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은 각기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는 27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희곡에는 아들이 자신들을 밀고할까봐 공포에 떠는 부모, 남편을 믿지 못하는 부인, 고기 대신 자신의 몸뚱이를 걸어놓는 정육점 주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모습들을 영화의 몽타주처럼 편집하면서, 제3제국이 허위와 불신의 체제를 통해 독일인들을 공포와 참상 속으로 몰아넣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독일열병식 1. 민족공동체 2. 배반 3. 분필십자표시 4. 국민에 대한 봉사 5. 적법한 판결 6. 직업병 7. 물리학자 8. 유태여인 9. 밀정 10. 검은 신발 11. 근로봉사 12. 노동자의 시대 13. 궤짝 14. 국제 노동자동맹의 노래 15. 석방된 사내 16. 선거 17. 새옷 18. 동계 빈민구제사업 19. 빵기술자 두명 20. 농부가 돼지에게 먹이를 주다 21. 구 나치용사 22. 산상수훈 23. 신앙고백 24. 알메니아 지방에 대한 폭격사실이 병영에 알려지다 25. 고용창출 26. 공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27. 국민투표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엮인 옴니버스. 각 에피소드는 물리적·구조적 연속성이 없는 독립된 스토리다. 그 모두는 독일 나치당과 히틀러에 의해 초래된 인간적 파국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가 아니기에 각 에피소드 사이에는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지점이 필요한데, 전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배우가 - 무대가 정리정돈되는 사이 - 다음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함으로써 그 연결점 역할을 한다. 옴니버스 스토리가 지닌 특성으로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이어지는 연결부위에선 삐걱거리는 파열을 느낄 수 없었다. 기계적인 정확성을 보여주는 독일 민족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말을 외치고 악마같은 공산당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이용복 어린이가 실존하느냐를 놓고 진위여부 논란이 있지만, 그건 단지 반공 이데올로기를 놓고 벌이는 저급한 일차원적 다툼이다. 그 일화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반공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일지 모르나 우리가 그 안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다름아닌 하나의 진리만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물리적·사상적 폭력이다. '국가(민족)사회주의노동자당', 즉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전범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전국이지만 그들이 이 세계에 끼친 해악은 단지 전쟁 참화나 유대인 학살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이 부차적이거나 덜 중요하다는 건 결코 아니다.) 국가·사회가 개인을 감시하고 전체가 부분을 통제하는 빅브러더 사회가 야기할 재앙을 몸소 실현하여 보여준 것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핵심이다. 사람들이 서로 의심하며 심지어 부모·자식간에도 서로를 믿지 못할 만큼 사회 구성원 각자가 상대방을 감시하고 통제는 거대한 감옥 국가로 변모해버린 독일 제3제국의 진정한 공포와 참상은 바로 그 안에 있다.


이러한 시각은 외부인이 아닌 독일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직접적인 나치 지배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적 측면에 추목할 수밖에 없다. 반면 세계대전이라는 참화를 일으킨 추축국 제3제국 독일 국민으로서 스스로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출하고 나치로 하여금 정부를 구성케 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전체주의의 노예로 전락시킨 그들이야 말로 국가 전체가 감옥이 된 나라의 공포와 참상을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인 작가 브레히트가 남긴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은 독일인들이 겪고 감당해내야만 했던 나치 독재를 그들의 시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작품의 제목은 참 짓기가 어렵다. 어떤 건 작품이랑 별 연관이 없어서 관람 전에 짐작할 수가 없고, 또 어떤 건 너무 형이상학적이라서 관람 후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은 정말이지 참 솔직하고 숨김없는 제목이다. 막이 오르기 전부터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예상했고, 막이 내린 후에 앞서 했던 예상이 웬만큼 들어맞았음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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