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넌 절대 공무원 하지 마라!"
일본이 패망하던 1940년대의 끝자락.
같은 공무원이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서로 다른 이유로
처형당하는 두 공무원은 아들 갑돌과 딸 갑순에게 마지막으로
웃픈 유언을 남긴다.
해방이 된 후 갑돌과 갑순은 부모의 유언을 열심히 따르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세상은 갑돌과 갑순을 공무원의 운명으로
인도한다. 두 사람은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공무원으로
새로운 인생을 새롭게 살려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전쟁으로 인하여 두 공무원은 피난을 떠나는
지도자들을 전담으로 케어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피난을 떠난 지도자들은
피난의 여정마다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갑돌과 갑순은 그 사건을 어떻게든 수습하려 동분서주하는데!
과연 갑돌과 갑순은 피난길의 마지막까지
지도자들의 사건사고를 무사히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
연극 <전시의 공무원>은 일제강점기 시절 같은 공무원이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서로 다른 이유로 처형당하는 두 공무원의 아들 갑돌과 딸 갑순이 광복 이후 새로운 세상에서 공무원이 되어 6.25 전쟁 과정을 겪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작품이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후반(쇼와 19년, 서기 1944년)에서 시작한다. 일본 군가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강제징용 명단을 불태웠다는 죄명의 이 공무원은 머리에 두건을 쓴 인물이 처형을 기다린다. 변사에 의한 무성영화 방식으로 시작되는 공연은 이후 광복을 맞이하는 우리의 격동하는 정치사를 표현하며 그 안에서 나라 공무원을 꿈꾸는 두 명의 젊은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공무원이 되길 성공하는 갑돌, 갑순 두 사람. 아버지 세대의 유언을 받들어 공무원이 된 이들은 각자 출발점이 다르지만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의욕이 가득찬 이들이다. <전시의 공무원>은 공무원이라고 하면 생각되는 고정된 개념의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사무원 이야기와 우리가 한번은 만났으면 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역사의 한 장면을 지켜보라는 듯, 무대를 중심에 두고 관객석을 원형으로 배치해 관람객이 이를 둘러싸고 바라보게 한다. 또한, 고위 공무원의 "까라면 까"라는 지시와, 하위 공무원의 "국가에서 하라고 했잖아!"라는 영혼 없는 대응은, 국가와 국민을 얼마나 무력하고 힘들게 만들었는지를 역사적 사실에 비유해 생생히 보여준다. 하지만, <전시의 공무원> 전쟁 시기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하는 이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며 공무원으로 지켜야 할 품위와 행동들이 있다는 것도 전한다.
추천의 글 - 이주영(문화 칼럼니스트)
해방 전후부터 동시대까지, 혼돈과 비애의 평행이론
문자로 시작해 비애와 애도를 거쳐 크리처물로 마무리된다. 취권처럼 유연하고 세련되게 애둘렀으나 결국 정곡을 제대로 찔러대는 희곡이다. 남의 일이면 마냥 시원하겠지만 우리의 역사이고 현재에도 반복 되는 중이니 한없이 웃프고 아프다. 해방 전후 각자의 이해관계와 여러 갈래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는 혼돈기 '세계의 내전'이라고도 불리우는 한국전쟁 한복판에서 끝나는 이 작품은 2025년 현재의 시국과 묘하게 연동된다. 14개의 장면들을 관통하다 보면 절로 실소가 터져 나오지만 동시에 같은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분노와 의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일제 강제 징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던 공무원과 자기가 속해있는 국가가 시키는 일을 충실히 이행하려던 공무원이 차례로 처형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누구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임을 강조하기 위해 변사가 모든 목소리를 대신한다. 어찌되었건 공무원으로 살다 죽은 부친들의 뒤를 잇기 위해 갑순과 갑돌은 자본주의· 수정주의· 공산주의. 근본주의 등 어떤 주장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 그러나 실전은 권력과 야망, 기회주의자들의 판이다.
14개의 막 행간에 왜곡한 풍자와 중요한 사건 앞뒤로 BGM처럼 깔리는 '해방의 노래'나 '한강수타령'에 담긴 비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필요하다. 친일파가 다수인 정부 각료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치부하는 극우파들의 득세.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합작품인 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기 임시정부에서 벌어진 날치기 법안 등 어느 것 하나 민생과는 무관했던 그 시절 인생을 돌보는 아들은 갑순과 갑돌 뿐이다. 초기정부의 무능과 폭력성을 세상에 알리려는 하급 공무원 갑순과 정부가 시키는대로 하면서도 갑순의 의기를 응원하는 갑돌은 결국 좀비같은 권력자들의 다툼 속 화상이 되고 만다.
2024년 말 여행자극장에서 한달 여 상연된 <전시의 공무원>(변영진 연출)은 이 희곡을 몰입형 체험극처럼 펼쳐놓았다. 원형 객석에서 관객들은 출연진들과 무릎을 맞대고 땀과 호흡과 박자를 공유하며 혼돈의 시대를 오감으로 흡습했다. 신체 연극과 군무, 합창을 통해서이다. 사국의 희생양이 된 하급 공무원들과 서민들을 향한 갑순과 갑돌의 울부짓음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밟지 마세요 죽어서도 밟히고 있네, 밟지 마세요'
작가의 글 - 오세혁
공무원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지도자가 중립을 안 지킬 때의 중립은 과연 중립인가?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숙 'Love is ... 우연, 설레임 그리고 무덤덤' (2) | 2025.04.19 |
---|---|
설유진 '초인종' (2) | 2025.04.18 |
장희일 '친애하는 여러분' (1) | 2025.04.18 |
윤백남 '야화' (2) | 2025.04.17 |
이진경 '사심없는사람들' (4) | 2025.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