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개발 계획 Asanace
바츨라프 하벨 Václav Havel 작 송 순 섭 옮김
작품<아싸나체>는 체코의 현 대통령이자 체코 부조리극의 거장 바츨라프 하벨의 87년作으로서 "재개발"이라는 뜻의 체코어이다. 도시 재개발계획을 둘러싼 부조리와 다양한 인간군상의 근원적 욕구가 충돌, 담합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인간의 영혼마저 재개발하려는 보이지 않는 압력과 그 속에서 무감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내면의 벽을 허물고 외압에 항거하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그린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는 이야기 속 "성의 전설"이다. 백작부인과 마부가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에 빠져 백작의 유령이 "이 성에서 사랑에 빠진 남자는 모두 죽으리라" 저주했다는 내용의 전설은 건축사들의 얽힌 애정관계를 고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실은 '진실과 정의를 향한 의지'야말로 곧 죽음으로 치닫는 '위험한 사랑'이라고 경고하는 억압체제의 유령 같은 실체를 상징한다. 체코가 민주화되기 직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사회주의 체제 하에 묶여있던 체코의 상황을 상징하는 모델 드라마로서, "프라하의 봄, 공산당의 재집권,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격동의 사건들을 희화화된 에피소드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하벨은 외적 억압과 내적 억압을 이기려는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본질문제에 천착하고 있으며, 이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세계 어느곳 어느 시대나 통용되는 보편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인간을 향한 하벨의 따뜻하고도 쓸쓸한 시각은 촌철살인의 메시지에 웃음을 덧씌어놓았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 아래서도 춤출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 같은 건축사들의 무기력함, 억압받을수록 솟구치는 본능적 욕구와 자유의지가 상충하는 인간들의 허무한 몸부림이 성이라는 공간을 가득 메운다.
인간의 이중성과 긴박한 사건이 자아내는 웃지 못할 코미디<아싸나체>는 지독시리 무거운 상황을 가볍게 터치하는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린다. 서정시 같은 운율에 실려오는 감동과 함께 부조리극 특유의 '반복과 사이'의 미학, '비밀의 문들'을 중심으로 억압과 자유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무대, 조명의 일루션 효과 등 치밀한 연출력과 섬세한 연기를 만날 수 있다. 클래식과 보헤미안풍이 퓨전된 이국적 선율과 함께 펼쳐질 군상들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다가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권위 있는 연극상 오비에상 2회 수상, 노벨평화상 단골 후보.
하벨은 1936년 10월 5일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체코 제1공화국(1918-1938) 시절에는 명망 있는 집안으로서 지금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루체르나(Lucerna) 복합상가 건물과 유명한 바란도프(Barandov) 영화사 등이 집안의 소유였다. 1948년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모든 재산이 국유화 조치로 몰수되었으며, 그러한 배경은 1951년 초등학교를 마친 하벨에게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의 서재에 있는 수많은 서적들은 대학진학의 길이 막혀있던 하벨에게 좋은 문학적 교과서가 되었다. 1951년부터 1955년에 하벨은 기술견습공으로 일했으며, 스스로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1954년 고등학교 졸업자격증을 받았다. 1957-1959년의 군대생활에서 소위 출신성분 불량자들의 부대에 배치되어 체제의 낙인을 절실히 체험하게 된다. 하벨은 어려서 부르주아적 가정환경에 대한 심한 죄의식과 열등감을 느꼈고 그것이 사회주의 하에서도 정체성을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나타나고 후에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소속감을 얻으려했다.
하벨의 문학활동은 1955년부터 시작되는데, 1969년까지 여러 문예지에 비평을 발표했다. 인문계 대학 진학신청이 거부되자 그는 공과대학으로 진학했으며 예술아카데미(AMU)의 영화학과에 다시 입학을 신청했지만 거절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유명한 연극인 얀 베리히(Jan Werich)를 만나 그의 ABC극장에 무대기술공으로 취직하게 된다.1960년. 이 시기는 체코에서 스탈린주의의 고삐가 늦춰지며 자유화 물결의 싹이 트기 시작하는 때인데 하벨은 난간극장(Divaldo na zabradli)에서 일하게 되며, 무대기사에서 시작하여 드라마투르그를 거쳐 마침내는 극장 전속작가가 된다. 1960년대 체코는 정치의 자유화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아방가르드의 시기를 맞는다. 그의 첫 소품<Autostop>등이 발표, 공연된다. 1963년 12월 난간극장에서 그의<가든파티>가 공연되는데 이는 체코 부조리극의 태동을 알리는 작품이다.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이오네스코, 베케트, 사르트르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 부조리 연극(Absurd theatre)이 오랜 지체 끝에 체코 무대에서 상륙한 것이다. 그러나 체코의 부조리극은 서구의 그것과는 달리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문제로 제한되지 않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막스 프리쉬의 영향이 가미되어 부조리의 발단을 현실적 차원에서 찾으려 한다.
1964년 평생 동지이자, 동반자인 올가 쉬쁠리하블로바와 결혼하고 1965년 두 번째 성공작<비망록>을 발표한다. 이제 그는 작가동맹 기관지 [얼굴]지의 편집위원으로서, 체코 연극계의 대표적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다. 프라하의 봄이 절정에 이르기 전 해인 1967년 제 4차 작가동맹총회는 그와 밀란 쿤데라, 이반 클리마, 파벨 코호우트 등이 문단의 비민주적 상황을 공개비판함으로써 문단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고 프라하의 봄으로 발전하는데 지적 동력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1968년의 격동의 시기에 하벨은 기고 논문<야당문제에 대하여>를 통하여 정치문제를 직접 취급, 양당제와 자유선거를 요구하고 나서는데, 이 글은 바르샤바군 침공 이후 1970년부터 시작되는 소위 정상화 시기에 두브체크를 내몰고 권력을 잡은 구스타프 후삭 정권으로 하여금 하벨을 反혁명분자로 낙인찍고 탄압하게 하는 구실이 된다.
작품활동 및 공연금지 조치가 취해지기 전 1968년 희곡<어려워진 집중의 가능성>이 발표, 난간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이 작품과<비망록>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상연, 1968년과 1970년 두 차례 오비에상을 수상했다. 1969년엔 밀란 쿤데라의 [체코의 운명]이란 글에 반박하는 [체코의 운명?]이라는 비평문을 월간지 [얼굴]에 게재함으로써 쿤데라와 국가의 운명문제에 대해 논쟁한다. 하벨은 희곡뿐만 아니라 많은 문학논문, 에세이, 구체시(conrete poetry), 방송극 등을 썼다. 1970년대 쓰여져 지하출판사나 서구에 있는 망명출판사들을 통해 발표된 작품집으로<희곡 1970-1976>이 있다. 여러 단만극 외에 1980년대에 쓰여진 작품은<라르고 데솔라토>와<아사나체>등이 있는데, 후자는 1989년 가을 스위스 취리히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들 모두 프라하의 봄 이후의 체코사회를 구체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1982년 아비뇽에서 개최된 제 36차 국제 연극 페스티발은 여섯 시간에 걸쳐 '바츨라프 하벨의 밤'을 위해 베케트의 작품 '대참사'와 아서밀러의 작품 '저는 당신을 많이 생각해요'를 공연한다. 가장 최근작은<내일은 풍선을 날리리>이며, 약 13개의 희곡을 창작하였다. 수차의 망명권유를 거부한 하벨은 1975년 4월<구스타프 후삭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위시로 스탈린주의적,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체제가 체코사회를 어떻게 전락시키고 있는가를 고발하며 인권존중과 민주화를 위해 체제와의 대화를 촉구했다. 당연한 결과로 그는 비밀경찰의 감시와 투옥의 고초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일자리가 없어 한 지방맥주공장에서 삯일을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험들은 그의 작품<접견>속에 형상화된다.
1977년 초 "77헌장" 발기인의 일원으로서 하벨은 헬싱키 협정에 입각한 인권과 시민권의 보장을 요구하며 또 다시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선다. 그 결과로 그는 1978년 14개월, 1979년 4년 반의 징역을 선고받고, 1989년 다시 9개월을 선고받았는데 이번에는 동구권 국가들까지 포함한 세계여론의 비난으로 인해 1989년 5월 7일 가석방되었다. 1978년 투옥되기 전에 쓴 에세이<힘없는 자들의 힘>과 투옥 중 부인 올가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에세이<올가에게 보내는 편지>는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회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 관계 속에서 개인의 삶이 변형되어 가는 역학을 묘사하며, 이 변형된 상태를 극복하는 길로서 아래로부터의 도덕성과 정체성의 회복을 피력하는 글인데 서구에서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하벨의 주제인 도덕성, 정체성의 추구가 단지 사회주의 사회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핵심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현대사회의 보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 비참함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1989년 폭발하듯 일어난 체코 민주화 혁명의 절정에서 하벨은 재야 세력을 규합하는 시민광장을 구성, 사회주의 정권과의 대화를 통한 무혈혁명을 성취했고, 12월말 대통령에 피선,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맡고 있다. 그와 투쟁과 고난을 함께 나눈 아내 올가는 암으로 사망하였고, 하벨은 다그마라는 연극배우와 재혼해 살고 있다. 수상경력>오비에상 (1968, 1970) 오스트리아 정부의 외국문학상 (1969) 프릭스 플래져 연극상(1981)
얀 빨라흐상(1981) 에라스무스상(1986) 등 20여 회 문학, 평화상 수상과 12개 대학 명예박사학위.

(재개발 내용)
도시화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한 마을에 파견된 건축사팀이 옛 중세성에서 당비서관의 통제와 감시 하에 감금생활과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플레하노프, 노련한 현실타협주의자 팀장 베르그만, 베르그만과 권태로운 내연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루이사, 연상의 루이사를 사랑하는 정열적이고 이상추구 순수파인 청년 알버트, 과학화된 건축의 미래를 신봉하는 급진주의자 울취, 오로지 당비서관에게 아첨을 부려 출세의 기회만 노리는 마초우르코바 부인, 이들은 체제의 의지를 수행하는 지식인들이다. 당비서와 감독관들은 다시 이들을 통제하는 상부구조로서 체제 본연에 보다 밀접하게 다가가 있는 존재들이다.
어느 날 재개발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들고 주민대표들이 찾아온다. 당비서는 탄원서의 배후를 의심하여 그들을 성의 지하감옥에 가둔다. 주민들의 방문을 계기로 알버트는 ‘인간과 자연을 위한 재개발’을 주장하다가 과학적 재개발론을 펼치는 울취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 즈음 재개발을 총괄하는 신임 감독관이 부임하여 ‘재개발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건축사들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편 주민대표들을 석방시킨다. 울취의 우려 속에서도 자유를 만끽하려는 건축사들의 광란의 파티가 열리고 술기운으로 고무된 알버트는 루이사에게 사랑의 고백을 쏟아낸다.
지난밤의 숙취가 사라지기도 전에 새 감독관이 부임하여 ‘재개발을 종전대로 진행할 것’을 명령한다. 참을 수 없는 권력의 잔인한 놀음에 알버트는 크게 반발하는데, 루이사에게 고백했던 사랑마저 베르그만의 질투 어린 조롱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엄청난 충격을 입은 채 알버트는 당비서관에 의해 힘없이 지하감옥으로 끌려가고 알버트를 연모하던 비서 레나타는 실망과 자괴감에 자살을 시도한다.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알버트로 인해 플레하노프와 루이사는 잊었던 지난날의 정열과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에게 알버트는 유일한 희망이며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감독관이 다시 나타나 ‘재개발의 일시중지’를 선언한다. 그 대신 건축사들의 새 임무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아이디어를 토론하는 것. 자유이되 자유가 아닌 강압 아래 망연자실 의욕을 잃은 건축사들을 끊임없이 닦달하는 당비서의 횡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루이사의 부탁으로 석방된 알버트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기계와 같이 변해버렸다.
플레하노프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음에 좌절하여 성탑에서 떨어져 죽고, 베르그만의 엄숙한 추도사는 실상은 입에 발린 체제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플레하노프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알버트는 정신을 되찾아 무감각한 인간을 향해 희망의 절규를 토하고 레나타는 난생 처음으로 내면의 목소리를 외친다. 플레하노프의 죽음이 일러준 ‘인간의 영혼은 재개발할 수 없다’는 진실을 느끼며 루이사는 재개발 모형을 베르그만의 머리에 내리쳐 부숴 버린다. 그 후 모든 등장인물들이 관객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나지막이<검은 눈동자>의 선율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점차 요란한 소음으로 바뀌다가 갑자기 멈추고 카라얀이 지휘하는 슈트라우스의 왈츠곡<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이 객석에 울려 퍼진다.
도시 재개발을 준비하는 건축사들...그들 사이에 떠도는 성안의 전설!
■성 안에서 사랑에 빠진 남자는 모두 죽으리..■
도시재개발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마을에 파견된 건축사팀이 옛 성곽에서 수석보좌관의 통제 하에 감금과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늘 음악을 들으며 목각인형 조각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플레하노프, 노련한 현실타협주의자 팀장 베르그만, 베르그만과 권태로운 내연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루이사, 연상의 루이사를 사랑하는 정열적인 청년 알버트, 알버트에 대한 연모로 가슴아파하는 비서 레나타, 레나타를 끝없이 유혹하는 급진주의자 울취, 오로지 수석보좌관에게 아첨부릴 기회만 노리는 마초우르코바 부인.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에 빠진 남자는 죽으리라"는 저주의 전설이 나도는 성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애정관계는 더욱 얽혀간다.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 성밖과 성안의 사람들
그런 어느 날, 재개발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들고 주민대표들이 찾아온다. 수석보좌관은 탄원서의 배후를 의심하여 그들을 지하감옥에 가둔다. 주민들의 방문을 계기로 알버트는 "인간과 자연을 위한 재개발"을 주장하다가 과학적 재개발론을 펼치는 울취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즈음 마을지주 출신인 신임감사관이 부임하여 "재개발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건축사들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편 주민대표들을 석방시킨다. 울취의 우려 속에서도 자유를 만끽하려는 건축사들의 광란의 파티는 열리고 술기운으로 고무된 알버트는 루이사에게 사랑의 고백을 쏟아내고 만다. 악몽같은 지난 밤의 숙취가 사라지기도 전에 새 감사관이 부임하여 "재개발을 종전대로 진행할 것"을 명령한다. 참을 수 없는 권력의 잔인한 놀음에 알버트는 크게 반발하는데, 루이사에게 고백했던 사랑마저 베르그만의 질투어린 조롱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엄청난 충격을 입은채 알버트는 수석보좌관에 의해 힘없이 지하감옥으로 끌려가고 레나타는 상실감에 자살을 시도한다.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알버트로 인해 플레하노프와 루이사는 잊었던 지난 날의 정열과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에게 알버트는 유일한 희망이며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감사관2가 다시 나타나 "재개발의 일시중지"를 선언한다. 건축사들의 새 임무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아이디어를 토론하는 것. 자유이되 자유가 아닌 강압 아래 망연자실 의욕을 잃은 건축사들을 끊임없이 닥달하는 수석보좌관. 루이사의 부탁으로 석방된 알버트는 의지를 박탈당한 기계와 같이 변해버렸다.
표출되는 내면의 목소리 - 인간의 영혼은 재개발 할 수 없다!
플레하노프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음에 좌절하여 성탑에서 떨어져 죽고, 베르그만의 엄숙한 추도사는 실은 입에 발린 권력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다. 플레하노프의 죽음에 충격을 입은 알버트는 정신을 되찾아 무감각한 인간을 향해 희망의 절규를 토하고 레나타는 난생 처음으로 내면의 목소리를 외친다. 플레하노프의 죽음이 일러준 "인간의 영혼은 재개발할 수 없다"는 진실을 느끼며 루이사는 재개발 모형을 베르그만의 머리에 내리쳐 부숴버린다.

하벨의 작품은 부조리극적이며 체코 사회의 병폐를 고발하고 있다. 그의 초기 두 대작<가든파티, 1963>와<비망록,1965>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1963년 프라하의 난간극장에서 상연된 그의 작품 [가든파티]가 체코 부조리극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은 후 당국의 통제가 다소 풀리는 시기는 있었으나 곧 당의 보수세력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그 후 사회체제의 불만과 공산당 내 진보세력이 대두하면서 공산당이 예술활동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보장하게 되는 건 1960년대에서였다. 그때서야 데카당스의 가장 반동적 양식으로 .간주되었던 부조리극은 검열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벨이 부조리극을 쓰게된 동기는 무엇인가?
반체제적인 주제를 담을 그릇으로, 텍스트의 코드화를 특색으로 하는 부조리극의 기법을 사용한 것이 "자유화의 조짐 속에서도 건재했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란 대답은 충분하지 못하다.
하벨은 독자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동기로 부조리극을 택했다.
부조리극의 메타포, 비유 또는 기호와 같은 형식이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고, 사물의 본질을 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벨의 부조리극에서는 인간 존재의 문제를 추상적으로 설정된 시공에서가 아니라 구체적 사회(관청, 가정 등등) 속에서 묘사하고 있다. 부조리는 인간이 영원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서 제거할 수 없지만, 사회적 요인들을 통해 변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써 부조리는 더 이상 사람의 상태가 아니라 인식과 웃음을 통해 추방될 수 있는 것이다. '풍자적인 시각과 형상화'로 사회체제의 변형들의 본질과 메커니즘을 인식시키려 하는 것이 그가 부조리극을 작품에 도입한 목적이다.
단막극<접견 1975>은 하벨이 직접 체험한 양조장 맥주통 굴리는 생활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고 있다. 즉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맥주를 마시며 상관과 부하 직원 간에 대화를 하는데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동시에 인간정신의 부조리를 그리고 있다.
하벨의 대표적 부조리극<가든파티>의 주인공은 후고라는 젊은 청년으로 관료주의의 맹점을 이용, 하룻밤 새에 벼락출세를 한다는 것이 극 줄거리의 중심이다. 그러나 이 재빠른 출세는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댓가를 치룬다. 후고의 가장 빼어난 특징은 주위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그것을 통해 관료세력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극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가 결국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파괴시킨다. 극이 끝날 무렵 후고는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모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화한다. 이 극은 원칙의 결핍으로 비롯된 인간의 타락이란 전통적인 테마에 근거하고 있다. 후고의 자아분해는 심리적 측면 뿐 아니라 드라마의 구성 자체에서도 일어난다. 이 희곡의 중요한 연출고안은 부조리 극작가들의 의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 직접적인 주인공의 변신 (장 쥬네의 희곡들, 카프카의<변신>, 이오네스코의<무소>등)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가든파티>의 분석은 먼저 언어에 중점이 주어진다. 이 희곡은 진정한 플롯 갈등, 인물의 배치가 결핍되고 매우 고상하고 복잡한 언어구조에 의존한다. 언어가 극의 주된 줄거리이자 주인공이다. 즉 언어가 인물의 전개에 이바지하지 않고 인물이 언어의 수단이 된다. 언어가 더 이상 사상을 전달하는데 봉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내용이 없어야 한다. 사실<가든파티>에 나오는 긴 대화도 인물들이 계속 되풀이 지껄여대는 미리 고안된 진부한 표현의 나열에 불과하다. 언어가 인간소외의 징후이다. 예컨대 체홉보다 훨씬 더 긴박한 방법으로 그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불가능성 뿐 아니라 언어에 의한 지식인의 타락을 지적한다.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끊임없이 그들의 피해자를 지배하려고 위협한다. 이런 점에서 이 희곡은 세계적 보편성을 띠고 있어서 서구무대에 자주 올려진다. 또 하벨이 독창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2-4막에는 강한 정치적 풍자성을 띠고 있다. 즉 사회주의 제도의 부조리성을 계속 폭로한다. 그리하여 결국 이 희곡의 작가는 나중에 정치적 탄압을 받는다. 그의 두번째 작품이자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비망록>은 언어의 마술사로서의 하벨의 진가를 보여준다.
● 하벨 작품의 주제
1. 정체성의 위기
하벨 작품의 기본테마는 현대인의 정체성 위기이다. 이것이 부조리극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현대예술 전반의 중요한 주제임을 두말할 나위 없다.
그에게 '정체성'이란 인간 자신에 대한 책임에 근거하며 동시에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정체성을 잃은 존재는 무의미한 존재이고 '죽음의 질서'를 따를 뿐이다.
그의 진술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기 파괴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의미 상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환경은 그의 작품에서 항상 인간과 사회 체제의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 머문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이미 상실한 상태이다. 자아정체성은 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적 정체성의 균형을 의미한다. 이 균형은 모순적이라고만 할 수 있는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 유지된다. 즉 개인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상대방과 동일하도록 시도함으로써 사회적 정체성을 고수하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적 정체성을 피상적으로만 수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아정체성이란, 사회와 개인의 이해관계에 의해 방해받은 균형을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체성의 위기의 다른 양태는 말과 행위의 불일치이다. 즉 언어표현과 실제행동간의 괴리이다.
2. 인간의 메커니즘화 -시스템과 인간의 관계
하벨 작품의 기본주제를 이루는 또다른 관점은 인간의 메커니즘화이다.
시스템이 인간에 대한 봉사를 외면하고 제 기능의 완벽성만을 추구할 때, 그것은 변형되고 발전과 개혁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때에 인간과 시스템 사이에는 소외가 일어나고 시스템은 메커니즘화되어 인간과 대치한다.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면 인간은 그에 종속되어 인간 역시 메커니즘화된 존재로 변질되고 만다. 본질적인 모순은 인간이 시스템에 의해 규정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스템의 공조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신의 사회적 행동으로써 존재조건을 함께 형성하는 것이다.
하벨의 극 중에 묘사되는 사회질서는 소위 건전한 현대사회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메커니즘화된 시스템 속에서 메커니즘화된 인간의 사생활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가든파티] 중 프루덱 부부의 대사 "지금 몇 시지요?', "들었어?", "벨이 울린 게 아닌가요?" 와 같은 정확하고 점점 빨라지는 리듬의 무의미한 대사의 반복은, 그 반복을 통해 상황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수없이 반복되는 것임을 암시해 주며, 인간 상호관계의 공허한 메커니즘을 상징할 따름이다.
[비망록]에서 극중 인물들은 몇 가지 개인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여비서의 과장된 외모에 대한 신경(계속적인 빗질), 물건 구입 등이 그것이다. 시스템은 이와 같은 성향이나 행동들을 용납하여, 그 같은 행동들이 사무실에서 반복된다. 이는 인간성과 자유의 비참한 잔재이자 캐리커처이다. 그러나 개인이 시스템의 이해에 충돌하고 갈등할 때 이는 제거된다. 인간적 호의와 시스템이 정한 규정에 대한 불복종 때문에 시스템으로부터 추방된다. 이러한 위험은 하수인들로 구성된 하부시스템에 의해 엄격히 감시된다. 메커니즘화된 인간의 존재수단은 기회주의와 시스템에 대한 순응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하벨의 작품에선 사생활의 메커니즘과 비인간화가 종종 묘사되는데, 이는 외적 생활 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리 속으로 침투한다. 결국 메커니즘화를 극한적으로 가상해보면 궁극적으로 자의식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다.
3. 사이비(似而非) 변증법
주제로서 뿐만 아니라 극작기법의 주요 근간을 이루는 것은 '사이비 변증법'이다.
이것은 스탈린주의 시대의 산물로서, 사회생활, 언론, 공산당 선언문 등 삶의 제반을 지배하려던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체코문학자 트렌스키는 마르크스의 공식이나 '항구적 변천'같은 사회주의의 공리가 과장, 오용되어 "모든 것에 적용되고 동시에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전락하였다고 말한다.
하벨은 이 문제를 에세이<변증법적 형이상학>(1964)에서 이론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이비 변증법의 원인과 효과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변증법이 변증법적 형이상학으로 뒤바뀌는 것은 변증법에 대한 물신숭배에 의해서다. 변증법 "그 자체"를 신봉하는 것인데, 즉 실제 안에서 실제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 외에서, 실제 위에서 실현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신봉을 말한다. 사변의 방법이 사변의 공식이 되고, 과정이 도식이 된다. 변증법이 현실에 봉사함으로써 자기확인을 하는 게 아니라 , 현실이 변증법에 봉사하여 자기확인을 한다. (...)그러니까 변증법의 형이상학화는 한편으로는 변증법의 역동성을 박탈하여 정적인 도식으로 변질시킴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이 도식에 실질적으로 어떤 "변증적" 근거이건 댈 수 있는 끔찍한 "역동성"을 부여함으로써 변증법을 파기하는 것이다./
사이비 변증법에 의거하면 "그렇다, 그렇지만 또", "분명하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한 관점에서는 그렇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진리는 어딘가 중간에 있다", "두 가지 의견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또한 두 의견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같은 표현들의 언어현상이 나타난다. 이 언어현상은 궁극적으로 대화불능을 초래한다. [가든파티]의 ■후고'는 모든 사람들의 사이비 변증법적 말투를 흡수, 습득하여 상대를 모두 제압하고 합의 언어방식을 구축한-사이비 변증법의 메커니즘화- 다음에 변증법의 파기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사이비 변증법은 인간상호간의 소외의 원인으로 제시될 뿐만 아니라, 대사를 전개시키는 추진력이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극작기법의 수단이기도 한다. [가든파티]의 서로 경합하는 두 관청 '개최청'과 '폐쇄청'은 하나의 보다 큰 기관으로 통합된다. 물론 아무런 작업 방식의 질적 개선이나 필연성이 전제되지 않는다. [비망록]에서는 프티데페 語가 또 다른 합의 언어인 새 언어로 교체되어 줄거리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4. 문명과 학문에 대한 맹신
하벨의 작품은 사회체제의 차이를 초월하는 현대문명의 문제를 화두로 삼는다. 과학적, 기술적 사고와 개인의 실제 욕구 및 가능성 사이에서 점점 심화되어 가는 긴장 때문에 소외되는 현대인의 삶이 그것이다.
등장인물의 존재양식을 드러내는 일련의 짧은 에피소드가 반복되고, 등장인물간의 진부하고 헛바퀴를 도는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메커니즘화된 사생활을 표현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동범주를 결코 넘어서지 않으며, 공허하고 위선적인 말만 반복할 뿐 실상 모호한 '추상'속에서만 사고한다. 규격화되고 메커니즘화된 인간은 실험의 재료로 전락하게 된다. 인간을 과학실에서나 볼 수 있는 실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존재로 그리는 것은 매우 희화적이기까지 하다. 이를 통해 하벨은 과학에 대한 맹신을 풍자하고 기술의 오용을 경고하고 있다. 과학적 발상은 인간의 존재 문제에는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
Epilogue
이렇듯 하벨 작품들의 주제는 체코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경험적 분석과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전체 산업사회에도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 생활형태의 메커니즘화, 임의적 허구와 실제 사이의 모순, 소시민적 기회주의, 맹목적 합리주의와 같은 현상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사회의 체제와 연관된 경향을 보이다가 점차 보편적인 상황에의 적용으로 발전한다. 그의 기본주제인 인간 정체성의 문제는 인간소외 현상이 존속하듯 꾸준히 모든 작품의 핵을 이루고 있다.
하벨의 작품은 광범위한 철학적 의미를 주며 풍자적이며, "사명감 있는" 예술이 보여 주기 힘든 통일성을 제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하벨의 희곡은 이오네스코가 후기 작품에서 추구한 것(언어만의 문제)을 능가하고 있으며 자신의 위치를 세계 희곡사에서 돋보이게 한다. 이오네스코가 주로 언어유희에 집중한 반면, 하벨은 언어와 정치적 부조리 상황을 잘 연관시키고 있는 면에서 한층 발전된 부조리 극작가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물)
-베르그만 : "산山사람, 광부"라는 뜻. 50세. 건축사 팀의 팀장으로서 권위의식과 공적책임감이 강한 인물. 그러나 이 의무감을 강박으로 여겨 항상 삶의 의미에 대해 회의하는 버릇이 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짙고 환경변화에 적응능력이 뛰어난 것이 자신과 팀을 보호하는 노하우. 지극히 권위적이고 현학적인 인물이지만 사랑하는 루이사를 대할 때만큼은 유도심문과 어린애같은 투정으로 감성적인 그녀를 항상 굴복시킨다.
-루이사 : "흔한 여자". 45세. 건축사, 베르그만의 정부이자, 플레하노프의 첫사랑이며, 현재 알버트가 열렬히 사모하는 여인. 우아함과 퇴폐성을 동시에 갖추었으며 선천적으로 사람을 끌리게 하는 매력이 넘친다. 격정적이고 다정다감한 것이 매력이자 문제를 일으키는 원흉. 순수하고 정열적인 알버트를 보면서 잊었던 지난 날의 열정을 상기하게 된다.
-플레하노프 : "양철, 찌그러지기 쉬운" 52세. 건축사이긴 하지만 항상 목각인형과 음악에 몰입하고 있는 그는 이미 꺾여진 자가 갖는 삶에 대한 초연함을 보여준다. 아주 예민하고 감성적이며 보헤미안 기질이 두드러진 그는 타인의 심리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인물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거나 저항할 의지나 힘도 없다. 내면의 목소리를 지키려는 알버트를 옹호하고 응원하며, 그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긴다.
-알버트 : ■聖알베르토" 25세. 건축사, 세태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하고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는 동양적 가치관의 소유자, 그러나 직설적이고 감정적으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바람에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다. 진실, 순수, 정의의 대명사이지만 열정만 내세울 뿐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상징한다. 획일화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와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내면 사이의 갈등을 항상 겪는다. 20세 연상의 루이사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바치지만, 재개발 반대의 좌절과 함께 그 사랑마저 조롱당하는 시련을 겪는다. 그의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갈구"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레나타 : "다시 태어나다" 20세, 베르그만의 비서. 내성적이지만 심지가 곧은 처녀로 알버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고 있다. 묵묵부답인 알버트와 끈질기게 유혹하는 울취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현실과 환상과의 괴리감이 너무 큰 나머지 답을 찾기가 힘겹다. 알버트가 루이사를 사랑하는데 좌절하고 결국 자살까지 시도한다. 결국 스스로를 억압하는 껍질을 깨고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인물.
-울취 : "벌" 33세. 건축사.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이 있는 과학 신봉 급진주의자. 승부욕, 소유욕, 성취욕의 집합체이지만 열정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 성취하고 나면 사랑도 완성된다는 식으로 눈에 보여지는 것만 믿는다. 재개발을 옹호하는 입장이지만, 이를 연거푸 번복하는 권력의 놀음에 결국 놀아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에게 있어 알버트는 사랑 뿐만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방해자며 적대자에 불과하다.
-마초우르코바 : "암코양이" 35세. 건축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출세욕같은 욕망을 채워줄 사람에게 접근하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세상을 먹이사슬 관계로 바라보며 돈되고 이익되는 것만 추구한다. 뻔뻔스러우면서도 여유있는 교태로 수석보좌관의 빈틈을 서서히 넓혀가는 고양이 같은 인물. 수석보좌관과 그녀는 쥐와 고양이 같은 관계로, 이 작품에 맛깔스러운 양념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감사관1 : 갑자기 수직상승한 신분을 한껏 만끽하려는 마을 지주출신의 무식한 인사. 지식인에 대한 콤플렉스와 권위의식이 가득하지만 과격한 그의 언행이 그리 밉지 않다. 현재 마을을 관광화하여 그에 따르는 부수입을 노리는 개인적인 꿍꿍이 때문에 재개발을 중지시키는 이 시대의 꼭두각시.
-감사관2 : 상부의 명령을 어긴 감사관1이 즉시 축출당하고 그 자리에 새로이 부임한 감사관. 권력에 박자에 춤추는 전형적인 꼭두각시. 임무를 잘 수행해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욕 때문에 가끔 헛소리를 하는 인물.
-수석보좌관 미샥 : "쥐" 30세. 상부의 의지에 맞게 건축사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되어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 '쥐'처럼 건축사들을 감시한다. 저돌성과 냉정함을 동시에 갖췄으며 출세지향적이고 직분에 벗어난 일에 절대 눈돌리지 않는다. 실은 자신도 보이지 않는 실체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마초우르코바를 의식적으로 외면하지만 결국 수줍어하는 등 고양이와 쥐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쉴 새 없이 성안을 뛰어다니는 그의 움직임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적외선 경보장치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주민대표 1, 2 : 재개발을 반대한 마을 주민들의 대표들. 이장과 그를 보좌하는 열혈 청년(소년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 기개있는 인물들, 결국 배후를 의심하는 수석보좌관에 의해 수감된다.
-여인 1, 2 : 수감된 주민대표들의 부인과 여동생. 어려운 살림에 겨우 사과 3개를 들고 면회를 오지만 수석보좌관의 비인간적 냉대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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