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재귀 '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clint 2016. 4. 22. 10:02

 

 

 

 

 

사랑이야기는 대한민국 청춘남녀노소 누구나 말하기 쉬운 일반적인 소재이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일상 가운데 사랑이야기만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통되지 않는 세상은 사랑을 통해 다수와 통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사랑에게 늑대제목 한 번 발칙하다. 사람은 사랑에게 늑대란 제목으로 사람, 사랑, 늑대에 대해 풀어놓는다사람의 양면성이 가장 적절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어디일까? 경찰서, 강력계 형사실이다. 형사라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앉혀 놓고 조서를 꾸미는 일방적인 그들의 관계는 인간의 약한 모습과 강한 모습을 적절하게 표출하기에 알맞은 장소다. 가 본적 없는 경찰서. 살면서 교통사고라도 일어나면 더 실감할 수 있는 인생의 막판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2가지 사건 2명의 형사에 의해 꾸며진다.

한 공간에서 각각 다른 종류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명의 남자, 겉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다연예인의 로드매니저 송기철은 유현숙과 혼인빙자로 잡혀 와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는 늑대의 본성 그대로 자신은 절대, 죽어도 잘못 없다고 소리를 지르는 쪽이다. 로드매니저 송기철은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유현숙은 그 남자 앞에서 혼인빙자로 감옥에 넣고 싶었겠지만 결국 여린, 착한 병에 걸린 그녀는 포기한다. 송기철의 의기양양함은 담당형사 장석구에 비위를 건드린다. 왜냐하면 장석구는 흥분하면 사투리를 쓰는, 송기철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순딩 남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남자, 잘 차려입은 말쑥한 정장차림에, 모범생이라는 아우라를 풍기는 최창석은 지하철에서 어떤 여자가 치여 죽어서 참고인 조사차 들른다. 지하철기관사 최창석은 1주일 뒤에 결혼을 하는, 핸드폰에 하트표 고리를 크게 달고 다닐 만큼의 귀여움을 보이는 인물이다. 착한 남자 최창석은 지하철에서 신원도 모른 채 죽어버린 그녀 때문에 가시방석도 같은 그곳에서 안절부절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최창석, 그도 늑대이기 때문이다. 늑대의 본성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서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남성 본성 최대한의 극치다. 최창석이 경찰서가 가시방석인 것은 죽은 여자, 그 남자의 옛 애인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뭉개지고 지문조차 사라져버린 그녀의 피 묻은 지갑과 사진이 증거물로 도착한다. 최창석은 그때부터 점점 이성을 잃어간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알고 있다. 그가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바지를 움켜쥐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최창석만 빼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얼마 전에 독하게 담배를 끊었다는 그가 담배를 빼문다눈이 부시게 밝게 켜진 형광등이 하나씩 꺼진다. 그는 손을 덜덜 떨며 피 묻은 사진을 빼서 짓이겨버린다. 더 이상 이 사건이 진전되거나 해결되기를 바라진 않는다는 듯 사랑 그딴 것은 이미 늑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연은 결말을 확실히 매듭지어주지 않는다. 모든 남자는 늑대라는 말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일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랑에 대한 시선 자체를 활짝 제쳐둔다.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는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면, 사람만이 사랑이며 희망이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는 법률로 지배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또한 작품은 경찰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죄와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 한다. 무대에서는 밝혀지는 것과 밝혀지지 않는 것을 통해 누가 누구의 죄인인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쯤엔, 얽혀있던 죄의 타래가 풀리면서 우리는 그 끝에 서있는 인간을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태초의 악으로부터 비롯된 탐욕일 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피폐해진 모습이며, 감추고 싶은, 지우고 싶은 우리들 개인의 모습이다.

 

 

 

 

 

인물의 내면과 정서를 풀어놓는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고재귀 작가의 새로운 시도. 마치 범죄 수사물을 보고 있는 듯한 시간 순서와 내용전개는 관객에게 긴장의 끈을 한순간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구성과 영상은 도리어 이 모두를 단순하게 풀 것을 강요한다. 서스펜스에는 비밀이 많고, 다큐멘터리에는 비밀이 없다. 이 두 가지 장르의 혼합을 통해서 진실은 점점 모호해지고, 우리들은 결국 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의미의 라틴어 ‘Homo Homini Lupus'는 라비이어던 (Levitathan)의 저자 홉스가 사회계약론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말이다. 우리는 홉스의 시대로부터 정치, 사회적으로 진일보 하였지만, 여전히 계약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계약되고 법률로 지배받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동시대의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려봄으로써, 과연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계약된 사회(안전이 보장된)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찾아질 수 있는 것인지 그려보고자 한다.

 

 

고재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졸업

2002년 국립극단 연극원 주최 제5신작희곡페스티벌> 희곡 <力士당선.

희곡 당신이야기. 고요>. 엄마. 여행 갈래요?>.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희곡창작집단 극단 독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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