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집으로 오세요”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익명의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희망의 집. 그 곳엔 정말 희망이 있을까. 팍팍한 일상에 지치고 고된 세상살이에 신물 난 사람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희망’이라는 단어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이곳을 찾아온다. 2010 부산예술제의 두 번째 연극 [지상의 방 한 칸](김문홍 작, 연출 허영길)의 무대 위에는 수용소를 연상하게 하는 ‘희망의 집’이 있다. 삐죽삐죽 모난 문, 칸칸이 나누어진 벽은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희망의 집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때문에 빚을 지고 가족들을 책임져야하는 대학생 이미정, 집 담보로 선 보증이 잘못되어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한영미-박영수 부부,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고뇌하는 박사 차중호, 교사 신분으로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을 받는 서민정.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 고뇌의 중심엔 ‘지상의 방 한 칸’이 있다. 지상의 방 한 칸을 마련할 수 없어 절망하고, 지상의 방 한 칸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집으로 돈 놀음을 하는 요즘 세상에서 집은 살아가는 이유 전부이자 이들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지상의 방 한 칸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킨다. 가족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힘겨운 삶을 유지하는 것에 절망하기도 하고, 집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오해가 생겨 부부사이가 어긋나기도 한다. 돈으로 직위를 사고파는 대학을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도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전임교수직과 집 사이에 고뇌하기도 하고, 교사라는 직위에 맞는 사회적 요구와 부(富)를 얻기 위한 갈등 사이에서 타락하기도 한다. 집이라는 형태로 점철된 갈등은 인간의 치졸함과 더러운 욕망을 낱낱이 드러낸다. 배우들에게서 현대인의 자화상을 스치듯 마주하게 된다. 이들에게 나타난 ‘희망의 부재’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집’이라는 부(富)의 형태를 지키기 위해 정작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을 내버린다. 소통, 정의, 자기 정체성, 인간다움이라는 가치는 맥없이 고꾸라진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이 희망이 없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곧 희망은 찾아온다. 한 산모의 등장이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희망의 집을 찾아온 산모가 아이를 낳는다. 희망의 불모지와 같았던 이곳은 순식간에 희망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자신들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깨닫고, 아이를 보고 “자신이 찾아야 할 진정한 희망의 모습을 찾았다”며 감격한다. 그리고 한영미, 박영수 부부는 아이를 계기로 지난 부부 생활을 되돌아보며 오해를 풀고,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희망의 가치와 여태껏 잊고 살았던 소통의 소중함을 발견한 것이다. 이 장면은 그들에게나 관객에게나 큰 감격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끝나려는 즈음, 연극은 또 한 번의 전환을 맞는다.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게 환상이었던 것이다. 본분을 망각하고 돈만 쫓았던 서민정 선생은 평소 앓던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순간에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은데”라며 뒤늦은 후회하는데, 그 간절한 소망이 산모와 아이라는 환영을 만들어내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환상적인 반전이 놀랍지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극적 장치로 인해 극중 인물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희망의 집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희망의 집 또한 실존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었다. 환상적인 결말은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진실’이기도 했다. 희망에 대한 진실에 다가서게 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연극 [지상의 방 한 칸]은 다소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로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였으나, 알맹이 없는 가십거리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연극이다.
“어느 자리(지위)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켜야할 건 지켜야 삶의 무게 중심이 잡힌다” 등 의미심장한 대사는 가치관의 혼란에서 조금씩 자신을 되찾고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 그리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희망의 존재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이 모든 게 스스로 반성하게 하려는 의도적인 시련일지도 모른다”, “지금 겪는 고통은 내가 진정 만나야 할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 등 삶의 고난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이 대사를 통해 묻어났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희망을 확신하는 과정을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치밀하게 그려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 소통을 향한 희망, 나를 찾기 위한 희망, 인간다운 삶을 위한 희망. 연극 [지상의 방 한 칸]은 ‘희망’으로 귀결된다. 연극 속 그들이 그랬듯,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희망의 집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희망은 가까이에 있다”는 연극 속의 울림이 메아리친다.
김문홍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람.
1976년 제1회 [한국문학]신인상(중편소설), 소년중앙문학상(동화), [월간문학]신인상(동시)로 문단 데뷔. 동아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1989~1991년 한국연극협회 부산지부장 역임.
1989년 부산극작가협회 창립 회원
1998년 부산시립극단 창단 준비위원 및 운영위원(현).
부산대학교(연극과 영화의 이해)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현대희곡론)
부산예술대학문창과(극작실기론)
동아대 국문과(희곡 및 시나리오론) 에서 강의.
현) 부산극작가협회 회장, 부경대학교 외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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