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해럴드 채핀 '버터비긴스의 철학자'

clint 2026. 7. 16. 04:33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한 아파트(공동주택) 주방을 배경으로 한다.
나이 든 할아버지 데이비드 퍼니는 어린 손자 알렉산더에게 머리맡에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다. 오늘도 손자가 침대에 눕자 특별히 
아껴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들떠 있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딸인 리지(Lizzie)는 
이를 완강히 가로막는다. 리지는 아이가 제시간에 규칙적으로 자야 하며, 잠들기 직전에 
할아버지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가 흥분해서 잠을 설친다는 확고한 양육 
원칙을 가지고 있다. 리지는 단호하게 아버지를 저지하고 손자를 침대로 보낸다.
사위인 존 벨이 퇴장하려는 리지를 보며 장인어른을 편들지만, 권위적인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한 걸음 물러선다. 리지가 방을 비운 사이, 서운함과 분노로 가득 찬 
데이비드는 사위 존에게 속상함을 토로한다. 데이비드는 눈물과 분노를 삼키며 "여자들은 

도무지 이성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존 역시 "어쩔 수 없이 여자들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게 남자들의 인생"이라며 체념 섞인 위로를 건넨다. 이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사색에 잠긴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결국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딸 리지가 저토록 고집을 부리는 것도 
단순히 아이의 수면 때문이 아니라, 이 집안의 규칙을 세우고 통제권을 쥐려는 욕망임을 
간파한 것이다. 데이비드는 여기서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적 반격'을 구상하다.
데이비드는 딸의 권위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대신, 철저히 수동적이고 무해해 보이는 
방식으로 딸을 이기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바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침묵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 딸이 묻는 말에 일절 대답하지 않고, 마치 세상과 
단절된 현자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 리지는 처음에는 아버지가 단순히 삐쳤다고 생각해 
무시하려 하지만, 데이비드의 완강한 침묵이 계속되자 점점 당황하기 시작한다. 집안의 
분위기는 묘하게 얼어붙고, 리지는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 모질게 대했나 하는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끼며 점차 심리적으로 밀리기 시작한다. 데이비드의 소리 없는 고집은 결국 
빛을 발한다. 딸 리지는 아버지를 달래고 집안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결국 자신의 완고한 
원칙을 꺾고 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 손자 알렉산더에게 가서 이야기를 마저 해주셔도 
좋다고 허락한다. 충돌 없이 오직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본 '침묵의 철학'으로 딸을 이겨낸 
할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승리감과 함께 손자의 방으로 향한다. 인간 본성의 

지배 욕구를 영리하게 이용한 노인의 '철학적 승리'로 유쾌하게 막을 내린다.

 

 


이 작품은 가벼운 유머와 위트를 통해 인생, 진실, 존재 등 인간의 깊이 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탐구하는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1915년 집필 (1921년 단행본 공식 출판)한 
단막 희극이다. 세대 간의 갈등과 소소한 일상적 대화를 통해 인간 사회의 본질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겉으로는 사소한 말다툼이나 일상적인 고민(아이 양육방식, 가족 간의 규칙 등)을 

다투는 듯 보이지만, 대화가 전개될수록 삶의 나약함과 순간을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 같은 

무거운 철학적 주제들을 위트 있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작가 해럴드 채핀

1886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으나 2세 때부터 유럽(영국)에서 자라며 배우 및 무대 감독, 극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촉망받는 천재 극작가 중 한 명으로 꼽혔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하여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안타깝게도 1915년 프랑스 루스(Loos) 전투에서 부상당한 전우를 구하려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그의 사후인 1915년 12월 런던 추모 공연에서 이 작품이 처음 무대에 올랐고, 이후 뉴욕의 유명 극단인 프로빈스타운 플레이하우스 등에서도 상연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