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광순 '복숭아꽃 살구꽃'

clint 2017. 2. 14. 18:37

 

 

2001년 서울 신문 신춘문예희곡 가작 작품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초이다. 막 전쟁이 끝나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이 무대가 됩니다. 그 농촌을 무대로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는 한 가족이 중심인물들로 등장한다. 지독한 가난으로 팔려가듯이 시집을 가야 하는 처녀들의 운명, 병에 시달리다 음독을 하는 아버지 등 등. 그런데 이런 배경과 인물 설정은 일제시대의 희곡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유치진의 '토막'에서부터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김정진의 '15분간' 함세덕의 '산허구리''무의도 기행' 등 일제시대 리얼리즘 희곡의 대부분이 '복숭아'와 유사한 무대 배경과 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시대의 희곡들이 더 정교하고 처절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2001년의 작가가 7,80년 전의 희곡과 유사한 희곡을 써야 하나? 이 질문은 단순히 과거를 소재로 했다고 문제를 삼자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과거를 소재로 하고 시대 배경으로 삼을 수 있다. 과거의 상황 속에서 현재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처럼 과거가 사실적인 상황 그 자체로 무대에 펼쳐지는 것은, 무대가 사실적이면 사실적일수록 오히려 공허하게 느껴지는 문제점이 있다.

 

심사평 - 서연호 김상수

희곡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연극 공연을 전제로 글을 쓰는 작업이다. 우리가 희곡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의 껍질()을 한 꺼풀씩 깨고 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연극을 보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연극 만들기를 하고 있는가? 아마도 그것의 본질에는 인간이 세상을 알려고 하는 저 무한한 욕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 감추어진 것, 외면한 것,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자기 시간 속에 담고 싶은 이야기들, 시간과 공간을 빚어내는 추체험(追體驗) 속에서 삶의 사실도 찾아내고, 좀 더 생생하고 사실적인 그 무엇을 보고자, 알고자,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 100여 편의 응모작을 읽었다. 꼼꼼하게 읽기 위해서 애를 썼다. 정말 읽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도대체 당신들은 희곡을, 연극을, 정말 알고나 있는가? 희곡이, 연극이 삶을 살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정말 알고나 있는가 말이다. 더러웠다. 희곡의 언어가 아니었다. 조악했다. 거칠고 상스러웠다. 연극의 언어는 결코 개그가 아니다. 연극의 장면은 저 지루하고 상투적인 일부 텔레비전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말장난이나 지겨운 삶의 되풀이 장난이 아니다. 연극의 언어나 장면은 진지한 열정으로 삶을 바로 보는것이고 잘근잘근 삶을 깨물어 보는 것이며 끈질기고’ ‘겸손하게인간의 존중과 인간의 위엄과 인간의 예의를 말하는 것이다.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태도다.

그럼 과연 작가란 무엇인가? 연극을 통해서 인생의 정답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연극을 통해서 삶을 꿈꾸며 생을 탐구하고 삶의 지평을 넓힐 수는 있을 것이다. 갖가지 개성이 충돌하고 의견과 말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작가는 가로 세로로 인생의 의미를 직조(織造)하고 구축해서 인간과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란 나름대로 세상에 부지런하고 자기 자신에 치열할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이번에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아니, 당선시킬 작품이 없었다. 인간을 그리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세상을 그리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대체로 설익었다. 지겨운 제스처가 난무했고 세상을 보는데,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제대로 구분이 어려웠다.

박광순의 희곡은 아직 작가로 얘기되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단정함이 있었고 세상을 잘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언어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보였고 역사를, 과거를, 현재를 보겠다는 노력이 엿보였다. 정진(精進)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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