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평범한 회사원이 지금의 위치가 자신의 위치가 아니라는 점쟁이의 점궤을 본 후,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어 아내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하고 집을 나선다.
아내와의 이별에는 흥미를 못느낀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점쟁이의 점궤가 작용한 것이다.
그는 술집과 사창가, 핍쇼장 등을 돌아다니며 일탈을 꾀하나 상황은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길거리의 야바위 꾼에 속아 돈을 잃게된 그는 사기라며 카드를 따지며 확인하려다
그들 일당에 폭행당하고 신용카드가 든 지갑까지 빼앗긴다.
결국 호텔도 못가고 전당포에서 반지를 팔아 돈과 호신용 칼을 사게되며
다시 매음굴에 갔다가 흑인 호객꾼에게 다시 강도를 당할 위기에서 그를 죽이게 된다.
술집에서 바텐더인 글레나를 만나 대화를 하다가 그녀를 유혹해 그녀의 집에 까지 가는데
거기에서 칼을 보이게 되며 대수롭지 않게 흑인을 죽였다고 하자
그런 에드먼드를 멋지다고 하는 그녀이다. 그러나 그녀와 애기중 말다툼이 벌어져
집을 나가라는 그녀를 또다시 그 칼을 사용해 죽이게 된다.
그리고 교회 입구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그를 알아본 한 여인의 신고로
그는 성추행범으로 몰리고 게다가 소지한 칼로 인해 구속된다.
얼마 후 심문을 받는 중 그의 과거 살인이 밝혀지고 구속되어 감방으로 가는데
거기에서 그는 같은방 흑인 죄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생활에 마음 편히 적응되어 가며 끝난다.
한 순간의 충동으로 사회적, 정신적으로 고립되어버린 중년남자의 정신적인 방황,
그리고 현실에 부닺친 채 망가지는 모습을 빠른 템포로 파해친 작품이다.
2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주인공 에드먼드의 몰락 과정을 보여주는데
주인공을 제외한 모두가 조역, 단역으로 20명정도가 나온다.
이 작품에도 데이빗 마멧의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흑인 비하에 대한
백인의 우월주위, 여성을 짓 누르는 남자, 그리고 평범한 인간의 파멸되는
과정등이 작가 특유의 대사, 속어 등과 어울려 재미있게 꾸며지면서도
허탈한 여운을 남긴다. 2005년 동명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에드먼드>는 30대의 비지니스맨이 자아의 가치를 찾고자 자신의 아내를 떠나 도시의 지옥 (뉴욕시의 이면)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지만 그 남자는 폭행과 사기, 강도를 당하게되자 폭력으로 맞서며 결국은 한 웨이트레스를 살해하여 감옥에 갇힌다는 내용이다. 비평가 제랄드 빌즈는 이 작품을 "우리가 어떻게하여 우리의 절망적인 환경의 한부분이 되어가는가를 보여준 분명한 실레이다"라고 평했다.
<에드먼드>는 매우 탁월한 잔혹연극이다. 여기엔 무정하고 냉혹한 추함이 들어있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나서는 자신은 떠날 것이라고 자기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안전한 자신의 집을 떠난 그는 도시의 전경을 통해 위험한 여행에 임한다. 그는 성욕을 채울 수단을 찾지만 그가 만나는 것은 폭력과 사기꾼이다. 폭행과 강도를 당한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산다. 그다음 뚜쟁이가 뒤에서 달려들어 목에 칼을 들이대자 그는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그를 죽인다. 광기의 정도가 점점 커지면서 그는 적대적인 세계의 일원이 된다. 특히 자기를 아파트로 데려간 한 웨이트레스를 단도로 찔러 죽이는 짐승같은 장면에서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해 증오로 가득찬 채 말한다. "이 세상은 한 조각의 똥이며, 거기엔 이러한 법도 없다. 또한 역사라는 것도 없다."라고. 결국 에드먼드는 감옥에 수감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래 침대에 있는 에드먼드가 위에 있는 감방동료에게 신과 우주의 본질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아마도 우린 벌을 받기위해 여기에 있는지도 몰라. 넌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이같은 원시적이고 애처로운 형이상학적 문답이 끝나면 그는 일어나서 이 작품의 마지막 제스처로써 자신을 수간했던 흑인에게 '잘자'라는 애정있는 키스를 하며 그의 손을 꼭 쥔다.
에드먼드는 자신의 어두운 충동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내면 정신 세계의 큰 진전을 이루는 것 같다. 즉 그는 진정 자신이 누구인가를 인식하게 돼고 그로 인해서 마침내 그는 자신이 증오한 모든 사람, 여자, 흑인, 동성연애자들, "역시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그가 처음에 자신을 강간했던 죄수와 양손을 꼭 쥐는 마지막 장면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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