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예상과 상식을 뛰어넘는 문체로 등단부터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소설가 천명관의 첫 번째 희곡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그의 중단편 소설 모음집의 제목이자 열한편의 작품 중 하나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원작으로 하여 작가가 공연 희곡을 직접 맡아 작업한 것이다. 연극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가장 큰 특징은 번역극을 연상케 하는 무대와 의상, 그리고 캐릭터의 구성이다. 거실 모습을 한 무대 세트는 이색적 향취가 물씬하고, 캐릭터의 몰입도를 극대화 시키는 의상과 분장은 한국 현대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특한 외형적 구성 속에서도 대중성의 끈을 이어주는 것은 단연 대본의 정교함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고유의 문체로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렸고,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빠른 템포의 전개로 극에 풍성한 살을 더했다. 덕분에 지적인 작품에 목말라있는 연극팬들과 대중적인 코미디를 원하는 초보관객, 천명관 소설의 마니아 팬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좌절한 ‘요한나’의 자살시도가 하녀 ‘마리사’의 유쾌한 실수로 인해 일순간 살인사건으로 둔갑하게 되는 일련의 해프닝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요한나’가 ‘마리사’의 조언으로 남편 ‘토마스’와 바람이 난 대상자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흡사 흥미진진한 추리극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마리사’의 오빠인 참치 잡이 ‘파울로’가 살인사건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이나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쫓는 형사 ‘얀크’의 집요함 등은 시종 날카로운 위트가 더해져 극에서 빛을 발한다. 작가는 경탄을 자아내는 환상적인 이야기의 활력보다는 현실과 인간관계에서 한 개인이 부딪히게 되는 곤경이나 사소한 소동과 갈등들, 그리고 그와 연루된 곤혹이나 회환과 같은 심리적 양태들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예기치 않게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 우리의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삶의 비의를 무심하게 건드린다. 한없는 우울과 허무를 동반한 삶의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조율해내고 있는 것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작가인 토마스와 그 아내 요한나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이가 좋았던 시절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아주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의례적으로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진솔한 화해 대신 어물어물 중단되는 대화가 이어진다. 점성술과 전생에 집착하여 무료한 일상을 달래보려는 요한나와 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유명작가 토마스와의 갈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인해 예상보다 빨리 '파국'은 찾아온다. 취재차 떠났던 남편의 여행이 왠지 수상쩍었던 요한나는 여자의 직감으로 그것이 다른 여자와의 외도임을 밝혀내고, 그것도 그 대상이 이웃집 수잔느라는 점에서 아주 꼭지가 돌아버린다. 자신의 전생을 로마의 폭군 네로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로 믿어 의심치 않는 요한나는 그 '년놈' 들을 죽여 버릴 마음을 품게 되고, 예상했던 상대인 수잔느가 아님을 알자 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밀월여행의 동행녀가 바로 자신의 여동생인 나디아임을 눈치 채게 된다.. 이 집안의 하녀 마리사의 엉뚱하고 귀여운 행동으로 사건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자살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독약 와인을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이 먹어버리고, 욕조에서 우아하게 생을 마감하려던 요한나는 취해서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이게 다 와인 병을 바꿔버린 마리사 때문이다.
우발적 살인도, 미필적 고의도 아닌 그냥 재수 없는 운명으로 죽어버린 남편 토마스를 두고 전전긍긍하던 요한나에게 마리사는 이 사건을 그냥 '덮자고' 말한다. 때마침 형부와의 불륜에 죄책감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나디아도 언니의 집에 찾아오고 모든 것을 '덮자고' 하는 언니와 모든 것을 '빌고자' 하는 동생이 퍽 애처롭다. 그리고 이 작품의 또 다른 갈등의 축, 얀커 순경이 이 집을 방문합니다. 번갈아가며 사람이 죽었다는 신고를 했던 이 집에 뭔가 수상함을 발견한다. 그 와중에 동생 나디아는 형부의 죽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이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로는 부조리한 세계를 구현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작품은 이렇게 삐딱한 관점을 가졌을까. 잘 살펴보면 현대의 사회라는 데가 내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한편으로는 지루함으로 가득하며,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거의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막막하고 답답한 세상에서 출구가 없을 때, 그리고 거대한 난제 앞에서 해결책이 없을 때, 우리는 웃음으로 그 상황을 조롱하고 냉소하면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겠다. 또 하나, 극중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순환적 세계관' 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강조하며, 전생이나 점성술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무시했던 토마스가 결국 우연으로 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나디아 처제와 놀아난 토마스는 하녀 마리사의 언니 아말리아가 그녀 남편의 동생과 놀아난 것과 이어지며, 이것은 요한나가 자신의 전생이라고 주장하는 아그리피나의 사연, 즉, 숙부와의 재혼 사실과도 연결된다. 한편, 요한나를 '냉동 참치' 라고 비웃었던 토마스는 결국 참치 뱃속에 들어가는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실로 돌고 도는 운명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마지막에 토마스의 시체유기가 성공하면서 모든 갈등이 아주 명료하고 깔끔하게 해결된다. 블랙 코미디이긴 하지만, 남편을 잃은 주인마님을 제외하고는 다들 행복해졌다는 점에선 희망적인 미래를 예측해볼 수도 있겠다.
천명관
인간의 길들여진 상상을 파괴하는 이야기의 괴물을 만드는. 소설계의 프랑켄슈타인.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골프숍의 점원. 보험회사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영화 ‘미스터 맘마’의 극장 입회인으로 시작해 영화사 직원을 거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등의 시나리오는 영화 화 되기도 했으며, 영화화 되지 못한 시나리오도 다수 있다. 연출의 꿈이 있어 시나리오를 들고 오랫동안 충무로의 낭인으로 떠돌았으나 사십이 될 때까지 영화 한 편 만들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진 마흔 즈음.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동생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 소설 부문에 ‘프랭크와 나’가 당선되었으며.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 소설 상에 ‘고래’가 당선되었다. 문혁평론가 신수정이 “감히 이 소설을 두고 문학동네 소설상 십 년이 낳은 한 장관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한 ‘고래’의 충격에 대해 소설가 은희경은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 틀로 해석할 수 없다”라고 했다. 또한 소설가 임철우는 “그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 속에. 보다 구체적인 인간 현실과 삶의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아울러 담겨진다면 머잖아 우리는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권터 그라스의 '양철 북' 같은 동적인 소설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막장 가족서사라 칭하는,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을 비롯하여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싼 갖가지 인물 사이에서 빚어지는 천태만상. 우여곡절을 숨 가쁘게 그려내는 '고래‘ 등을 출간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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