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심사평 : 배봉기
올해는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크게 늘어 100여 편에 가까웠다. 기대를 갖고 심사에 임했는데, 수준은 늘어난 편수에 비례한 것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응모작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보여 주었다.
하나는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정보화와 기계화가 심화된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존재의 위치와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족 이야기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장면들을 이어놓은 것처럼 상투적이고 안이하게 전개되고, 현대 사회 속의 삶에 대해 탐구하는 이야기들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차원으로 흐르는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사실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이야기든 알레고리와 상징을 활용하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든, 무대를 긴장시킬 수 있는 강렬한 극적 진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적으로 대상이 된 작품은 다음의 3편이다.
'아빠가 사라졌다'는 가족 해체를 알레고리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실종된 아빠가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과정이 흥미롭지만, 엄마와 아들은 무관심하고 딸만이 아빠를 찾는 일에 집중하고 이 딸도 어느 순간 아빠를 잊어버리는 전개가 개연성이 떨어진다.
또한 금방 파악되는 알레고리의 단순성도 지적할 수 있다.
'달이 지는 동안'은 깔끔한 지문과 압축된 대사가 인상적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그렇지만 남매 사이의 근친 상간과 임신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에 비해 그 소재를 풀어 가는 방식은 마치 고아원 같은 곳에서 만난 남남인 남녀 이야기처럼 일반적인 차원에 머물고 마는 문제점이 있다.
근본적인 인간 윤리에 질문을 하려 한다면 그 시도는, 그것이 가능한 질문인가부터 시작해서 지난한 과정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Catch my life (잡아라 내 인생)'는 두 인질범과 한 여성이 벌이는 상황이 상당히 긴장감 있게 극적으로 형상화되고 인물들의 성격도 적절하게 구사되는 언어에 실려 잘 살아나고 있다. 인질범과 인질이 등장하는 설정이 새롭다고 보기 어렵고 통상적인 휴머니즘으로 흐르는 위험을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무리 없는 극적 형식과 나름대로 삶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작가 정신에서 발전 가능성을 보고 당선작으로 밀어 올린다.
당선소감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전화 받고 정처 없이 길거리를 헤맸던 게 기억납니다.
"한연지 씨 맞으십니까?" 로 시작한 단 22초의 통화에 얼마나 덜덜 떨며 불안해했었는지. 당선 확정소식을 받기까지 27시간은 저에게 지옥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작품을 투고하게 된 것도 교수님의 권유 덕분이었던 지라 예심만 통과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전화를 받으니 이게 된 걸까, 아님 예심 통과란 걸까? 하는 생각에 일분일초가 숨 막히더군요. 사실 아직도 잘 실감나지 않습니다.
덜컥 들이닥친 오늘의 꿈에서 헤어 나오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찬물을 끼얹고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나 저의 곁에서 묵묵히 가능성을 믿어주신 한상모 아버지, 제가 어떤 사람이든 자랑스러워하시는 황금숙 어머니. 그리고 누구보다 기뻐해준 한동연. 제 존재이유입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 작품을 돌아봐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리고, 문학에 진지함을 갖도록 만들어 주신 모든 명지전문대학 교수님들께 감사합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다면 친구들은 얼마나 기겁할까요. 벌써부터 너무 그립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길 함께 걸어 나갈 스터디 친구들, 정은언니 고맙고 추운 밤엔 유난히 북극성만 빛나는데 아직은 사랑할 것이 많다는 데에 안심이 됩니다. 지금까지보다 가야할 길은 훨씬 더 멀고 험하겠지만 저에게 주어진 축복을 발판으로 기나긴 길을 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1992년 경기도 광명 출생
△명지전문대학 졸업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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