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런던과 미 브로드웨이를 강타했던 영국 극작가 마틴 맥도너의 최대 히트작 필로우맨. <필로우맨>은 2003년 런던에서 초연되어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Olivier Award 2004 / Best New Play)를 수상했다. 그 다음 해, 이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로 진출하여 토니 어워드(Tony Award 2005)의 무대디자인, 조명 2개 부문을 수상하였고 ‘Best Play’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다시 쓴 그림 형제의 동화 - London Herald
소름 끼치는 환상. 롤러 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경험! - New York Post
<필로우맨>은 끔찍하게 잔혹하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유머로 가득 차 있다. 맥도너는 현실의 취조실과 카투리안의 소설 속의 세계를 교차시키며 치밀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마틴 맥도너는 스스로 데이비드 린치,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그리고 해롤드 핀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흥미롭게도 연출가 박근형 또한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현대 희곡작가로 해롤드 핀터를 꼽았다.

줄거리
극은 경찰서 취조실에서 소설가 카투리안이 심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투리안이 쓴 작품과 흡사한 수법으로 엽기적이면서 잔혹한 두 건의 어린이 살인사건과 한 건의 실종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옆 방에는 지능이 떨어지는 카투리안의 형 마이클이 잡혀와 있다. 카투리안은 범행과 그의 소설과의 연관성을 강력히 부인하고, 이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카투리안과 마이클의 충격적인 어린 시절이 드러난다. 그리고 카투리안이 쓴 '필로우맨' 이야기를 통해 살인사건의 진실도 그 베일이 서서히 벗겨지는데..
막이 열리면, 영문을 모른 채 취조실에 끌려온 카투리안이 두 형사에게 취조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끌려온 자가 이유를 모른단 점에서, 그리고 형사들의 유독 권위적인 모습에서 잠깐 경찰국가 혹은 감시국가의 양심수가 아닌가 의심이 되지만, 그가 끌려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가 쓴 잔혹한 동화들의 수법 그대로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카투리안은 바로 그 사건의 범인 혹은 공모자로 끌려온 것이지요. 물론 이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있다는 점, 그리고 극 종결 부분에서 즉결처분을 당한다는 점, 또한 형사 중 하나의 직접적인 언급(대사)을 통해, 그가 전제국가 하의 양심수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건 카투리안이 관련되(었다고 여겨지)는 사건은 연쇄 어린이 살인사건입니다. 그것도 아주 잔혹한 방식의. 그의 옆방에는 정신지체인 형 마이클이 끌려와 있고요.
형사들의 고발, 카투리안의 직접적인 내레이션 등을 통해 이 극에 삽입된 동화들은 제각각 대단히 음울하고 잔혹하면서도 슬픕니다. (하긴 '잔혹 동화'라는 것들은 원래 슬픈 이야기들이죠.) 그렇기에 이 연극은 거대한 이야기 속에 작은 이야기들이 여럿 액자처럼 끼워져 있는 구성이고, 달리 말하면 여러 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그것을 관장하는 창작자와 조금 특별한 입장의 독자간 갈등이라는 메타적 이야기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카투리안과 마이클, 카투리안과 형사들 사이의 갈등관계는 단순히 이 작은 이야기들을 연결하기 위한 장치도 아니고, 또한 이 작은 이야기들이 단지 저 갈등관계들의 소재로만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작은 이야기들끼리, 그리고 작은 이야기와 큰 이야기의 사이는 매우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상호의 상징 및 비유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다시, 인류가 그토록 '허구'라는 장르를 발전시키고 사랑하면서 한편으론 그토록 의존해온 이유, 혹은 '언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만든 세상에 대한 애착의 이유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마이클과 카투리안의 실제 이야기에 기반한 잔혹 동화의 예를 보세요. 실제와 허구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이 이야기는 허구라는 틀(안전판과도 같은)을 통해 진실을 말하며, 다시 창작자의 욕망을 드러냅니다. 모두들 그 이야기가 철저히 허구라 믿을 것이기에 작가는 안심하고 자신과 자기 형이 당한 끔찍한 일을,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떠들어댈 수 있습니다.
워낙 그 '작은이야기들'이 매혹적인 까닭에 마틴 맥도너(혹은 마틴 맥도너휴)의 희곡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보다 깊은 곳에서의 인간의 상처와 꿈을 보듬으면서도, 인류가 이제껏 존속시켜온 상징체계를 가져오면서도 이를 변주하고 비꼬며 새로운 상징체계로 발전시켜 나갑니다. 이것이 무대에서 구체화되는 방식은... 일단 배우들의 연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영화에서 최민식의 연기를 끔찍이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느라 배우 최민식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건만, 이 연극을 보면서 배우 최민식의 비극에 대해 조금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카투리안 역의 최민식은 무대 위에서 정말로 좋은 배우더군요. 짐작 못한 건 아니지만,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지요. 그런 배우가 연기력 탄탄한 배우가 절실했던 영화판에 흘러들어와 스타도 되고 뭣도 됐지만, 솔직히 스크린은 배우 최민식에게 그닥 어울리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밀양>을 보며 확인한 것이 송강호는 전면에 주연으로 나설 때보다는 후면에서 다른 주연배우를 돋보이게 할 때 진가가 발휘된다는 거였는데, 송강호나 최민식이나 사실 전면에 주연으로 나서기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이 워낙 배우기근의 한국영화판에서 앞으로 떠밀려 나올 수밖에 없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민식의 성량은 생각보다 작아서 살짝 실망이었습니다만, 이건 최민식의 성량이 원래 그런 건지 거의 공연 막판이라 목이 가서 그런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른 배우들 역시 살짝 목이 가있는 게 느껴져서, 후자의 이유가 클 거라고 짐작할 따름입니다. 최민식 뿐만 아니라 투폴스키 반장 역을 맡은 최정우나 에리얼 형사 역의 이대연, 마이클 역의 윤제문의 연기가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서로 빚어내는 케미스트리가 너무나 훌륭합니다. 바로 눈앞에서 배우들이 대사와 동작을 주고받는데 이것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리듬감있게 척척척척 오고 가면서 전체적인 극 분위기가 고양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눈앞에서 지금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연극 특유의 생동감이 이 쾌감을 더욱 배가시키더군요.

무대 활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투리안의 잔혹동화들 중 일부는 형사의 '증거물 낭독'을 통해서, 일부는 마이클과 한 방에 넣어진 카투리안이 마이클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통해서 전달되지만, 카투리안이 아예 내레이터가 되어 극 중 극 형식으로 직접 내레이션 되기도 합니다. 마이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일부와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대 윗쪽에 재현극 형태로 펼쳐지고요. 무대 전면엔 마이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카투리안 혹은 내레이터가 된 카투리안이, 무대 후면 윗쪽에 카투리안의 이야기의 시각적 재현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내레이션이 직접 울러펴지는 건 자칫 잘못했더라면 저 혼자 떠버릴 수도 있을 듯한데,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게다가 극중 극의 재현극 형식은 별다른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공포스럽고 끔찍하던지. 중간에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덕분에 중간에 인터미션 포함 2시간 40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아주 몰입해서 극을 봤고, 끝나고나서 최민식에게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좀 오바라 생각될 무렵, 저도 모르게 난데없이 눈물이 툭, 떨어지더군요.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제목 '필로우맨'은, 카투리안이 쓴 잔혹 동화 중 한 편의 주인공입니다. 불행하고 슬픈 아이들이 자살하고 싶어할 때, 그것이 사고사처럼 보일 수 있도록 자살을 도와주는 인물, 온몸이 크고작은 베개로 이루어진 인물이 바로 필로우맨입니다. 마이클이 가장 좋아한 이야기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투폴스키 반장이 자신의 사적인 비극을 카투리안에게 들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이야기죠.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이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개개의 독자들에게 어떤 식의 의미로 해석되고 재구성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이야기랄까. 극중 투폴스키의 이야기 하나도 삽입이 되는데 - 이건 투폴스키의 입을 통해 그냥 이야기됩니다. - 이 이야기는 확실히 투폴스키의 세계관을 보여주지요. 각 인물들의 사연들이나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세계관'이 아주 명확하게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마틴 맥도너휴의 작품은<필로우맨>을 통해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친구가 문유님의 극찬을 보고 가볼테냐, 하길래 심적 충격에서 도피도 할 겸 그러마 하고서 아무 정보도 없이 갔다가 "이렇게 쎈 이야기인 줄 몰랐어." 했는데, 잔혹동화라 무슨 엽기 코드가 있고 그래서가 아니라, 워낙 잘 짜여진 극이라 임팩트가 아주 강합니다. 게다가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이었고요. 아쉽게도 이 공연은 20일로 막을 내렸고, 앞으로<필로우맨>이 언제 또다시 누구에 의해 공연될지는 모르겠군요. 아마 다른 버전의<필로우맨>이나 마틴 맥도너휴의 다른 작품이 공연된다면 관심을 갖고 보러 가게 되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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