인다. 김한돌 에게 있어서 세계는 변혁의 대상이 아니라 운명이고 받아들여지지않는 거대한 절벽이기에 주어진 세계를 비웃고 우롱하기만 하는 것이다. 결국 그는 끝까지 주인공에게는 미안함을 느낄 수조차 없었으며 거짓증언으로 사형을 언도 받자 그때서야 재판관(세계) 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진실을 털어놓는다. 이것이 또한 김기창을 범인으로 몰아넣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이렇게 작자는 현대사회의 일개인인 기창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적도 도둑질한 적도 없는) 이 범인이 된 이유가 우리의 이웃 과 저항할 수 없는 세계였다고 말하고 있다.
"제가 사형을 집행해 버렸지요! 그 사람은 범인입니다. 이건 확실한 사실입니다. 난 내 양심에 따라 거리낌없이 사형을 집 행했습니다. 이 세상은 깨끗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난 내 양심을 걸고 선언합니다. 이자들은 범인입니다. 무죄선고한건 잘못이예요. 살인범은 죽여야 합니다. 범인은 모두 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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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글을 길게 인용한 것은 작가가 또 하나의 범인으로 김기창 자신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극의 마지막 대목에서 간 호원에 으한 기창의 죽음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항하지 않는 소시민 자신이 결국 주범이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을 확대 해석하면 결국 우리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이다. 살아있어야 할 우리들의 시민의식, 또는 좀 더 나은 세상을 건설 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 대한 환기를 하기 위해 작자는 보다 충격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할때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적도 없고 때리거나 돈을 훔친적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최 선의 길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우리가 범인으로 지적한 매스미디어, 억압적 권력구조, 해롭기만 하는 인간들은 다름아닌 우리자신들이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과 만일 지금의 현실이 이 작품의 현실과 똑같다면 이러한 현실 또한 우리의 의식 수준과 똑같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신화 1900이라는 작품을 자기 논에 물을 끌어들이는 식의 해석으로 만들 위험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우리자신이 만든 것들을 물신화하여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일상적 소시민에 안주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일 이다. 사회의 온갖 부정에 눈감고 모른체하고 있는 우리들이 김기창을 범인으로 만들었듯이 언젠가는 (아니 지금 이순간에도) 우 리 자신을 스스로 묶어 감옥에 가두거나, 미치게 만들것이다. 이론의 여지없이 범인은 우리 자신인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끝으로 사족을 붙이자면 희곡작품이 우리의 실생활상의 본질들을 캐고 질문하고 던지는 과정에서 해결점에 관한 고민도 같이 해 나가야 돼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사실 문학작품에 그러한 것을 요구하는게 죄스럽기까지한 세상이기 하지만서도 말이다. 하지만 작자가 이야기하듯 '오늘의 신화는 파괴된 신화'이고 '배가 정녕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면 2000년은 오지 않을 것이 다. 그리고 '2000년을 향한 같은 배'를 탄 것도 아니리라 생각된다. 준비하는 자만이 그 배에 탈 것이다.
<신화1900>의 사이코 드라마 중 신문기자 역을 맡은 환자의 울분 섞인 토로이다. 신문기사는 몇 퍼센트가 진실인가라는 작가의 질문에 도리어 '진실'이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이 물음은 작가를 향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을 잃어버린 대중매체를 향한 물음인 듯 하다. 또한 사형선고를 받게 되자 궁지에 몰린 김한돌이 김기창이 무죄임을 고백하는 아래의 장면은 어떠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그럴 듯하게 살을 붙이는 대중매체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김한돌 :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기자분들이 내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윤색해서 분위기를 돋구어 주더군요. 교도소서 신문도 받아봤어요. 내가<아>하면 검사는<어>하고 신문은<야>하더군요.
진상규명보다는 좀 더 돈벌이가 되는 것에 더욱 관심을 쏟아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윤색해서 분위기를 돋구'는 대중매체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소위 정상인들의 사회라고 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상이 아닌 사람이 꼬집음으로써 더욱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대성 희곡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당면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은 작가 개인의 여건과 시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용과 형태의 극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언제나 당시의 현실 문제인 것이다. 주인공 김기창 역시 대중매체에 의한 피해자이며 사건 종국에 그가 무죄임이 명확히 밝혀졌지만 정신병자를 통제하는 권력을 가진 또 다른 정신병자의 손에 처형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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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빠르게 변하는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가지의 신기록이 갱신되고 많은 것들이 발명되고 있다. 하루하루 새롭게 변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신화 1900>의 작가는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신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화들은 이미 인간을 위한 신화가 아닙니다. 신과 인간이 함께 숨쉬며 살았던 그 시절의 신화는 이미 막을 내렸습니다.... (중략)... 우리는 모두 2000년을 향한 같은 배에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정녕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연극을 마친다. 우리는 이미 막연히 미래라고만 생각해왔던 2000년을 맞았다. 그리도 이제 3000년을 향한 배로 갈아탔다. 그러나 세기가 바뀐 현재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는 예전보다 얼마나 개선되고 발전되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윤대성은 현대사회는 무력한 개인인 우리를 소외시키고 파괴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누가 구성하고 있는가. 이 사회 속에는 나와 우리와 윤대성이 함께 들어있다. 오늘의 신화는 파괴의 신화일 뿐이라는 작가의 생각은 너무 비관적이지 않은가 싶다. 우리는 그러한 파괴의 신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동성과 그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자리는 우리 스스로가 바꿔 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날카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잘못된 모습들을 꼬집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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