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재귀 '당신이야기'

clint 2016. 4. 22. 12:57

 

 

 

힘들게 살아가지만 가슴에 타인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을 그린다. <당신이야기>에서는 나이든 창녀, 불치병에 걸린 소년을 통해 희망없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인터넷과 핸드폰 등의 발달로 사회적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에서 생활하는 ’은둔형 외톨이’를 소재로 세상과 괴리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극단 측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소통 또는 관계 맺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런 외톨이들의 모습이 바로 ’당신 이야기’일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작품에는 간질 발작으로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남자’, 고셔병 말기환자로 의사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은 ’소년’, 나이가 많다며 포주로부터 지방으로 내려갈 것을 권유받은 ’창녀’ 등 3명이 등장한다. ’남자’는 사람 속에 섞여 있고 싶지만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는다. 일을 끝내고 퇴근하면 집에서 ’성인섹스인형’과 유일하게 대화를 나눈다. ’창녀’는 지방에 내려가기 전 옛날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농아 구두수선공을 찾아가고, 곧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게 될 ’소년’은 부모에게 마지막 소원을 이야기한다.

 

 

 

 

이 극의 중심인물 세명은 모두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패배자이다. 타자와 소통을 하고자 할 때마다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남자, 한물간 나이 때문에 시골로 쫓겨나야 하는 늙은 창녀, 불치병으로 17세에 죽음을 앞둔 소년이 그들이다. 이 극적인 인물 설정만 보더라도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이 극은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루저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당신의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실패의 기억들,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 맺기에 실패했던 참담함과 근원적인 고독을 일깨우고자 한다. 현실에서 여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간질 남자는 집에 돌아와 등신대의 여자 인형에게 말을 걸고 그녀를 애무하고 춤을 춘다. 창녀는 구두굽을 일부러 부러뜨려 구두수선소에 가서 수선공에게 자기 얘기들을 털어놓는다. 수선공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이기 때문에 이 대화 역시 독백이다. 죽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소년은 마지막으로 여자와 자고 싶어 한다. 여자와의 몸을 통한 소통 혹은 관계 맺기로 그는 혼자 죽어야 하는 공포를 잊고자 한다. 이 세 명의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린다. 소년의 엄마는 창녀를 데려와 소년과 만나게 하고, 소년의 아버지는 학생 시절의 간질 남자를 학대했던 교사이며, 간질남자는 창녀와 몸을 섞기 위해 찾아간다. 이처럼 이 극은 우울한 음악처럼, 혹은 차가운 색조의 그림처럼 생의 막장에 이른 인물들의 존재론적 고독을 그린다. 단자화되고, 소통을 원하면서도 소통을 거부하는 대도시 현대인의 존재론적 상황, 그 자체인 것이다. 그 때문에 창녀나 간질남자, 불치병 소년의 고립을 강조하기 위해,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도시의 사람들, 패거리를 만들어 늙은 창녀를 조롱하는 창녀들과 포주들, ‘간음하지 말라는 교리와 종교적 갈등이 대립적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이같이 줄거리를 요약해보니, 이 극의 글쓰기에 있어 장점과 약점이 드러난다. 먼저 장점은 창녀, 불치병 환자, 간질 남자 등 익히 소설이나 대중예술에서 많이 봐온 진부한 인물 설정임에도 성격구축이 강렬하다는 점이다. 소통할 그 어느 사람도 갖지 못한 창녀는 일부러 구두굽을 부러뜨리고 귀머거리 수선공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간질남자는 사람이 아닌 인형에게 말하면서 사랑을 받는다는 환상을 갖는다. 곧 닥칠 죽음을 아는 17세 소년의 마지막 소원은 여자와 한번 자보는 것이다. 이런 장면들, ‘고독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는 부재하는 사랑 혹은 소통 부재의 근원적 고독이나 소멸의 운명을 환기시키며 관객과 강렬한 교감을 이루어낸다. 약점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과 맞물리는 것이기도 한데, 인물이 곧 상황인 이 극에서, 상투적인 인물 설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소개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 극작과 졸업
소설을 쓰던 작가 고재귀는 2003년 연극원과 국립극장이 함께하는 신작 희곡 페스티벌에<력사>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당신이야기>,<고환>등이 있다. 고재귀는 따뜻한 가족이야기,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쓴다. 힘들게 살아가지만 가슴에 타인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을 그려 왔다. 전작<당신이야기>에서는 나이든 창녀, 불치병에 걸린 소년을 통해 희망 없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고, 2005년엔 극작가 집단 극단<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고요>에서는 장님 안마사와 문신 시술사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 :<력사>,<당신이야기>,<고요>,<고환>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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