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숙적인 두 여성이 있다.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 여기는 모니카와
함께 뭉친 집단의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믿는 니콜이다.
11살 때 세계 아동 체스대회에서 만난다. 니콜 승.
18세 때 세계 여성 체스대회에서 다시 만난다. 이번엔 모니카 승
집단의 힘을 믿는 니콜이 체스 게임에서 즐겨 쓰는 전략은
가장 힘 있는 말인 폰을 밀집시켜 숫자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반면에, 개인의 역량을 신뢰하는 모니카는 체스 게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퀸을 이용해 상대를 일대일로 타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 후, 잉글랜드에 저항 세력인 아일랜드의 무장 독립운동단체 IRA에
들어간 니콜은 체스판의 폰을 다루듯 군중을 움직여 의도적으로 압사사건을
일으키고, 그 틈새를 타 적을 제거하는 전략을 세운다.
반면에 IRA의 반대편에 있는 영국 정보부 MI5에 소속된 모니카는
개인의 심리를 조종하는 법을 꿰뚫어 니콜의 인간관계에서 허점을 찾아내고
그녀를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부친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니콜.
천재 여성 정보분석가인 모니카와 니콜은 세계사의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서로의 신념과 목숨을 걸고 치열한 두뇌 게임을 펼친다.
소설은 핵 위기, 무장세력의 테러, 종교분쟁처럼 세계 곳곳에서 실재했던
굵직한 사건들이 두 전략가의 손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됐다고 가정하고
전개되며, 둘의 승부는 그야말로 인류의 현대사를 좌지우지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붕괴, 이란 핵 위기, 9·11 테러 등이다.
그리고 80대 초로가 되어 만난다.
목숨을 건 체스게임이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번역자의 글 - 전미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자전적 에세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에 보면 그가 작가의 꿈을 키우며 남다른 아이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몇 가지가 나오는 데, 그중 그리스로마 신화와 체스가 특히 눈길을 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 준 그리스로마 신화는 낯선 세계를 상상하는 힘을 키워 주었을 것이고, 체스는 (가시세계와 비가시 세계를 막론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과 원리를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특히 체스는 작가에게 <모든 것은 전략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단순한 소설적 소재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을 것이다. 체스라는 소재는 베르베르의 소설에 크고 작은 비중을 띠며 다양하게 등장한다.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 「뇌」다. 사뮈엘 핀처가 컴퓨터 <디프 블루 IV>를 꺾고 세계 체스챔피언에 오르던 날 돌연사한 사건이 이야기의 출발점인데, 뇌를 연구하는 신경정신 의학자인 핀처가 세계 체스챔피언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뇌」에 서 체스가 인간 신체의 작은 우주인 뇌가 지닌 비밀과 무한한 가능성이 발현되는 통로 중 하나로 인식된다면, 이 소설 「퀸의 대각선」에서 체스는 국제 지정학의 작동원리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베르베르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체스보드로 인식하는 두 여 주인공을 내세워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체스보드 위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말에 불과한 건 아닌지 묻는다. 그렇다면 이 행마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퀸의 대각선」은 <뉴스의 시청자가 아니라 뉴스를 만드는 사람,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두 여성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격돌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주인공 니콜과 모니카는 제스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공통점 외에는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이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며 오토포비아 증세가 있는 니콜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결속된 집단이라고 믿는 반면, 인간자체를 혐오하는 안트로포비아 환자인 모니카는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확신한다. 둘의 관계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인 브루니킬디스와 프레데군디스의 악연과 닮아있다. 6세기 프랑크 왕국의 두 왕비가 남편인 왕은 물론 왕국 전체를 체스보드의 말처럼 부리며 권력쟁탈과 정적제거에 몰두했듯이, 동서진영을 대표하는 두 전략가인 니콜과 모니카도 상대를 제거하겠다는 목표 하나를 위해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기획한다.
두 주인공의 상반되는 캐릭터와 세계관은 체스 게임 전략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사건을 기획하는 그들의 방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집단주의자인 니콜은 폰으로 장벽을 쌓아 상대를 서서히 포위해가는 압박전술을 선호하는 반면, 개인주의자인 모니카는 목표물을 기습 타격하는 건이나 나이트의 현란한 단독플레이에 의존한다. 1960년대 말부터 벌어졌던 현대사의 큰 사건들, 가령 IRA 무장투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붕괴 이란 핵 위기, 심지어 911 테러까지도 이들이 만든 <작품>이다. <퀸의 대각선>은 베르베르가 쓴 최초의 사실주의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소설에는 사람처럼 말하는 동물도, 전생이나 사후세계도, 신이나 외계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의 배후에 각각 KGB 요원과 CIA 요원으로 활동하는 두 여성 주인공이 존재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 작품은 SF소설보다 스파이소설에 가깝다. 두 주인공의 강한 캐릭터와 독기, 역사에 대한 소명 의식은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하는 국제정치무대에서 될 것이다. 특히 독자들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 전달될 수 있도록 <백과사전> 이순신 장군 항목을 감수해 주신 황현필 한국사 연구소에 감사를 전한다.
입체적으로 묘사된 체스대국 장면들 또한 체스규칙을 모르는 독자들도 몰입할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물론 이 소설의 압권은 단연코 두 전직 스파이의 마지막 재회 장면이다. 숙적인 니콜과 모니카가 인생의 황혼에서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비장하기도 하지만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 숱한 스파이 소설과 영화에서 단 한번도 본 기억이 없는 장면이다. 그들은 여자 제임스 본드였고, 그들에게 인생은 마지막까지 한 판의 체스 게임이었다. 통쾌했다.
작가의 글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 소설은 친구 질 멜랑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 왼쪽 팔꿈치로 전동 휠체어를 조작해 타고 다니는 절단 장애인인 질은 퐁텐데이노상 분수대 앞에서 시위를 마친 군중이 한꺼번에 수도권 고속전철 샤틀레 레 알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 느꼈던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내게 생생히 들려주었다. <휠체어에 앉아 낮은 위치가 되면 사람들이 널 보지 못해서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가.> 밀려 넘어져 사람들에게 밟힐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질이 침착하게 대응했고 운도 따라준 덕에 끔찍한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등골이 오싹하면서 그동안 겪은 비슷한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파가 운집한 록 콘서트장에서 순간순간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러시아워 때 지하철에서 출입문 유리에 얼굴을 붙인 채 옴짝달싹 못하고 서있을 때도 비슷한 공포가 밀려온다. 파업이 일어나 열차운행이 최소화되면 상황은 더 끔찍해진다.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 지옥 같은 순간을 견디며 매일매일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걸까? 군중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많은 사람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동시에 한자리에 모일 때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그것의 장단점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법대에 다닐 때 사회학 수업에서 읽었던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 심리>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다시 책을 꺼내 읽으면서 메디 무사이드의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도 흥미롭게 보게 됐다. <메디 무사이드는 군중학: 군중이 우리에 대해 알려 주는 것>(플라 마리옹 출판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거대 집단: 새로운 지능의 힘』 (파야르 출판사)을 집필한 집단 지성 전문가 에밀 세르방슈레베르와도 여러 차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80억 명이 살고 있다. 앞으로 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한자리에 모일 기회는 점점 더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알뱅 미셸 편집부와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알뱅 미셸 편집자들은 30년 전부터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작은 공동 체이자 에그레고르다. 그리고 1991년부터 변함없이 내 책에 관심을 가져 주는 독자들은 이보다 더 거대한 에그레고르를 형성해 내 창작 활동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혼자면 더 빨리 가지만 함께면 더 멀리 간다.
물론 이 반대로 생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니콜 오코너와 모니카 매킨타이어의 생각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독자들이 책을 읽고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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