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4년.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코펜하겐으로 왔다. 보어와 함께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3년 동안 함께 지내며 상보성 이론이나 불확정성 원리 같은 혁명적인 발상들을 빚어냈다. 2차대전이 한창인 1941년, 덴마크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 당하자, 유대인의 핏줄이 섞인 보어는 위태로운 상태가 되고, 연구에도 제약을 받는다. 당시에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실용적 목적으로 원자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목적에는 원자폭탄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해 9월, 하이젠베르크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코펜하겐으로 보어를 찾아간다. 그때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이 게슈타포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서서 산책을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산책의 대화 동안, 둘 중 하나가, 혹은 둘 다 심하게 마음이 상했던 듯하다. 이후로 두 사람은 결코 이전의 우정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7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독일이 또 다시 패전국이 된 이후, 하이젠베르크는 다시 한번 코펜하겐으로 보어를 만나러 온다. 보어, 보어의 아내 마그리트, 하이젠베르크 세 사람은 왜 하이젠베르크가 1941년에 보어를 만나러 왔는가 하는 의문을 둘러싸고 대화를 나누는데...

양자역학의 두 거장이 원자폭탄이라는 역사적 사건 앞에 서로의 신념과 처지에 따라 반목하게 되는 상황. 과학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는 충격적인 발견을 해냈던 두 사람이 인생의 불확실성 앞에 서로의 설명을 믿지 못하는 상황. 충분히 극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과학이든 역사든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 내용이라 극본으로 잘 옮기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이었으나 양자역학 설명은 완벽했고(물리 교수께서도 보시고 '나도 매번 저런 매끄러운 표현으로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셨다는 작품이니 제 성을 걸고 보증합니다 ㅋㅋ),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출도 깔끔했다. 무엇보다, 과학과 인생의 불확실성을 연결하는 시도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았다. 결국 진실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는 게 아닐까. 설명은 설명일 뿐, 어떤 설명도 진실 그 자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인생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뛰어난 과학자의 앞날이라도...

마이클 프레인

MICHAEL FRA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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