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뮤지컬 추민주 '빨래'

clint 2026. 7. 14. 17:59

 

 

서울 살이에 고단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좁은 골목길.

어릴 적 한번쯤은 왁자지껄 골목길에 서울살이 5년, 27살 서나영이 이사 온다.

나영은 하늘과 닿은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 우연히 옆집 옥탑방에 사는 몽골청년

솔롱고를 만난다. 어느 날 밤 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나영은 자신을 도우려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몰매를 맞고 있는 솔롱고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둘은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다. 능글맞고 엿같은 제일 서점의 주인 빵에게

항의하다 해고 위기까지 처한 나영. 나영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울음을 터트리자

희정엄마와 할머니는 기운을 내라며 슬픔을 이기는 방법을 전수해 준다.

그 방법은 바로 ‘빨래’ 그들은 함께 빨래를 하면서 그 슬픔을 서로 나눈다.

봄이 오고 솔롱고의 옥탑방으로 이사를 가는 나영은 솔롱고와 헌옷들을 빨면서

힘들고 고단한 일상도 빨래처럼 꾹 짜고 털털 털어버리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집 앞에 널린 빨래만 봐도 그 집 세간살이쯤은 훤히 알 수 있는거여!"

'불호(不好'보다 슬픈 것이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때론 살면서 무관심해지고 싶은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관심을 갖는 것 보다 드라마 속

판타지나 경제적 희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 '빨래' 속 소시민들은 관객에게 심각함과 고민 대신 미소와 희망을

한아름 선사한다. '빨래'는 대한민국 사회가 '불편한 진실'로 외면하고 있는 외국노동자

불법체류, 장애인 소외, 청년실업 문제를 현실감 있게 다루면서도 이들의 삶을

아름답고 희망적으로 풀어냈다. 몽골출신 불법 이주 노동자 솔롱고와 강원도 강릉에서

취직의 꿈을 안고 상경한 나영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40년째 장애인 딸을

수발하는 월셋방 주인할매, 동대문에서 일하며 홀로 억척스레 살아가는 희정엄마 등

이웃들의 삶이 그려진다. 극의 하이라이트는 나영·주인할매·희정엄마의 빨래 장면이다.

무대 가득 흩날리는 비누방울과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라는 가사의 경쾌한 노래가 그들의 삶이 비관적이고 우울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큰길이 아닌 동네의 골목골목에는 그곳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골목 한 귀퉁이에 널린 귀저기 빨래, 옥상에서 펄럭이는 교복 빨래, 대문 사이로 보이는 
안뜰의 속옷 빨래, 골목골목 뮤지컬 <빨래>는 우리의 일상을 담아낸다.
<빨래>는 하루의 고단함이 먼지처럼 묻어나고 마음의 상처가 얼룩처럼 번지는 빨래를 
깨끗하게 빨아 바람에 말리며 상쾌한 내일을 노래한다. <빨래>는 고단한 일상에 대한 
은유이자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에 관한 노래이다.
<빨래>는 나영이라는 인물이 이웃과 함께하는 서울살이를 노래한다. 나영의 주변에는 
세대와 성, 계급과 인종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나영은 객석과 무대, 현실과 허구 
사이에 존재하는 현미경이자 망원경으로서 다양한 이들의 삶을 관찰한다.

 

 

 

<빨래>는 지난한 일상 속에서도 자기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과 만난다.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세상의 힘이 되는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부르는 노래에는 고단함이 묻어나지만 정다움이 있고 웃음이 담겨 있다.
약한자에게 더욱 냉담한 것이 사회현실이다. 사람을 소외시키는 관계는 장소를 불문하고 
재생산되며, 편견과 권력과 폭력이 한데 뒤섞여 이기적인 마음을 부추긴다. 인간에게 
서열을 매기고, 관계에 등급을 매기는 게 요즘 현실이다.
<빨래>는 차가운 시멘트벽과 닫혀있는 문 뒤로 숨어버린 우리의 이웃에게 말을 건다. 
지상에서 살 권리는 있는데 돈이 없어 옥탑과 반지하로 숨어버린 우리 친구에게 인사를 
건넨다. 살아갈 힘이 남아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결국에는 사람에게서 
위로 받을 거라는 희망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극작 겸 연출의 글 - 추민주
75년 대구 출생. 영남대학 국어국문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졸업

 

<빨래>, 소통의 작은 시작
서울말이 낯설었던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금강산 숯불갈비 집에서 만난 중국언니. 
음식을 나르다가 손님과 부딪혀서 컵 하나 깨뜨리자마자 움찔 놀란 나는 그 식당주인한테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식당주인이 화장실을 간 사이, 설거지를 하고 있던 중국언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민주, 비굴하지 말라! 니가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더 당당하라'
작년 여름, 왼쪽 엄지발가락을 다쳤다. 병원에 가려고 대문 밖을 나서긴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마침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와서 누구한테 도와
달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꼼짝 못하고 골목길에 있으니까 골목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모이기 시작했다. 옆집 할머니, 뒷집 아저씨, 앞집 할머니와 손자들이 모여서 
내 발가락을 걱정해주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수소문 끝에 앞집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갖고 나타나서는 나를 오토바이 뒤에다 싣고 제일 용하다는 외과에 데려다 주셨다. 
그 뒤로 나는 골목길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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