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선 향기가 난다. 물푸레나무 같은, 은사시나무 같은, 전나무 숲 같은
은은한 향으로 만났을 때보다 더 깊은 여운을 주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르게 쓰레기 매립지의 냄새, 화장실 변기를 뚫고 나오는 냄새,
질퍽이는 진흙 구덩이 속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각각의 사람마다 풍기는 향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각자 살아온 환경과 경험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가슴에서 나오는 향내가 달라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윤조병의 『향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향은 어떤 것일까를 말해준다. 세상이 필요악이라 생각했던 돈, 직업, 명예와 다르게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의 향을 찾는 A를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보여준다.
한때 우리나라는 산이 많기로 유명했다. 압구정동이나 혜화역 근처도 숲과 나무로 뒤덮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과거를 잃어버린 지금의 우리에겐, 초록 잎이 없다. 라는 주제로 사나이A의 역할: 20대 후반 마름 (죽은 아내의 향기가 담긴 단지를 주변에 이기심 속에서도 소신을 잃지 않은 채 찾아나가는 역)과 사나이B의 역할: 20대 후반 덩치있음(사납고 비천하게 살아온 냄새를 물씬 풍기며 사나이A가 묻었던 단지를 귀한 보물이라 굳게 믿고 10년 동안 폐물처리장에서 그를 기다림)을 찾는다. 환경 공해 문제와 거기에 엵힌 두 사나이의 삶을 파해친 작품으로 1973년 극단 에저또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향기>는 인간의 순수성을 간직한 자연 세계와 대비되는
물질과 자본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대비시키는 2인극이다.
그것은 정반대의 인물인 사나이A와 사나이 B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대비, 공원과 공장 폐물처리 장이라는
공간적 대비,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 인물들의 대조적인 대사를
활용하여 두 세계간의 대립을 선명하게 나타냈다.
사나이 A와 B는 십 년 만에 만나게 된 날 죽음을 맞이한다.
B는 최후의 순간에 A를 구하는 행위로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보이지만,
A와 B는 모두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파국에 치닫게 된다.
즉, 순수한 인간성을 가진 자연 세계와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세계의 대립은
'술래잡기 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파멸에 치닫는다는 결론으로
막이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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