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나정 '상자속 흡혈귀'

clint 2017. 2. 13. 09:33

 

 

 

불멸의 존재이며 로얄 패밀리였던 그들은 인간들의 공격으로 백작(아빠 뱀파이어)이 죽은 뒤, 살 길을 찾아 생계형 흡혈귀로 전 세계를 떠돈다지금은 한국 어느 지방의 호숫가 유원지 드림월드-유령의 집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까다로운 성격에 비현실적인 사고를 지닌 엄마 쏘냐는 영화로웠던 과거의 세월을 잊지 못하며 텔레비전에만 빠져 산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인 아들 바냐는 드림월드 사장의 부인 미봉을 남몰래 좋아하며 몽상가로 살아간다. 가장 현실적인 막내 딸 아냐는 우유부단한 오빠와 향수병에 걸린 엄마 사이에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가려 애쓴다.

극은 빚에 쪼들린 드림월드의 철거 소식으로 시작된다. 살길이 막막해진 건 드림월드의 사장 내외뿐만이 아니다. 피만 먹고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당장 살길을 찾아야만 하는 흡혈귀 가족! 과연 이들의 운명은...

 

 

 

 

 

트란실바니아 귀족 출신이지만 생계를 위해 전 세계를 떠돌다 한국의 어느 오래된 유원지 드림월드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흡혈귀 바냐 가족. 불사의 몸을 가진 흡혈귀 가족에게도 인간세상에서의 삶과 사랑은 힘겨움 그 자체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생계형 흡혈귀들의 삶과 사랑... 그들과 인간들의 에피소드이다.

 

 

 

 

 

상자 속 흡혈귀는 여타 흡혈귀물들과 궤를 달리하며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무한한 시간 위에 올라탄 덕분에 부귀영화를 부렸던 흡혈귀는 시간이 남아도는 로 전한다. ‘이 완벽하게 뒤집힌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재미가 작품을 지배한다.

 

흡혈귀지만 만 먹고 살던 시대는 갔다. 집도 사야 하고 휴대전화 요금도 내야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는 일도 해야만 한다. 작품은 더 나아가 내 집 마련, 최저시급, 대출금 연체, 장기매매, 성매매 등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꼬집고 있다. 특히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로 최저시급을 받는 아냐가 6억 짜리 아파트 높데 캐슬을 사기 위해 37년 동안 꼬박 일해야만 살 수 있다는 대목은 공감과 함께 가슴 속에 묵직한 돌 하나를 얹히게 한다.

 

 

 

 

사회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극은 어둡지만은 않다. 재치가 깃든 대사들로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분위기의 균형을 맞춘다. 마늘 두 자루를 먹고 벌이는 자살소동 에피소드, A형의 피는 밍밍하니 톡 쏘는 B형의 피를 달라는 대사, 유행가 가사의 패러디 등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해 극을 밝힌다.

 

평소 러시아 극작가 안톱 체홉을 애정 한다는 김나영 작가의 취향이 묻은 것인지 작품에는 체홉의 향기가 묻어난다. 주인공 쏘냐, 바냐, 아냐의 이름을 비롯해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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