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 속에 갇혀있다 현실로 등장한 용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현란한 리듬 속에 파묻힌
도시인들 사이에서 용배는 소외된다.
혼란과 갈등 속에 불러낸 시간 1978년 2월.
전통 타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그 시절
그 무대에서 동지들과 함께 한 용배의 연주인생이 펼쳐진다.
인기절정의 나날들. 그러나, 갈 길이 달랐던 동지들과 주변 인물들.
용배는 연주에 대한 희열에 앞서 회의를 느끼며 스스로를 사선의 경계로 몰아간다.
예술혼을 광기로 불태우며 세상의 무대에서 퇴장한 용배는
잃어버린 시간들을 열 두발 상모에 실어......

전통 타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사물 팀의 상쇠 김용배가
사후 20년이 되는 2006년 5월 무대에 헌신한다.
죽음 속에 갇혀 있다 현실로 등장한 용배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전통 예술에 관심도 없는 도시의 현란함 속에서 소외된다.
1978년 그날, 네 사람이 의기투합애 사물의 새로운 탄생을 이루었던 무대를
재현하고 싶어 하지만, 생전의 삶에서와 만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갈등과
자신의 허무한 열정을 확인할 뿐이다

“전설의 상쇠 김용배 역 욕심 커요”2006년은 상쇠 김용배가 생을 마감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등과 함께 결성한
원조 ‘사물놀이’패에서 상쇠로 전설적인 명연을 들려주던 그는
서른네 살이란 젊은 나이에 돌연한 자살로 생을 등졌다.

서울예술단이 2006년 5월20일과 21일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창작극 ‘김용배입니다’를 공연했다. 국민성 작, 연출자 한태숙이 주인공 김용배 역으로
지목한 이는 서울예술단의 풍물주자 고석진(32). 본격적인 연극은 처음이라는 고석진은
“첫 연극에서 주인공을, 그것도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김용배 선생님 역을 맡게
되어 솔직히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첫 연습에서는 연출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연극적인 움직임을
구사해야 하는 부분에서 무용 동작처럼 해 핀잔을 듣기도 했죠.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이 역에 대한 욕심이 커집니다.”
고석진이 보는 김용배는 상쇠로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삶의 질곡을 뛰어넘지 못했던
사람이다. “김 선생님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글도 몰랐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남사당패에 합류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셨던 거죠. 사물놀이패를 결성해서
최초의 상쇠가 되셨지만 전통적 음악을 재창조하려는 본인의 의지에 비해 대중은
더 빠르고 격렬한 사물놀이를 원했습니다. 그 괴리가 우울증을 불러왔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번 공연을 통해 고인이 오랜 한을 풀 수
있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김용배(1953.11.17~1986.4.23). 그는 사물놀이 신화창조의 원년멤버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남사당패를 따라 다니며 민족예능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는 동안 풍물놀이의 달인 스승 최성구(1901~1968)를 만났다. 최성구와는 친부자 이상으로 관계가 돈독했다. 그는 최성구로부터 쇠가락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재주를 전수받았다. 또 다른 스승 양도일(1907~1978)로부터 설장구를 전수받아 스승의 경지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다. 김용배는 '사물놀이'란 장르개발과 함께 국내외 연주활동을 통해, 홀대받던 풍물을 어엿한 음악의 한 갈래로 자리 잡게 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김용배는 자타가 공인하는 풍물굿의 팔방미인 뛰쟁이였고 신들린 쇳소리로 최고의 풍물패에게나 붙여지는 버슴새로 인정받았다. 어느 날, 쇳소리에 살고 쇳소리를 사랑했던 김용배가 쇳소리의 굴레를 쓰고 홀연히 이 세상을 등져버렸다. 살아남은 자들의 충격은 아랑곳없이 33년 짧은 생을 스스로 정리하고 만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 김용배, 그는 왜 그렇게 서둘러 떠나려 했던 것일까. 김용배는 늘 '예술은 인간의 승화된 표현 형태이고, 예술에는 진실한 세계가 담겨야 한다. 또한 예술가는 광기, 잔인함. 추함을 통해서도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 그리 살았다. 그로 인해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또한 그는 '아름답기만 한 그래서 청중에게 쉽게 공감되는 예술은 자칫 예술의 승화된 표현을 해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은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게 하였고, 타협할 수 없음으로 인해 포기하듯 無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어떠했던 그는 그가 원하는 세계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했다. 수많은 동료. 후배 그리고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팬들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육체라는 껍데기를 버린 용기 덕분에 비로소 그의 정신, 예술혼이 수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버림으로써 진정으로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이제 살아있는 우리들은 김용배가 살아서 그렇게 원했던 소리의 본향, 신비와 환상의 이상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깨끗하게 닦아, 환히 밝혀주어야 한다. 그곳에서 김용배는 살아서 못다 푼 소리의 한을 씻어낼 것이다. 한을 승화시킨 그의 신들린 쇳소리는 살아있는 자들의 신명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리하여 숙명적인 예술가 김용배는 영원히 살아있는 자들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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