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꿈이라면 좋았겠지'

clint 2016. 4. 21. 15:06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꿈이라면 좋았겠지"는 인간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워주는 망각의 기계 "매지컬 파워타임"을 소재로 지난 80~90년대 격변기를 풍자하는 시대극. 따라서 시간 역사 기억 망각 등이 주요화두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유적으로 그리는 게 특징이다. 극은 과학의 발달로 망각의 기계 "매지컬 파워타임"이 발명되고 이를 선전하기 위한 CF가 극중극으로 그려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매지컬 파워타임" 영업이 시작되고 이를 이용해 간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위험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상습적으로 찾아오는 남자, 아픈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미, 회사에서 있었던 부끄러운 기억을 지우려 찾아온 자유분방한 성격의 여자, 동성애적 성향을 지우고 보다 평범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는 기준이들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속에서 망각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초조해 한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정전이 일어나고 이들은 기계에 대한 불안에 휩싸인다. 불안은 그들을 무관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파워타임과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이들은 파워타임을 찾는 목적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고 진정한 망각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극은 극중극 형식을 통해 남녀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운동권 출신. 그리고 한때는 연인 사이였다. 도피 중 붙들려간 상월은 갖은 고문에 못 이겨 동지들을 배신하고 되레 이들을 쫓는 상황으로 인생유전을 겪는다. 보다 못한 영웅은 매지컬 파워타임에 중독되고, 그의 기억을 되살려 보려 애쓰는 상월은 회상에 젖는다. 매지컬 파워타임이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일반대중을 조종한 지배계급과 권력, 그리고 이들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은유 또는 상징임이 여기서 드러난다.

격변기의 급박한 상황묘사를 위해 역동적 액팅, , 소리, 오브제 등이 동원되고 의인화된 시간의 영이 등장해 인간과 사회, 역사를 냉소적으로 조롱하는 등 다양한 상징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 또 현실속의 극, 극중극, 극중의 환상 등이 중첩되는 다층구조를 띠고 있어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당선소감> 고연옥

힘들고 지루했던 한 해였습니다. 남겨지지 않은 시간들이 저희들끼리의 친화력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문득 그 시간의 강이 내 아픔을 희석시키고 있었으며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조약돌을 알록 조개로 만들어 찬란한 진주알까지 놓아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여 가는 아픔이 남겨진 저의 화두입니다. 저의 수상이 타국에 계신 아버님의 외로움과 철부지 네 딸의 일상을 가슴앓이로 겪으시는 어머님의 피로를 적셔드리는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그리고 부산의 문화현실을 소주잔 가득 부어 같은 가슴 적셨던 드라마 창작교실의 모든 분들과 순수하고 꿋꿋한 문인의 뒷모습을 보여 주셨던 여러 선배 작가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단절됨과 각박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공연예술에 강한 매력을 느껴왔습니다. 다수의 동시적 대화가 바람직한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설익은 이상에 날개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주신 날개로 비상하는 일이 저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1994년 부산MBC아동문학대상 소년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동화작가로 활동하였으며,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꿈이라면 좋았겠지>가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시사월간지의 기자로, 방송국 시사프로 구성작가로 일했다. 2000년 결혼 후 서울로 이사하였고, 2001년 청송보호감호소의 수형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룬 <인류 최초의 키스>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올해의 우수희곡에 선정되었다.2003, 한 독거노인의 죽음을 통해 물질만능시대의 단면과 죽음의 의미를 짚은 <웃어라 무덤아>가 역시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03 대산창작기금 희곡부문에 선정되었다. 2006년에는 극단 배우세상, 박근형 연출로, 제도권에서 일탈해 있다는 이유로 강간치사사건의 주범이 된 소년들의 이야기 <일주일>, 극단 제이티컬쳐, 문삼화 연출로 한 하급 장교를 통해 계급과 구조 속에 자아를 상실해 가는 군대 구성원들에 대한 <백중사 이야기>가 공연되었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의 키스>, <일주일>, <백중사 이야기> 세 작품에 대해 사회극 삼부작’, 혹은 남성 삼부작이라고 회자되었다. 2007, 현대사회 공간의 이질성과 위험성을 다룬 <발자국 안에서>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서울연극제에 출품되어 대상, 연출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그 해 고연옥의 첫 희곡집 <인류 최초의 키스>(연극과 인간)가 출판되었다.

 

 

<심사평>심사위원 이근삼 이윤택

 

희곡언어는 설명적인 일상 언어가 아니다. 그리고 서술적 사건의 전개라기보다 분명한 성격들의 충돌과 갈등으로 구축되는 인간에 대한 탐구 작업일 것이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이런 극적언어에 대한 인식 없이 표피적인 사건이나 발상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니면 구체적 행위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변적 언어들로 채워져 있었다. 희곡은 말과 행위와 국면으로 이루어진 입체적 구조물이다. 말로 모든 사건을 다 설명하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최종심사 대상으로 남은 작품은 <신이 영웅을 만나다><꿈이라면 좋았겠지> 두 편이었다

<꿈이라면 좋았겠지>는 단막극 규모로서는 상당히 중량감 있는 문제의식과 양식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1백장이 채 안 되는 분량으로 지금 이곳의 삶을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작가의식이 돋보였고 극적 전개 또한 무대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전환시키는 연극적 발상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장면의 연결이 극적 당위성을 획득하는데 약간 엉뚱하고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았고 2장에서는 불필요한 요설이 눈에 띄기도 했다. 이런 작품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만한 문학성과 연극적 구성능력을 갖춘 인재도 드물다는 의미로 이해되었으면 한다. 지금부터 출발이라는 자세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신춘문예 희곡작가로서는 미완의 큰 재목임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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