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니사쥐 (집들이)
(VERNISÁŽ)
베르니사쥐의 사전적인 뜻은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유채화에서 화면을 보존할 목적으로 베르니(니스)를 바르는 일이고 두 번째로는 전람회 전날 작품이 일반에 공개되기 전에 초대를 나타내는 말이고 세 번째로는 도자기를 만들 때 유약을 바르는 일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의 베르니사쥐는 이 세 뜻 중에서 두 번째 뜻인 미술 전람회 개회의 전날 출품한 그림에 손질하는 것을 허락하는 날로 쓰인 것 같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본다면 공연을 했을 때, 무대에 등장하는 세사람 베드지흐, 베라, 미할이 있고 공연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름이 언급되는 에바와 페탸가 있다. 베라와 미할, 베드지흐와 에바는 각각 부부이고 베라와 미할의 아들이 페탸이다.
베라와 미할은 거주하는 방식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집꾸미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에 나오는 집에 있는 갖가지 예술양식의 가구들과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부의 생각, 그리고 집을 개조하기 보다는 그 집의 공간에 맞는 물건을 찾으며 다니는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집꾸미기를 즐거워하고 잘하는 것 같았다. 베라와 미할의 이런 생각은 나도 찬성하는 바이다. 자신이 살고있는 집의 모습은 그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것 같다. 집은 다른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서 꾸미는 것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할의 말 끝부분의 삶의 수준까지 올릴 수 있다는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미할과 베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의미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물론 아이를 키움으로해서 얻어지는 의미는 이루말할 수 없겠지만, 아이를 키우는게 인생의 ‘유일한’의미라는 점은 꼭 아이를 위해서 산다는 느낌으로 들렸다. 둘의 아이는 외동아들인거 같은데, 그만큼 더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부분은 요즘의 부모들에게 나타나는 과잉보호의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를 갖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식에게 모두 퍼주기 보다는 자식들이 부모를 존경할 수 있을만한 생각을 심어주며, 부모와 더불어 같이 인생을 즐기는 법도 상기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로 육체적인 관계를 중요시 하는 부분은 부부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친구 앞에서 자신의 부인의 가슴을 보여준다거나, 행위를 직접 한다는 것 자체는 베드지흐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베드지흐를 무시하는 부분에 넣을 수도 있었지만, 미할과 베라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라는 점이 더 크게 느껴져서 이 부분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둘의 사이에서 스위스는 전원적이고 생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스위스에서 가져온 조개라던지, 스위스에 있을 때 옆서를 보낸 점 스위스를 가는 게 행복하다는 부분에서 스위스는 둘의 인생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안식처라는 느낌을 받았다.

성공적인 중산층 가족의 집에 방문한 작가 프레드. 마이클과 베라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싶어 - 부부는 그의 아파트를 수반 / 가구/ 생활 / 열정적 사랑등 모든것에 대해 소개하고 얘기를 한더. 그의 인생을 연 착륙 방법을 얘기하나 - 베드지흐는 지루하기만 하다, 방문, 부부는 실패로 가고 관객에게 자신의 삶, 재산이 아니라 감정만을 기준으로 하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깨닫게 해 준다.

동구권을 대표하는 부조리극 작가 1936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명망 있는 기업가 가문에서 태어난 바츨라프 하벨은 1950년대 중후반 체코 프라하에 수많은 소극장들이 생겨나자 극장 테크니션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극장은 ABC, 두 번째 극장은 Na zabradli로, 그는 무대기술자로 일하며 1962년부터 1966년까지 극장부속 뮤지컬 아츠 아카데미에서 드라마 공부를 병행한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은 Na zabradli에서 주로 발표되었는데 여러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THE Garden Party>(1963)였다. 이 작품의 성공은 24세의 하벨을 단박에 동유럽을 대표하는 부조리극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한편, 이 시기에 하벨은<THE Memorandum>(1965)와<THE Increased Difficulty of Concentration>과 같은 희곡뿐 아니라 독립 작가 클럽의 회장직을 맡아 민권운동을 이끌어 간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이클 프레인 '코펜하겐' (1) | 2015.11.25 |
|---|---|
| 릴리안 헬만 '작은 여우들' (1) | 2015.11.25 |
| 바츨라프 하벨 '재 개발 계획' (1) | 2015.11.24 |
| 에이브 아인혼 '수우, 당신을 사랑합니다' (1) | 2015.11.24 |
| 베르꼬르 '바다의 침묵' (1) | 2015.11.24 |