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15살이었던 카오루는 살해당했다.
카오루를 살해한 아쯔시는 사형을 언도 받고 항소를 포기하려 한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딸을 죽인 살해범을 직접 죽이기 위해
살인도구를 가득 담은 가방을 준비한다.
아쯔시의 부모는 아들이 항소해서 사형만은 면하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가해자와 피해자부모들은
아쯔시를 면회하기 위해 1박2일간의 기묘한 여정을 함께 한다.
<기묘여행>은 일본의 작가, 토시노부 코죠우가 쓴 작품으로 사형수와 피해자의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해당한 딸의 부모와 딸을 죽인 청년의 부모가 만나 사형이 확실시되고 있는 그 청년을 면회하기 위해 함께 교도소에 가는 여정 속의 이들은 1박 2일의 짧은 여정 속에서 갈등과 분노뿐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목도하게 된다.
작품 속에는 딸의 살해범인 사형수를 직접 죽이겠다는 아빠, 항소를 포기하고 사형을 받아들인 살해범, 교도관으로 사형집행 경험이 있는 코디네이터 등 살의와 죽음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피해자의 아빠는 복수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식은땀을 흘리고, 가해자의 엄마는 아들이 항소해 어떻게든 살기를 바라며, 과거 교도관은 이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을 알선하는 코디네이터가 되어있다. <기묘여행>은 살인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생명의 존엄성과 순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타인의 생명은 날로 가벼워지고 뉴스에서는 갈수록 잔인한 살인 사건들이 연일 보도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보다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은 빗발치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사형 집행을 외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법이나 제도에 의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해도 되는 것일까?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기묘여행>은 3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의 가해자부모와 피해자부모의 1박2일간의 짧은 여행을 통하여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던지는 작품이다. 작품은 살인이라는 1차 재해에 가려져 있던 남겨진 이들에 집중한다. 죽은 딸의 복수만을 기다리며 버텨온 아버지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겨우 일상을 이어가는 어머니, 살인을 저지른 아들이지만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가해자의 부모,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기묘여행>은 눈앞에 보이는 분노와 광기를 내려놓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증오와 원망, 죄책감과 불안에 흔들리지만 끝내 순수한 인간의 양심과 '생명의 의지'를 저버리지 않는 인물들을 통하여 관객들은 생명의 존엄성과 숭고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기묘여행>은 두 부부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살인과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 기묘한 여행을 알선한 코디네이터와 자원봉사자 또한 입장만 다를 뿐 살인이라는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들은 삶을 그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아낸다. 하지만 작품은 이들을 통해 두 부부에게 어줍잖은 화해와 용서를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살인을 겪은 이들이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뿐이다. 작품은 살인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원작의 고통과 분노, 광분, 슬픔 등의 표현들은 절제되어 있으며, 작품 전반에 적절한 유머와 위트가 스며 있다.
작가의 글 - 코죠우 토시노부
어느 날 밤,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지만 생각 외로 영화가 재미없어 시부야역 근처 뒷골목 술집에서 친구와 둘이서 지루한 영화 얘기를 안주삼아 술을 한잔했다. 음악도 없는 자그마한 술집안에는 밖의 소란스러움과는 반대되게 느긋하게 시간만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술집이 끝나기 전까지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 좀 가게 주인아저씨가 라디오를 작은 소리로 틀면서 말했다. "시끄러우면 끌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별로 거슬리지 않아요" 그렇게 대답한 우리들은 생선조림을 주문하고, 영화 이야기에서부터 점점 대화가 무르익어 서로 일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았다. 얼마 후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가져오면서, 미국에서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큰일?", "뭐라더라. 건물에 불이 났다던가, 비행기가 추락했다던가.." "네?"라고 반신반의하며 대답하던 순간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더니 전화를 건 또 다른 친구가 당황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이봐 지금 텔레비전 보고 있어?" 라고 물었다. 이래서 우리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를 알게 되었다. 그 후 얼마 뒤 "이것은 전쟁이다"라고 발언한 부시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언제부턴가 전쟁 위에 '정의'의 이름이 붙게 되고, 결국에는 아프카니스탄에 공중폭격이 계시되는 사태까지 이르렀고, 나는 결국 예정을 바꿔 다음 정기공연을 기묘여행으로 변경하는걸로 결정했다. 이 연극은 2004년 상연을 목적으로 할 계획이었지만 아무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라는 충동이 나를 부추겼다. 〈기묘여행〉은 설정도 스토리도 두말할 것도 없이 픽션이고, 미국의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향한 세계운동과 사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뿌리 깊은 어딘가에선 확실히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용서할 수 없다' 라는 생각. '어떠한 경우도 용서할 수 없다' 라는 감정. 하지만 그 '용서할 수 없다' 라는 분노를 용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방법은 정말로 찾을 수 없는 것인가. 그러한 맥락에서 생각되는 것으로, 사형제도가 옳은 건지 아닌 건지 죄 없는 피해자유족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가해자의 인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이렇게 언급한 것들 쪽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대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희곡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희곡의 설정에 당사자와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친부모가 살해당한 피해자의 가족들과 사형수의 가족과 모여 함께 여행한다는 이야기가 미국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여행은 'Journey of Hope' 라고 불리고 있다. 동시다발테러 이후 미국이라는 국가가 '희망'을 목표로 한 전진인지 아닌지는 지금에서야 소용이 없다. 하지만 내 몸속의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벌레가 기듯이 꿈틀거리고 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팻 플라워 '장미꽃과 닭고기 샌드위치' (1) | 2025.01.06 |
---|---|
마틴 맥도나 '필로우맨' (1) | 2025.01.05 |
데이비드 스토리 '불꽃' (원제 Home) (2) | 2025.01.03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과 조' (1) | 2025.01.02 |
에릭 시걸 '러브스토리' (6) | 2024.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