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 파티>는 여러모로 섬뜩한 작품이다.
이 희곡은 체코의 어느 중산층을 중심으로, 그 중산층의 아들이 출세를 위하여,
연줄을 만들기 위해, 관리를 찾아가는 것이 그 중점이 된다.
관리를 찾기 위하여 가든파티에 참석하게 되고,
아들은 그곳에서 끝없는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
정확하게는 관리로서 필요한 것들을 주입 당하게 되고,
완벽하게 다른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작품의 힘이 폭발하는 지점이자 가장 섬뜩하다고 할 만한 부분은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가족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조차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부부는 이제 끝없이 돌아오지 않을 아들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버린다.
인격 개조 자체로 꽤나 강도 높은 비판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무의미하고 동일한 대화의 반복이나 공무원식 대화를 꽤나 많이 이용하여
부조리를 표현한다. 이게 주로 그런 이상한 공산사회나 관료사회에서의
묘사와 꽤나 잘 어울리고, 재미있게 구성된다.
이 작품은 그의 희곡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요 테마인
권력의 문제, 관료주의의 문제, 언어에 대한 관심 등이 잘 나타나
‘체코 부조리극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든 파티>는 프라하의 나 자브라들리(Na zábradlí)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1964년 10월에 독일 베를린의 쉴러극장에서 공연됨으로써
바츨라프 하벨의 이름을 서방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 번역 출간됨으로써
다른 나라에서도 공연될 길을 열었다.
바출라프 하벨 Vkdav Havel (1936~2011)
체코슬로바키아의 전 대통령이다. 그렇지만 그는 직업정치가는 아니며, 혁명가나 자유사상가도 아니다. 그가 지향하는 바 인간권리의 회복에 있어 책임의식이 철저했던 한 문필가일 뿐이다. 책임의식이야말로 인간을 정작 인간이게끔 한다는 존재론적 인식은 그의 에세이에는 물론 극작품의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다. 하벨은 부르주아출신이라 하여 정규고등교육 과정을 허가받지 못했으며 택시운전사, 화학실험실 조수를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닌 후 1945년 겨우 졸업장을 땄다. 프라하 공대에서 내키지 않는 교통학을 수학하다가 예술대학에서 예술사, 연극영화학을 전공하고자 전과를 원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했다. 프라하극장에서 무대 세트 운반원, 도구계, 조명사, 비서 등으로 일했고, 감독,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거기서「가든파티 Zahradni Slavnost」(1963)「통첩」(1965) 「정신집중 결핍증(1968) 등 자작극이 초연됨으로써 점점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에 독립문필가클럽의 의장으로 활동, 전 동구권에서 그의 작품들에 공연 및 출판금지령이 내려짐에 따라 프라하를 떠나 시골의 양조장에서 막일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977년 헬싱키협정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에 인권과 시민권 자유를 요구한 77헌장의 주창자로서 서명운동에 앞장섰고 체포되어 선고를 받았으나 집행유예로 가택연금. 계속 금지된 작가들의 작품을 유포했고, 새로운 무대극을 집필, 서구권에서 발간 공연됨에 또다시 체포, 국외출국을 강요받음. 이를 거절하자 1979년 10월 징역 4년 반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국제기구와 숱한 문필가들의 호소와 항의로 1983년 2월 병든 몸으로 출감, 입원치료를 받았다. 1989년 1월 프라하의 벤첼 광장에서 개최된 Jan Palach의 분신자살 2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려다 체포 반국가행위로 다시 형선고를 받자 서구권은 물론 폴란드, 소련, 동독, 헝가리 등에서도 항의, 복무 중 동년 5월에 출감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화와 더불어 그는 '90말 국민들에 의해 추대되어 불시에 통치권자로 부상했다. 마치 자신의 극중 인물처럼… 2011년 타계. 하벨은 그러나 결코 정치적 영웅이 아니다. '무력한 자의 힘'을 스스로 보여준, 그리고 '언어의 힘'올 신봉한 극작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처녀작<가든파티>를 통해 우리의 독자들에게 소개함은 뜻 깊은 일일이다.
70년대의 작품 「청중 Audience」(1975) 「항의 Protest」(1978) 가운데 전자는 국내에서 공연된 바 있다. 「산장호텔 Horsku Hotelj(1981, 비엔나), 「실수 Chyba」(1983, 스톡홀름), 「유혹 Pokouseni」(1986, 비엔나), 「치유 Asanace」(1989, 취리히) 등이 80년대에 초연되었다. 방송극「수호천사 Ancfel Strafny」(1969), 텔리비극 「안테나 위의 박쥐」(1975)가 독일에서 방영된 바 있다. 0BIE 무대상 (1968, 미국),오스트리아 국가문학상(1969), 파리연극 상(1981), 에라스무스 상(1986), 독일서 적평화상 (1989), 유네스코 평화상(1990)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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