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준호 '일병 이윤근'

clint 2015. 11. 13. 09:23

2013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작

모순과 폭력이 화약고처럼 집약된 군대를 배경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과 잔인함을 그려낸 이야기이다. 모순된 사회에서 각자의 이해타산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우리 사회를 군대에서 벌어진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바라본다.

 

 

심사 평 : 박근형 극작가 연출가, 김명화 극작가 연극평론가
다채로운 시도는 있었으나, 눈에 띄는 수작은 드물었다. 그 중 우리가 주목한 작품은 <일병 이윤근><미친 존재감>두 편이다. 당선작인 최준호의<일병 이윤근>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폭력성이 화약고처럼 집약된 군대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일상을 나열하거나 크게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조직의 모순을 깔끔하게 추출하는 작가의 관찰력이나 군더더기 없는 극작술이 돋보였다. 결말의 영악함과 현실 수긍의 논리가 곤혹스럽긴 했지만, 우리는 이것이 전망 없는 구조 속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솔직한 자화상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오승수의<미친 존재감>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자살한 청소년의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와 그에 대한 죄의식으로 할머니를 찾아오는 소년의 친구가 하룻밤 동안 대화를 나누는 언어 중심의 작품이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진실과 화해를 찾아가는 구조와 서정미가 좋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절제력이 부족했고 대사의 잉여나 방만한 설정은 공연을 염두에 두었을 때 무리수로 읽혔다. 작가가 문자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한다면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무얼 하겠는가, 연극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사유를 부탁드린다.
올해 또 하나의 특징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성장소설의 붐이 희곡에서도 예견되는데, 그런 점에서 청소년 문제를 다룬<바람직한 청소년>은 캐릭터의 진정성이나 문제의식이 좋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희곡이라기보다는 시나리오에 가까웠다. 그 외, 깔끔한 글 솜씨였지만 캐릭터의 설득력이 부족한<닳고 닮아서>도 함께 거론되었다.

 

 

 

 

 

당선소감 : 최준호
△1989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극작과 2년
당선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쓰는 이 글이 전화를 받았을 때의 황홀감을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 아니 억만 분의 1이라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선 소감조차도 바르르 떨리고 있는 마당에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사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희곡, 아니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집 근처의 강동고등학교를 자퇴. 그 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라 불안감을 분출하는 통로로 역사‧철학 등 인문 서적을 읽으며 머릿속에 오만가지 잡생각에 동네를 홀로 돌아다니며 의미 없이 걸었던 시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이런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대학에 갔고, 그곳에서조차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홍대 사거리에서 처음 본 연극이란 장르는 내 안의 무언가를 홀려 무조건 희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직도 그게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연극과 영화를 보고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공연을 제작하며 밤을 새우고 자취방에 돌아와서는 연극‧영화 관련 서적을 읽고 쓰는 걸로 다시 날이 밝고,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재미란 것을 느낀 순간 지난 이십여 년 간 있었던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시간이 오히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소재가 되었고, 연극이란 것에 티끌만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썼던 희곡들이 지금의 당선전화를 들려준 것 같습니다. 희곡의 텍스트를 보고 감동하게 해준 이강백 교수님, 희곡 쓰는 법을 알려준 윤조병 교수님,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것인지를 알려준 오태석 교수님, 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저의 꿈같은 첫 당선이었던 원광대문학상의 심사위원 신귀백님과 이상복 교수님, 늘 함께하며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경 쓰지 않고 술 먹으러 가자며 전화하는 내 진짜 친구들… 그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내 열등감, 패배감, 부끄럽고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라는 아름다운 것들에게 감사합니다. 당선전화는 내가 연극에 평생 바칠 수 있는 반석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 반석으로 연극판에 평생 구를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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