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32일째 비가 내린다. 삶이 지쳐가듯 사람들의 마음도 눅눅히 젖어간다.
에피소드 1 : 무명작가의 방.
스며드는 빗물 속에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몸짓으로 순응하고 받아들인다. 생의 마지막인 듯 그 옛날 떠나버린 그 여인을 생각한다.
에피소드 2 : 어느 여인의 방.
20년간 떠나있던 남편이 돌아온다는 전보를 받는다. 그의 아내, 간질을 앓는 그의 딸 시내, 19살인 하늘, 그 20년을 매꿔준 여인의 새 남자. 남편의 도착으로 바뀌어야만 하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불안함이 드리워진다. 남자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가? 이제 시내를 보내야만 할 차례인가? 하늘이를 몇 살이라고 해야하는가? 여인은 20년의 공백속에 감춰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하는가?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에 가족의 관계는 무너져 간다. 남자는 술에 절어간다. 시내의 간질은 심해져만 간다. 하늘이는 임신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희망 없는 바램만 키우는데...... 시내가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한다.
에피소드 3 : 여행.
떠나기 위해 배를 준비하고 있는 작가 앞에 시내가 나타난다. 더 이상 세상의 짐이 되기 싫어 죽음을 선택했던 시내. 하지만 떠밀려 살아야 했던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작가는 더 이상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있지 않다. 그는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인다. 근데 눈물이 흐르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마지막 가는 길에 시내는 집을 돌아다 본다. 자신을 바라보며 모두 슬퍼하는 가족들. 자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던가? 한편에선 아기의 탄생소식이 들린다.미련을 갖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세상은 이미 떠난 자를 기억할 힘 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세상은 여전히 굴러간다.
제3회 연출가협의회 신춘문예 당선적 공연으로 올려지는 조용석 작, 김만중 연출의 <침입자>는 그동안 2~3회의 공연을 통해 형식적 의미만을 지녔던 전례를 과감히 탈피하여 18일간의 장기공연을 통하여 신진작가의 작품을 널리 알렸다. 연극이 현실과 동떨어진 삶의 세계를 공유하며 웃고 즐길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마술가게를 통해 확인하였다. 이제는 연극이 인생의 고뇌와 의미를 동시간과 장소에서 같이 나눌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시간이다. 인생의 막바지에 몰려 삶과 죽음을 놓고 갈등해야 하는 인물들의 처절한 몸부림들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감동을 나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잠식하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을까? 신나게 떠들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애쓰며 길을 가는 사람들...... 하지만 전철 속에서 홀로 남은 그들의 몸습은 무엇엔가 지친 듯, 실체 없는 상념을 찾아 헤매이듯 그렇게 어둡게 흘러간다. 이 작품은 홀로된 우리들 속에 존재하는 그 근원적 불안과 어두움을 보여준다.
200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심사위원인 이윤택으로부터 이중적 구조의 절묘한 연결과 능숙한 시적 대사의 처리를 이룩해냈다는 칭찬을 받았던 조용석의<침입자>는 시내와 작가로 대별되는 두 인물군상의 삶을 통해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침입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모습을 몽환적 서술구조를 통해 독특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러한 삶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내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작가가 함께하는 마지막 죽음의 여정들을 통해 삶에 대한 애착과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두 가지의 시점이 교묘하게 교차하며 진행되는 작품의 서술구조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한 다층적 무대구조, 끊임없이 소극장의 무대를 스며드는 빗물들, 인물의 심리를 따라 번져가는 조명의 사용, 각 장면의 심리적 이입을 더욱 증폭시켜줄 음악의 사용으로 관객이 진지한 연극적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구조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해 나간다. 시적으로 압축된 대사를 구사하기 위한 절제된 화법의 이면에 삶에 대한 애착으로 요동치는 인물들의 꿈틀거림을 포착하여 정적인 무대속 에서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를 표현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재귀 '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1) | 2016.04.22 |
---|---|
고연옥 '꿈이라면 좋았겠지' (1) | 2016.04.21 |
안성진 '네버 엔딩 스토리' (1) | 2016.04.20 |
박지원 원작 '호질' (1) | 2016.04.19 |
천명관 '유쾌한 하녀 마리사' (1) | 2016.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