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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두드리는 신호'

감방의 벽을 두드리는 소리로 의사전달과 신부의 성사(聖事)를 듣고 연락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남자는 과거 집으로 찾아온 어떤 폴란드인에게 빵 한 조각과 담배 몇 개비를 주었다가 이웃사람의 신고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1년간 옥살이를 한다. 재판에서 죄를 인정하고 이의신청을 포기한다는 서류를 제출하고 그나마 짧게 형을 받은 것이다. 그곳에서 그가 겪었던 일 중에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만기 출소 후, 집에서 잘 때에도 들리고, 자신도 두드려서 연락해주는 것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던 부인이 불안해하며 왜 그러느냐고 묻고, 남자는 얘기를 한다. 율리우스라는 반국가사범의 얘기다. 그는 이 감옥에서 신부님을 만나 영세를 받는다. 그것도 여러 번 신부방까지 도달되는데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결되어서 옥중 영세를 ..

외국희곡 2023.10.03

최진아 '그녀를 축복하다'

〈그녀를 축복하다〉(2006)는 짧고 명쾌하고 즐겁다. 비록 〈지고지순〉에서처럼 성이 적나라하게 전면에 노출되지는 않지만 여성의 욕망에 대해 이처럼 솔직하고 생명력 넘치게 쓴 희곡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2006년의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의 공연이 타 공연에 비해 희곡의 매력을 잘 살려준 까닭도 있을 것이다. 줄거리는 삼십 후반의 주부인 선여가 춤 선생과 바람이 나지만 결국 남편 곁에 머문다는 식으로 다소 보수성을 띤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젊고 싱싱한 애인을 향 한 선여의 욕망을 역시 일인칭의 화법으로, 그러나 전작보다 더 낭만적으로, 혹은 존재론적으로 그러나 더 상큼하고 발랄하게 그려낸다. 그 중 백미는 선여가 남편과 애인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자리 배치하는 장면과, 남편과 애인, 그..

한국희곡 2023.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