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시원 '자라의 호흡법'

clint 2016. 5. 10. 22:03

 

 

 

이제 와서 밀가루를 먹으라니 아빤 나에게 말라붙은 빵 부스러기도 건넨 적 없잖아요"

주인공 세이는 함께 살던 할아버지를 여의고 홀로서기를 다짐하며, 절친한 친구인 진수가 다니는 제빵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지만 떨어지고 만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빵 캐릭터 공모에 응시하기 위해 비디오아트 작업 중 아버지(광현)가 찾아오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할아버지 손에 자란 세이는 아버지를 극도로 증오한다. 급기야 광현은 세이에게 최후의 방법을 써보는데...

 

<자라의 호흡법>이라는 생뚱맞은 제목처럼, 작품엔 엉뚱한 인물들로 가득하다. 어린이 비디오 아트를 하는 세이, 이를 응원하며 속으로 맘을 졸이는 진수, 신제품 빵을 만들기 위해 빵에게 락과 클래식을 들려주는 커플, 주변사람들에게 도움과 민폐를 적당히 끼치는 밉잖은 노숙자, 호수를 관리하며 새우깡 금지! 를 외치는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듯한 외양 속에 감춰진 그들의 고유성과 개성은 너무나도 특이하다. 우리 주변에 꼭 있을 법한, 그러나 너무 평범해서 아직 이야기되지 않은 그들. 세이, 진수, 커플, 관리인, 노숙자, 그리고 열여덟 살에 세이를 낳고 가출한 아빠. 특히 노숙자와 아빠의 캐릭터는 가히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고 미워할래야 할 수가 없는 역할이다세이는 불쑥 집으로 찾아온 게이인 아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심전력하여 거부하지만, 핏줄은 끊어질래야 끊어지지도 지운다고 지워지지도 않는다. 현대의 젊은 작가들이 그리는 가족 극은 오히려 부모로부터 깨달음이 온다.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쪽도 기성세대 쪽이다. 그게 현실에서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상기대속에서 부모가 될 젊은 세대들은 자식을 쉬이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제는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디 미워하지 말기! 를 하고 애원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메마른 감수성과 소통의 한계 상황에서 하기 어려운 사랑대신 미움을 거두는 것이 새로운 교훈이 될지도 모른다. 서로 미워하지 말라. 용서와 화해를 안 하면 안 될까? 사랑도, 미움도, 용서도, 복수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거북인 척 하는 자라의 호흡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긍정여유의 방법을 일러준다. 무엇이 변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삶에는 대단한 것이 없고, 우열도 없고, 모두가 특별하다는 작가의 의도가 슬쩍 엿보인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신개발 빵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채는 노숙자의 모습이다. 커플의 얼토당토 한 시도들이 자아냈던 시시한긴장은, 노숙자의 정확한 평가와 해석으로 신선한감동으로 바뀐다. 해석불가의 어리둥절한 지점에 다다른 드라마는 오히려 상상력을 가동시키고 새로운 이해를 관객으로부터구하게 한다. 아빠는 어디선가 저런 식의 게이 적 삶을 살았을 것이고,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한 부녀의 방식은 각자의 퍼포먼스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하여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욕을 먹는 소녀시대조차도 작가는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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