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과 조는 매일 카페 앞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서로 누가 더 옳은지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
한편 존과 조는 좀 더 현실적이고 사소한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이 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짧은 문장으로 툭툭 던진다.
또, 엉뚱한 부분에서 논리의 급소를 찌르고 들어온다.
이런 면에서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국과 비슷한 면을 보인다.
공짜 설탕을 커피에 두 조각이나 넣고 너무 달아서 못마시는 상황에서,
존은 단 커피와 쓴 커피를 섞어 제품 공평화 게 보이는 분배를 한다.
하지만 운과 재물, 즉 행운을 상징하는 로또를 둘러싼 분배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조는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남은 당첨금을 빼앗고, 급기야 존을 고소한다.
하지만 조는 당첨금으로 보석금을 지불하고 존을 감옥에서 빼낸다.
왜 그럴까? 단순히 우정이나 측은지심 같은 인간 본성 때문일까?
조는 존에게 옷을 되돌려주고 복권의 불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오지 않는 '고도'에 대한 이야기로 화두를 던지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존과 조는 쏘제와 위그냥 이야기로 화두를 던진다.
조는 "쏘제라고 알지?"라며 존에게 말을 건네는데 사실 조 역시 쏘제를 모른다.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오지 않는 고도에 절망하는 블라디미르처럼,
알지 못하고 절대 알 수 없는 쏘제의 존재에 대해 존은 화를 낸다. 알 수 없는데도
알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몰아치는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화해한 존과 조는 마지막에 위그냉이라는 미지의 인물을 언급하면서
부조리극 특유의 도돌이표를 붙인다.
「존과 조」는 프랑스어로 쓰인 작품이지만 주인공들 이름은 영어로 되어 있다. 조지프Joseph의 애칭인 조Joe는 프랑스어로도 같지만, 가장 일반적인 이름 존John은 프랑스어로 장Jean이다. 왜 작가는 장과 조가 아니라 굳이 존과 조라고 했을까? 익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영어는 프랑스어보다 더 일반적인 언어이다. 영어 이름 존이라면, 더 광범위한 익명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또한 발음에서 존과 조, 두 사람의 이름은 매우 비슷하다. 일반인들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제격이다.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 작품에 나타나기 때문에 익명성을 강조하는 제목을 단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우연성이다. 두 주인공은 따로 약속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제1장, 제2강, 그리고 제3장, 모두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만나는 장소는 정해져 있다. 한 카페 앞에서 마주치게 된다. 여기에는 필연성도 내포되어 있다. 갈 데가 딱 한 곳이라면, 산책하다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마주치는 것은 역시 우연성이다. 우연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필연은 누구나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태어남은 우연이고 죽음은 필연이다. 어떤 고귀한 목적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나서 살다가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20세기 실존주의의 장을 연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장하는 허무주의의 골자도 이것이다. 이런 허무주의는 연극에서 부조리극으로 발전한다. 「존과 조」는 부조리극의 대명사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오르게 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매일 나무 아래로 오는 것처럼,
이 작품은 1975년 스위스 뇌샤텔Neuchâtel에서 앙리 팔릭Henry Falik의 연출로 카페 뒤 마르셰에서 초연되었고, '스위스 로망드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다. 1993년에 독일어로 번역되었으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희곡 중 독일에서 아마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일 것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면서 1998년에 앙드레 스타이거André Steiger 연출로 뇌샤 텔의 타코 극장에서 프랑스어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도 1995년 이후 여러 극단에 의해 무대에 올랐으며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아쉽게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희곡집까지 나왔는데 공연이 안 되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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