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 1981년(이영식 모노드라마 300회 공연)
재공연 : 2010년 다시 고쳐 씀(호민 모노드라마, 미리내 소극장)
객석에 한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다. 그가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온다. 관객인 듯, 배우인 듯한 사람에게 시선이 쏠린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 사이에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연극이 시작된다.
연극 [닭 잡아먹고 오리발]은 극단 아센의 대표이자 부산을 대표하는 중견배우 ‘호민’의 모노드라마다. 한 사람이 연극을 이끄는 모노드라마인 만큼 극중 주인공인 ‘오리발’이 여러 캐릭터로 변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승에서의 죄를 재판 받기 위해 천상재판정에 불려온 오리발.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영문을 모르고 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관객들과 함께 오리발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오리발은 엄마의 사고방식대로 살아간다. 돈이면 다 된다는 일념으로 돈으로 반장이 되고, 친구들의 환심을 산다. 대학도 서울대 법대쯤은 가야 가문 좋은 아가씨와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가르침에 재수, 삼수를 거쳐 겨우 서울에 있는 법대에 들어간다. 그 이후에도 돈으로 여자를 만나고, 쉽게 돈 버는 기술을 익히는 등 편안한 삶을 유지한다. 처음에는 엄마의 방식대로 사는 것에 저항하고 싶었지만 어느 새 그런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 자신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삶은 곧 자신의 삶이 된다.
하지만 쉽고 달콤한 삶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위기는 찾아온다. 백수가 되어 계룡산에 도를 닦으러 들어가지만 엉터리 가르침을 설파하고 돈과 여자를 탐하는 사이비 교주로 전락하여 구속되기에 이른다.
무대는 다시 천상재판장. 어린 오리발부터 부도덕한 사이비 교주 오리발까지, 오리발은 자신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돈을 택했지만, 어느 새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 모르겠다”, “다들 죄가 있지 않느냐?”라며 반문한다. 자신의 죄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철저히 엄마의 로드맵대로 살아온 오리발의 인생은 생각도, 성찰도 없는 껍데기뿐인 삶이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타율적인 삶을 살았던 오리발의 비참한 말로를 한 마디로 말해준다. 곧 연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타율적인 삶은 그 사람의 생각까지 지배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오리발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타인이 정한 자신의 삶에 안주하고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70분 간 오리발이 풀어놓는 인생사를 보고 들으며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꽤 인상적인 것은 연극 내내 배우의 얼굴에 흐르는 땀이다. 무대와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연극을 보는 입장에서도 진중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어느 연극보다 관객의 참여를 극대화했다. 배우와 관객이 1대 다(多)로 대화하고 함께 웃고 연극에 참여한다. 특히 배우가 “닭발”을 외치면 관객들이 “오리발”이라고 외치며 소품을 흔드는 부분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는 동안 배우와 관객의 경계는 사라진다. 이 모든 게 배우가 1인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재미이다.
다만 멀티미디어 자료나 음성을 부분적으로 이용하지만 1인의 설명에 주로 의존하다 보니 중간 중간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막간 퀴즈, 연기 도전 등 관객 참여를 유도하여 완급(緩急)을 잘 조절했다.
오리발의 성장과정을 따라 화면에 비추는 근·현대사 영상자료도 눈여겨 볼만하다. 일제고사 시대부터 독재 정권시대, 민주화의 급물살을 타며 변화하는 시대, 금융위기, 2000년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상으로 흘려준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변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시대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위치를 가늠해보며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강연도 곁들인다. 다양한 여성상의 변화,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 지상의 방 한 칸 론, 파렴치한 범죄자 이야기, 정치판의 권모술수 등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인 메시지들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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