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홀로 오롯이 늙음에 대한 회한을 견뎌야하는 노인들과 이러한 사람들이 느끼는 깊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다. 코믹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 노인들의 외로움, 추억과 기억, 그리고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심사평 : 김윤철 평론가, 이병훈 연출가
170편 가까운 응모작을 대하면서 희곡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것에 놀랐다. 그 중 절대다수가 희곡의 문법조차 모른 채 쓰였다는 점에 더 놀랐다. 다행히 당선작 수준의 몇몇 작품을 추려낼 수 있었다. 김원태의 '폭염'은 다문화사회의 환경 안에서 두 출소자의 갱생 의지와 그 좌절을 다루는데 구성이 매우 탄탄했다. 강명구의 '문방사우'는 도박장을 무대로 살아가는 고학력 낙오자들을 그리는데 성격 창조가 뛰어났다. 이선의 '목격자'는 돈 때문에 친구를 뺑소니차 운전자로 허위 고발하는 과정을 쫓는데 역시 구성에서 강점을 보였다. 다만 '폭염'의 경우는 상황의 신빙성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언어가 자의식을 드러내었고, '문방사우'는 인물의 성격 설정과 사건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으며, '목격자'의 경우는 거듭되는 사건의 반전이 상투적이었다. 위의 작품들에 비해 이미경의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은 제목이 시사하듯이 노인들만 버려진 채 사는 시골의 우울하고 슬픈 풍경을 수사극 형식으로 짜임새 있게 들춰낸다. 젊은 여인을 성폭행한 노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시골 노인들의 외로움, 치매 같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와, 성폭행을 수사하는 형사의 태도에서 보이는 여성폄하 적 사회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교직되면서 극의 차원을 확장한다. 구성, 성격 창조, 언어 등 희곡의 핵심 부문에서 단연 수월하여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소감 : 이미경
이십여 년 전 어머니가 가셨다. 그리고 올해, 내가 딱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고루 넷을 두셨고 그들을 기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그러다 몹쓸 병에 걸려 악착같은 생활력이 무색하게 쉬이 가버렸다. 억척어멈처럼 항상 꿋꿋하던 그녀는 위암 말기에도 매일 침대에 앉아 곧 마실을 나갈 사람처럼 머리를 빗었다.
임종 전날도 그녀는 변함없었고 그 덕분에 넷이나 되는 우리 형제 중 아무도 그녀의 임종을 가늠치 못해 그 자릴 지키지도 못했다. 물론 아빠도. 그녀는 그렇게 쓸쓸히 갔다. 그녀의 죽음은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낯설다. 납득이 될 조짐도 전혀 없고. 그저 생각만 하면 구체적인 뭔가가 떠오르기도 전에 눈물부터 나고 본다. 그리고 올해는 더욱 그랬다.
이십여 년 전에 내 엄마로 살던 그녀와 동년배가 되고 나니 그녀의 삶이 더욱 새록새록 하고 더욱 슬프고 애잔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같은 나이에 그녀는 삶을 부여잡고 싶은 이유들과 홀로 어렵사리 이별을 했고 지금 난 신춘이라는 꿈같은 신기루에 취해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해준 것도 없이 무심히 보내버리고 만 그녀에게 이십여 년 전의 내 나이였던 나의 엄마에게 이 상을 국화 대신 바친다.
▲1971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졸업
▲한양대 연극영화과 박사과정 재학 중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노년의 몸과 욕망 그리고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는 이제 우리 모두의 사회문화적인 지형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의 지형까지도 바꾸고 있다.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은 최선이라는 노인 개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있는 가장 버거운 사회적 이슈 중에 하나를 밀도 있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리가 쉽게 수면 밖으로 꺼내 놓지 못하였던 노년의 성과 성욕의 문제는 <죽어도 좋아>와 같은 영화에서 하이퍼 리얼하게 그려져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지난 해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교>에서는 노년의 몸 안에서 더 이상 나이 들지 않는 로맨스와 성욕이 주인공 이적요 시인의 환타지를 통하여 더욱 현실감 있게 표현되었다. <우울군 슬픈 늙으면>은 이들 작품과는 다르게 범죄 미스터리 추리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관객들은 마치 이 작품의 형사와 같은 위치에서 최선한 노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윤노을의 고발 내용과 무혐의를 주장하는 최선한 노인의 논리를 쫓아가면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그러나 형사가 봉착한 것과 같이 미스터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한다. 윤노을과 최선한 노인이 욕망하는 것은 결국 동일한 것이다. 윤노을의 애인이라고도 말해지고 최선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고도 말해지는 청년 최바다. 최바다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일까?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은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지 않다. 관객 여러분들이 그들의 풀릴 것 같지 않는 공방에 빠져 들어가 두 사람이 처한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 - 드라마트루그 이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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