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가는 데 있어 예술의 문제란 어쩌면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된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스트릭랜드같은 사람에게 있어 예술이란 인생 전체의 문제이고 포괄적인 삶의 문제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사실 보고 즐기는 것, 더 나아가서는 아무 의미없는 유희나 유한 취미로나 보일지도 모른다. 당장의 생활이 급급할 때, 문학이니 음악이니 미술이니 하는 것들을 누가 감히 들먹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이 치열하고 복잡하고 신산스러운 삶에 비해 예술은 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 예술에 대한 불꽃같은 정열을 지니면서도 냉소적이리만치 삶을 경시한 한 사나이의 초상이 있다. 그는 온갖 육체적 악조건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직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만 살다가, 죽음 또한 예술과 함께 했다. 자신의 마지막 걸작이 그려진 오두막을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이 기묘하리만치 이상한 성격과 놀라운 재능을 지닌 사나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생애에서 힌트를 얻어 쓴 소설로, 몸에게 장편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히게 해준 작품이다.
주인공 스트릭랜드(Charles Strickland)는 영국인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스티릭랜드의 아내와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 갑작스레 집을 나간 스트릭랜드를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화자가 파리로 출발하는 데서부터 이 작품은 시작된다. 스트릭랜드를 찾은 화자는 그의 가출 이유를 듣고는 무척 놀란다. 스트릭랜드는 그의 아내가 상상했듯이 젊은 아가씨와 사랑의 도피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17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온 부인과 두 아이를 버리고 가출한 것이다. 그는 이미 청춘을 잃어버린 나이였고, 주식 중개인으로서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새삼 그림을 그리겠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파리로 떠나온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스트릭랜드는 "내가 말하지 않았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고. 내 자신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물에 빠진 사람은 수영을 잘하느니 못하느니,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되죠. 어떻게든 헤엄을 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테니까."라고 대답한다. 화자는 그때 상대의 말 속에서 그의 가슴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무서운 힘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런 강렬한 힘이 그 자신의 의지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도록 격하게 그를 사로잡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고 런던으로 돌아간다. 그 후 스트릭랜드는 네덜란드인 화가 더크 스트로브(Stroeve)와 알게 되는데, 그는 일찍부터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인정해준다. 뿐만 아니라 몹시도 착한 성품을 지닌 그는 아내 블랑슈의 세찬 반대를 무릅쓰고 열병으로 고생하는 친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보살핀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배은망덕하게도 친구의 아내인 블랑슈(Blanche)를 유혹하여 동침하며, 그후 블랑슈는 스트릭랜드의 이기심과 박정함에 절망하여 음독자살을 한다. 그리고 화가 더크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스트릭랜드는 그 뒤 자신의 영혼의 고향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타히티에 동화되어, 그곳의 원주민 여인 아타(Ata)를 아내로 삼고 아이도 낳아 살아간다. 그러다가 그는 나병에 걸려 고생하게 되지만 굴복하지 않고 최후의 힘을 다해 그가 사는 오두막집 벽 전체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벽화야말로 신비스럽고 정교한 구도로 온 벽을 덮었는데, 관능적이며 정열적인 그림이었고 아름다웠으며 장엄한 자연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성스럽고 아름다운 벽화였지만 아타와 의사인 꾸트라(Dr. Coutras)의 눈에만 비쳤을 뿐이다. 이 벽화는 스트릭랜드의 유언대로 그의 충실한 아내인 아타에 의해 오두막집과 함께 불태워 버리고 만다. 타히티에서 돌아온 '나'는 스트릭랜드의 아내를 찾아간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이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의 예술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 방에는 복제(複製)한 그림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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