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틴 맥도나 '필로우맨'

clint 2025. 1. 5. 15:50

 

 

가상의 전체주의국가. 경찰 취조실.
카투리안은 영문도 모른 채 취조실에 붙잡혀 왔다.
그의 형, 마이클도 옆방 취조실에 잡혀와 있다. 예리한  반장 투폴스키와 
앞뒤 안 가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형사 아리엘. 
그들은 작가인 카투리안의 이야기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그의 소설과 똑같은 형태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이 
카투리안과 마이클 형제임을 확신한다.
취조가 오갈수록 카투리안이 쓴 작품들의 면면이 드러나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형제의 어린 시절과 
끔찍한 살인사건들의 전말이 드러난다.
투폴스키와 아리얼은 이 형제를 사형시키고 싶어하고
마이클은 이런 와중에도 동생의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듣고 싶어한다.
그리고 카투리안은 자신은 죽더라도 자신의 작품들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향해 치닫게 될 것인가?

 



필로우맨은 사실 맥도너의 작품 중 가장 온건한 작품이라고 한다. 
무대 위에 피가 낭자하던 다른 작품에 비한다면 이 필로우맨이 그렇다는  
얘기인데, 한국의 연극 수준에는 필로우맨도 엽기적이고, 자극적이면서도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맥도너 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투폴스키 형사의 말처럼 뭔가 우리를 위로해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살짝 따뜻한 느낌까지 갖게 해준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현실과 환상을 화려하게 넘나드는 맥도너의 엄청난 극작술이다. 그리고 
그 유려한 극작술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끊임 없이 무너뜨린다. 
주인공 카투리안은 말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뭔가를 꾸며내기엔 모자란 꼴통들이니까"

하지만 카투리안이 유일하게 자전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는

작가와 작가의 형제처럼 이 작품에서 맥도너는 카투리안이란 또 다른 작가의

입을 빌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의 예술적인 실험이 카투리안의 작품을 어둡게 만들었듯이, 맥도너가 이런

작품세계를 갖게 된 것과 그의 불우했던 어린시절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작품 속에서 카투리안이 주장하듯 우린 정말 부모가 마이클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예술적인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을까?

물론 그런 듯이 보이지만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카투리안의 말처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카투리안이란 인물이 그렇게

형사들에게 주장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이 작품속에 나오는 극중 이야기들이 이 작품의 깊이를 더해준다.


작은 사과인형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는 소녀가 사과를 사람 모양으로 깎아 '작은 사과인형'을 만들어 아빠에게 선물한다. 소녀는 아버지에게 먹지 말라고 말하지만 못된 아빠는 '작은 사과인형'을 꿀꺽 삼켜버린다. 사과 속 면도날이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사과들이 잠든 소녀에게 찾아와 그녀의 입을 벌리고 “네가 우리 작은 형제들을 죽였어!" 라고 말하며 소녀를 질식사 시킨다. 

사거리의 세 사형대
꿈에서 깬 한 남자가 자신이 철제 교수대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자신의 죄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거리 맞은 편의 강간범 감옥에는 이미 죽어 썩은 해골이, 살인마 감옥에는 죽어가는 노인이 있다. 수녀들이 지나가다 강간범에게 기도하고 살인마에게 음식과 물을 주는데 이 남자의 죄명을 보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다. 한 노상강도가 나타나 강간범은 그냥 지나치고 살인범은 자물쇠를 부숴 풀어준다. 그러나 이 남자의 죄명을 보고는 그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쏜다. 자신의 죄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자는 죽어가며 말한다. “제가 죽으면 지옥에 가게 될까요?" 

 



작가와 작가의 형제
부모의 따뜻한 사랑 속에 사는 행복한 소년이 있었다. 그 사랑에 힘입어 소년은 작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소년은 늘 잠겨있던 옆방에서 비명소리와 드릴 소리가 들리는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부모는 그것들이 소년의 뛰어난 상상력에서 비롯된 거라 말한다. 소년의 작품세계는 그래서 더 훌륭해졌지만 또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소년이 14살 생일을 맞던 날, 옆방에서 쪽지 한장이 들어온다.  "우리 부모는 7년 동안 너에게는 사랑만을 나에게는 고문만을 해왔어. 이것은 그들만의 예술적 실험이야. 아주 성공적인 결과를 불러왔지." 놀란 소년은 도끼로 자물쇠를 깨고 그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선 아이의 비명소리와 드릴 소리를 내며 연기를 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부모의 노력 덕분에 소년은 뛰어난 작가가 되었고 책도 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 그 집을 다시 찾은 소년은 옆방 침대 위에 썩어가는 형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침대 밑에 있던 죽은 형의 소설을 읽게 되는데 그 작품은 소년이 결코 쓸 수 없었던 따뜻하고 감동적인 걸작이었고 소년은 그것을 태워 없애버린다. 

필로우맨
불행이 예정되어 있는 아이에게 가서 자살을 도와주는 필로우맨은 수많은 불행을 보면서 언제나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필로우맨은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하기로 결심을 한다. 필로우맨은 오래된 기억 속의 예쁜 개울로 가서 필로우보이를 기다린다. 거기서 만난 필로우보이에게 그가 앞으로 갖게 될 슬프고 힘든 직업과 그가 만나게 될 불행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필로우보이는 몸에 석유를 뿌리고 주저 없이 불을 붙여 사라진다. 필로우맨이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아이들의 비명소리였다. 그가 자살을 도와주었던 모든 아이들이 살아나 끔찍한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되는 비명, 스스로 실행할 수 밖에 없게 된 죽음들의 계속되는 비명, 이제는 완전히 혼자 감내하게 될 바로 그 죽음 때문에. 

 



작은 초록돼지
혼자만 초록색이라 다른 분홍색 돼지들의 미움을 사는 초록돼지를 농부들이 절대로 씻겨 없어지지도, 덧칠할 수도 없는 분홍색 페인트로 칠을 한다. 그날밤 슬픔에 빠진 이 아기 돼지는 하나님께 다른 돼지와 다르게 해달라고 비는데, 그날 밤 신비하고도 특이한 구름이 몰려와 초록색 비를 뿌린다. 절대 씻어낼 수도 덧칠할 수도 없는 그런 비를. 다음 날 눈을 뜬 아기 돼지는 자기를 제외하고 모든 돼지가 초록색으로 변한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소녀예수
자신을 예수라고 믿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작은 턱수염을 붙이고 샌들만을 신고 다니며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위로했다. 친부모가 죽고 양부모에 맡겨진 소녀는 예수 행세를 계속했고 양부모는 소녀를 잔인한 방법으로 핍박한다. 소녀는 양부모의 채찍과 십자가, 생매장의 시험까지 모두 받아들이지만 끝내 부활하지 못하고 죽는다. 

 


<필로우맨은> 영국의 극작가 겸 영화감독 마틴 맥도나가 2003년 발표한 6번째 희곡이다. 
가상의 전체주의국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취조가 극의 중심이다. 
2004년부터 2005년 사이에 올리버상, 뉴욕 극 비평가 협회상, 토니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거나 후보로 지명되었고, 영국과 미국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한국초연은 LG아트센터, 뮤지컬해븐이 2007년 박근형연출로 공연됨. 영화배우 최민식이 카투리안 역으로 출연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40대 중반의 최민식이 십대 배역을 맡음)

 

Martin McDona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